[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올망졸망 엽전같던 연꽃, 만개하니 배보다 더 크겠네”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올망졸망 엽전같던 연꽃, 만개하니 배보다 더 크겠네”
  • 김종현
  • 승인 2022.12.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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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백고황제의 유머가 녹아내리는 남소하화(南沼荷花)
남소(南沼)란 신라시대 용어로
‘천왕지’ 혹은 ‘천왕당지’ 불려
유교식 용어로 순화하면 ‘성당제’
오늘날 대구의 성당못 추정
연화(蓮花)라는 용어 보다
하화(荷花)라는 용어 택한 건
유생 혹은 꽃의 기품 지키기 위함
연꽃1
연화(蓮花)라는 용어보다 ‘하화(荷花)’라는 용어를 택한 건 유생의 기품(儒品) 혹은 꽃의 기품(花品)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림 이대영

◇남소(南沼)는 천왕지(天王池) 또는 천왕당지(天王堂池)

유머 넘치는 시문을 남긴 서거정이 쓴 남소하화(南沼荷花)는 제목부터 비범하고 웃음을 자아낸다.

“남쪽 향해 토실·몽실 체취를 풍기는 연꽃봉우리 아가씨, 뒷물이라도 하려는 양 속살을 드러내는 순간, 연못마저 물결이 일어난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면서 입가에 미소와 붓끝의 표현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짐작만 해도 ‘웃음 넘치는 연꽃 그림그리기(濫笑荷畵)’다. 여기서 남(南)이란 설문해자에서 “초목이 지향하는 방향이고, 나뭇가지가 무성하게 뻗어가는 쪽이다(艸木至南方,有枝任也).” 따라서 민심의 지향점(구심점)이고 위정자에게 맡겨진 시대감각이다. 남녘 남(南)자는 높을 고(高)자 혹은 장사 상(商)자와 혼용하기에 상통관계가 있다.

조선왕조에선 고대광실(高臺廣室)을, 고대천문학에서는 옥황상제의 자미원(紫微垣)을 연상하는 글자다. 따라서 남소(南沼)란 신라시대 최치원(崔致遠)의 표현을 빌리면 천왕지(天王池)로 한때 천왕당지(天王堂池)라고도 했다. 1530년경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유교식 용어로 순화해서 성당제(聖堂堤)로도 기록하고 있다.

이에 1899년 및 1907년에 작성한 대구읍지(大邱邑誌) 제언조(堤堰條)에 나오는 연화제(蓮花堤)를 속칭 연신지(蓮信池), 영선지(靈仙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1923년 일제 강점기 영선지 유원지를 개발하여 1960년 4월 영선국민학교와 이후 영선시장이 들어서면서 매립되었다. 또한 오늘날 성당동의 성당못(聖堂池)은 1910년에 성댕이(혹은 상댕이) 동네를 일제는 성당동(聖堂洞)으로 호칭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성당못(聖堂池)’가 되었다. 이로 인해서 1530년대 성당제(聖堂堤)와 1910년대 성당지(聖堂池)가 같다고 혼동할 수 있게 되었다.

화제를 돌려서 통계를 국가통치에 사용한 기원은 춘추전국시대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고사를 남긴 제나라(齊國)의 정치가 관중(管仲, 출생미상 ~ BC 645)이다. 그가 저술한 ‘관자(管子)’에서 ‘저울로 달아보고서야 무겁고 가벼운 걸 알 수 있고, 자로 재어봐야 길고 짧음을 할 수 있다(權然後知輕重,度然後知長短).”고 했다. 경중(輕重甲乙丙丁戊己庚)편에서 ‘수치가 명확하게 바른 실정을 드러낸다(數明顯正).’라는 계량정치 혹은 계량경제학의 기초를 닦았다.

역대국왕들은 국가의 영토 내(輿地)에 있는 인구, 토지, 가용자원 등에 대한 현실을 지리지(地理志)라는 기록으로 만들었다. 조선시대 세종은 1432(세종14)년 서거정 등에게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를 편찬하게 했으나 미흡하자 체계가 일목요연하고 통계치가 확실한 명나라의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가 나온 뒤 성종은 노사신(盧思愼, 1427~ 1498)을 관장으로 하고, 서거정의 신찬팔도지리를 바탕으로 1481년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편찬도록 했다. 1499년 수정보완을 고쳐서 이행(李荇, 1478~ 1534) 및 홍언필(洪彦弼,1476~ 1549)이 증보할 때 서거정의 십영(十詠)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넣었으며, 금유(琴柔)의 시를 먼저 앞세웠다.

◇“방울소리 요란해도 이곳 풍도는 청렴(鈴閣署風淸)하다”

당시 관찰사 김요(재위 1446~ 1447)가 있을 때에 군수를 지냈던 금유(琴柔, 생몰연도미상, 奉化人)가 쓴 영각서청풍(鈴閣署風淸)이라는 시가 올라왔다. 영각이란 지방수령들이 집무하는 곳 즉 포졸들의 방울소리가 요란한 곳이라고 해서 영각(鈴閣), 영당(鈴堂), 영재(鈴齋), 영헌(鈴軒) 혹은 영각서(鈴閣曙)라고도 했다. 시제 “방울소리 요란해도 이곳 풍도는 청렴(鈴閣署風淸)하다”는 상징을 함축하고 있다.

