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미술상 수상 유근택 작가 전시…대구미술관 1월 15일까지
이인성미술상 수상 유근택 작가 전시…대구미술관 1월 15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2.12.0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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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본질은 보는 것만으로 감동 주는 것”
전공 동양화 속 새 세계 추구
전통 고수하며 현대미술 지향
닭장 창문·온실 거실 등 초기작
동양 철학 대신 일상 풍경 담아
동양화 주제를 인간 눈높이로
감정 소통 재구성해 미술 행위
선친에 그림편지 쓰다 깨달아
동·서양 재료 혼합 시각 다변화
유근택작가
유근택 작가가 대구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전시장
유근택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전시장 전경.

제22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인 유근택 작가의 ‘대화(Dialoue)’전이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근대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서양화가 이인성 화백을 기리는 이인성미술상은 대구시에서 2000년에 제정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22회 수상자인 유 작가는 동양화를 기반으로 동시대의 현상과 일상을 재해석하여 자신만의 회화로 그려왔다. 이번 전시에는 ‘존재의 시간과 소멸에 대한 서사적 질문’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다뤄온 그의 대표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할머니의 인생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40m의 대작 ‘유적-토카타(질주)’와 일상을 회화적 장면으로 변모시킨 ‘창밖을 나선 풍경’, 전염병과 혼란스러운 세계정세 속의 불안을 담은 ‘어떤 풍경’, 신작 ‘분수’ 연작 등이다.

유근택 작가의 예술적 화두는 “어떻게 하면 인간과 가장 가까이 있는 회화를 만들 수 있을까?”였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의 예술적인 정체성이 인간과 밀착된 회화에 매진하게 이끌었다. 하지만 이런 주제의식은 전통 동양화와는 배치된다. 전통적인 동양화는 한국성이나 동양철학 등의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거대담론을 엄격한 격식과 격조를 갖춘 고도의 시각성으로 표현하며 최고의 지적·예술적 경지를 탐험했다.

하지만 그는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미술세계를 구현하고 싶은 갈증에 누구보다 깊게 노출됐고, 그것이 거대담론에서 미시담론으로의 전환으로 드러났다. 한국성 동양철학 등의 주제에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로 전환한 것.

전통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미술은 필연적으로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동양화라는 정체성에 기대면서 현대미술에 부합하는 예술세계를 제시해야하는 시대적인 과제가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양가적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전통의 엄격성을 현대의 자유분방함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한지와 먹이라는 전통 물성은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화합은 ‘새로운 미술에 대한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미술이 전통미술의 핵심 물성을 고수하면서 전통미술의 내용과 격식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낯설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의 지향점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지점에서 동의를 얻고 있는 것이다.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동양화하면 기운생동이었어요. 저는 오히려 그것 대신 정서에 대한 개념으로 접근했어요. 제 마음을 제가 보려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작업도 가능했고, 작업의 한계도 없어진 것이죠.”

두드러진 변화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동양화의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주제 대신 인간의 이야기를 화면의 중심에 놓는다. 그는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보다 인간과 밀착된 일상의 풍경들을 매개로 은유하는 방식을 취한다. 특히 이벤트 없는 소소하고도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을 화면의 중심에 놓는다.

“왜 인간이었을까”에 대한 질문에 그는 “존재의 시간과 소멸에 대한 서사”라고 언급했다. 전통미술이 추구하는 거대 개념보다 인간의 생멸에 대한 서사가 그가 추구하는 회화의 주제였던 것이다. 그 저변에 “인간과 밀접한 회화”를 제시하고 싶은 열망이 자리했다.

그의 첫 주제는 역사와 관련됐다. 1986년부터 1990년대 중후반까지는 역사나 시간성의 문제에 천착했다. 계기를 제공한 것은 그의 할머니였다. 방위 복무 기간에 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할머니가 손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주로 할머니의 삶과 관련된 주제들이었지만, 할머니의 일생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의 한국근대사의 회오리 속에 있었다. 그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고, 이야기 속 유적들을 찾아보며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정립해 갔다. 그 인식들이 40m의 대작인 ‘유적-토카타(질주)’로 표출됐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단순하지만 복잡한 시간성을 유적들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다층적인 구조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의 예술의 중심축이 관념에서 일상으로 전화된 것은 90년대 후반부터였다.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모습을 스케치하면서 역사의 실체라는 것이 결국 개인의 구체적인 일상의 축적에서 발현된다는 것을 깨닫고 ‘일상’ 속 ‘지금’ ‘여기’에 주목하게 됐다. “제게 일상은 단순한 구조가 아니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하나의 세계였어요. 그 가능성의 세계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장치였어요.”