“지방(군)을 다스림은 몸이 피곤한 일이나, 누각에 오르니 눈앞에 펼쳐짐이 분명한데(爲郡身疲倦,登樓眼豁明), 금호엔 새로운 물이 넘쳐흐르며(琴湖新水滿)... 감히 바라건 데 거문고 소리처럼 다스린다면, 멈춘다는 건 크게는 번영에 발목이 잡히겠지. 삼년이란 세월은 아무런 효과가 없을 정도라네. 붓을 잡았으나 품은 속내를 속이려 하네.”

시제가 고려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1178~ 1234)이 쓴 ‘조개영각선인풍(肇開鈴閣宣仁風)’과 닮아있으나 내용은 판이했다. 즉 “일찍이 정가(鈴閣, 政街)에서 인자한 풍도(風道)를 폈다고 하니, 한 고을 혼연한 기쁨 누구나 한결 같다. 엊저녁 참선 뒤 잠자리 평온하더니, 새 원님 덕화가 산중에 미쳤음을 이제 알겠네(肇開鈴閣宣仁風, 一境欣然喜已同, 昨夜禪餘眼更隱, 是知新化及山中).”

다시 앞에서 언급했던 서거정의 ‘남소의 연꽃(南沼荷花)’에서는 “솟아나는 물 새롭더니 연꽃잎이 올망졸망 작은 엽전 같구나. 만개할 땐 선유하는 배보다도 연꽃이 더 크겠네. 그 연꽃뿌리 약재(才=藥材)로 쓰기엔 너무 커 어렵다는 그런 말을 하지 말게나. 요긴하게 쓸 만백성들에게 보낸다면 온갖 숙환도 가라앉히겠네.” 유머가 넘치는 서거정의 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연꽃과 미녀는) 작고 젊을수록 더 좋고, 향기와 몸매가 요염할수록 약발이 더 크다네(蓮如美女, 小少益善, 香艶益效)”라는 언중유골(言中有骨)에다가 너털웃음을 던져주고 있다.

◇‘하화(荷花)’, 유생의 기품(儒品)·꽃의 기품(花品)

여기서 연화(蓮花)라는 용어보다 ‘하화(荷花)’라는 용어를 택한 건 유생의 기품(儒品) 혹은 꽃의 기품(花品)을 지키기 위함이다. 최세진(崔世珍, 1465~1542)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화품(花品, 蓮花細分)을 연하부거로 구분해서 연(蓮)이란 열매인 연자(蓮子), 하(荷)는 약이나 음식으로 쓰는 연채(蓮菜)를 말하며 뿌리(藕)까지 포함했다. 연꽃 혹은 연뿌리의 덜 핀 꽃봉오리를 함담이라고 했다. 마지막 거란 부거하화 혹은 부용(芙蓉)이라고.

그렇다면 다양한 연꽃에 관련된 고대 시문을 살펴보면, 공자 이전 시경(詩經)에선 ‘저 연못 둑에서는(澤陂)’ “저 못 둑에 부들과 연꽃이 피어있어, 아리따운 한 님이 있구려. 그대에게 아픈 내 가슴을 어찌하오니까(彼澤之陂, 有蒲與荷, 有美一人, 傷如之何)? 앉으나 서나 그대 생각으로 뭔 일이 되오리까? 눈물 콧물만 줄줄이 흐르네... 저 건너 연못 둑엔 부들과 (말 못 할 사연을 머금은) 연꽃봉오리가 있고, 아리따운 그녀마저 그곳에 있어... ”

당나라 유상(劉商, 생몰연도미상)의 ‘쌍쌍이 피는 연꽃을 노래하며(詠雙開蓮花)’에서 “연꽃봉오리가 새로운 꽃을 새벽에 피웠는데, 짙은 꽃단장에 어여쁘게 웃은 모습일랑 멀쑥해졌다네. 색이 짙어 화려한 서방정토의 극락조(極樂鳥 혹은 迦陵鳥)가 아침저녁으로 쌍쌍이 연못 위에 들락거리네.” 두보(杜甫, )의 ‘구일곡강(九日曲江)’에선 “술자리에 이어 산수유 한잔은 좋았는데, 배 띄워 놀자고 하니 연꽃이 시들어 버리네.” 우리나라 동문선(東文選)에 게재된 이제현(李齊賢)이 쓴 시제 ‘옥연당(玉淵堂)에서 양안보국공이 개최하여 태위심왕(太尉瀋陽: 원나라 태위 벼슬을 하고 있는 심양왕)을 위한 잔치에서(楊安普國公宴太尉瀋陽王于玉淵堂)’도, 이런 구절들이 있다. “연꽃봉오리가 머금고 있던 향기를 풍기니, 지나가는 빗소리에 놀랐는지 소리를 지르네. 부들이 막 그림자를 드리우자, 이를 본 구름이 그 속으로 숨어버리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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