‘일상’을 다룬 초기작은 ‘창밖을 나선 풍경’ 연작이었다. 작가가 아파트 1층 베란다 창문 밖으로 바라본 풍경이었다. 아파트 화단 너머 오가는 일상 속 행인들의 모습을 그렸는데, 일상이라고 하기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수묵에 호분이나 과슈, 템페라 등의 서양적인 재료들을 혼합한 결과이기도 하고, 풍경에 연기나 길, 불 등의 요소들을 흔들리게 표현하며 불안함과 긴장감을 끌어들인 결과다. 이런 노력들은 ‘일상’에서 역사성을 발견하려는 작가의 노련한 메타포와 관련이 깊다.

“창밖으로 본 정원은 새가 오고가고 식물이 자라나서 죽는 인간과 다르지 않은 공간이었어요. 제게 창문은 동양화의 주제를 인간의 눈높이로 끌어내리는 상징적인 대상으로 다가왔어요.”

개인적인 차원의 일상은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됐다. 닭장 같은 격자무늬 아파트 창문, 장난감으로 잠식되거나 식물이 자라는 거실, 분수의 물줄기, 만찬이 끝난 테이블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작인 ‘또 다른 오늘’과 ‘어떤 풍경 2022’는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인간세상에 미친 영향을 통찰하고 있다. ‘또 다른 오늘’은 코로나 19로 인해 노인요양시설의 면회가 금지됐던 새로운 세태와 관련됐다. 그가 2021년 8월부터 22년 5월까지 오직 시각 인식만 가능한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에게 보낸 그림 형식의 편지다.

“선친께서 처한 상황들이 우리 모두의 상황이었고, 저는 아버지에게 그림 편지를 보내면서 큰 울림을 받았다”는 것이 당시 그의 마음이었다. “예술의 본질이 말이나 글이 아니고 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신문이 타고 있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그린 작품인 ‘어떤 풍경 2022’은 코로나 19로 봉쇄된 상황에서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작업이었다. 불과 연기, 타들어가는 신문지의 모습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지만, 신문이 타고 남은 재의 모습은 또 다른 풍경을 연상케 한다. “존재론적 이야기와 바윗돌 같은 풍경이 신문 작업에 공존했어요.”

시작과 끝, 태어남과 죽음 그리고 순환을 다층적인 시간성으로 집대성하는 그의 작업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변화를 거듭해왔다. 특히 일상의 풍경을 통해 간단치 않은 주제를 서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그의 서술들은 자유로웠으며 주제에 적확했다. 그 이면에 존재를 지극하게 바라보는 그의 예민한 시선이 자리했고, 그것이 의식의 흐름을 날카롭게 곧추세웠다.

깨어있는 의식들이 견고한 하나의 서사로 구축되기까지 필요한 것은 ‘대화’다. 할머니가 그에게 건넨 대화나 그가 아버지에게 건넨 대화, 다양한 일상들이 그에게 말을 걸었던 과정들이 시간의 축적으로 견고화되고 그것이 시각적인 서사로 완결되어갔다. ‘할아버지-아버지-작가 자신’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서사를 대화로 연결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일상 속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화’는 감정에 대한 소통이다. 누군가의 감정이나 풍경이 작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작가는 자신만의 감수성으로 대화한 내용들을 재구성한다. 이때 필요한 미술적인 행위가 더해지는데, 상상과 환상의 개입이다. 그가 감각한 일상의 풍경에 작가적인 상상과 환상이 더해지면서 화면은 낯섬으로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며 주제의식이 농염한 회화적 평면으로 거듭난다.

“평범한 거실 허공에 나무를 자라나게 하고, 거실 마룻바닥에 살림도구들을 미니어처처럼 그리고, 창밖을 지나는 사람이나 폭포의 물줄기를 흐릿하게 표현하며 화면은 현실과 초현실의 공간으로 거듭나는데, 그런 것들이 일상에서 틈을 발견하는 장치들이었어요.”

그의 작업에서 재료에 대한 연구는 필수다. 화선지와 먹을 근간으로 하는 작업 특성상 서사를 의도대로 표현하려면 재료적인 확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는 동양적인 재료가 주는 미학에 호분 등의 서양의 재료들을 혼합하며 시각적인 언어들을 다변화해 왔다. 재료 연구와 함께 형식적인 표현법도 남다르다. 그는 대상의 특징을 짧고 가벼운 붓질로 간결하면서도 힘차게 묘사하는 ‘모필소묘’를 선호한다. 전시는 대구미술관 2, 3전시실과 선큰가든에서 내년 1월 15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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