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정나영 토크콘서트 “테크닉 보다 공감 능력 뛰어난 연주자 되려 노력”
피아니스트 정나영 토크콘서트 “테크닉 보다 공감 능력 뛰어난 연주자 되려 노력”
  • 황인옥
  • 승인 2022.12.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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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스트림 도미넌트홀
‘지쳐있는 그대에게’ 토크·연주
연주자·작곡가·청중 함께 ‘공감’
출산·육아·번아웃 거쳐 더 성숙
전석 매진 행렬…‘대구팬’ 급증
피아니스트 정나영
피아니스트 정나영

“몇 층에서 뛰어내리면 확실하게 죽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날들을 지나왔습니다.”

5년 만에 열리는 자신의 독주회를 앞두고 피아니스트 정나영이 번아웃을 겪으며 힘들었던 경험담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축됐던 공연계 전반의 흐름과 달리 그의 연주회는 오히려 늘어났고 연주자로서는 연주자로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상황이었지만. 그가 맞닥뜨린 것은 번아웃이었다.

그의 번아웃을 물리친 것은 5년 만에 무대에 오른 독주회였다. 2017년에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 독주회에 이어 5년만이 지난달에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한 기획사로부터 독주회 초청 의사를 수락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마음껏 표출하게 되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하게 됐다. 그가 “그동안 육아와 많은 연주들로 힘들었지만 번아웃을 이끈 결정적인 원인은 5년간 독주회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점을 지난달 독주회를 통해 깨닫게 됐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대구 범물동 스트림 도미넌트홀에서 21일 오후 7시 30분에 열리는 그의 독주회 ‘피아니스트 정나영 토크콘서트’의 제목은 ‘지쳐있는 그대에게’다. 토크와 연주로 구성되는 이번 독주회의 서정(抒情)은 ‘아픔’이다. 아픔을 매개로 청중과 연주자와 작곡가의 작품이 서로 소통하고, 서로를 위무한다.

이날 연주될 곡목들도 작곡가들이 인생의 어두운 터널에서 작곡된 곡들이자 번아웃 당시 그가 위로받았던 작품들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8번 가 단조 작품번호 310, 브람스의 3개의 간주곡 작품번호 117, 바흐 무반주 첼로 연주곡 1번 프렐류드, 바흐 프렐류드 1번 평균율 1번, 바흐의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16번 다장조 545 등이다.

그는 번아웃을 경험했던 지난 3개월을 내적 성숙의 시기였다고 진단했다. “3개월간 번아웃 상태였지만 돌진하던 저를 멈추고 살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어요. 연주곡들도 연주자와 작곡가 청중이 ‘아픔과 위로’라는 하나의 감정으로 교감할 수 있는 작품들로 선택했어요.”

최근 2~3년 사이에 그는 대구콘서트하우스의 베토벤 피아노 전곡 소나타 녹음, 해설이 있는 음악회 시리즈, 피아노 듀오 리사이틀, 와인과 함께 하는 살롱 콘서트, 대구시향 마티네 콘서트 등에서 활약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역 공연계에도 찬바람이 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맹활약이었다.

연주자는 무대 위에서 빛날 때가 가장 행복한 법. 그는 코로나19라는 엄혹한 시기에도 다양한 기획 무대에 초대받았다. 행복한 비명을 지를 법도한데, 그는 2% 부족함을 떨치지 못했다. 결국 그런 감정들이 번아웃을 불렀다. 그는 번아웃을 연주인생의 교훈으로 승화했다. 그 핵심 내용이 독주회에 대한 믿음이었다. 연주자라면 백퍼센트 자신의 창작의지로 진행하는 독주회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이었다.

“연주자의 창의성이 십분 발휘되면서 한 뼘 더 성장하고, 성취감도 느끼는 독주회는 연주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무대임을 번아웃을 겪으며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정나영의 이력은 화려하다. 오스트리아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솔리스트 석사 과정 심사위원 만장일치 최고점 졸업, 오스트리아 최고 과정인 전문 연주자 과정 졸업, 세계 최고 명문인 독일 뮌헨 국립음대 최고 연주자과정 입학 오디션에서 유일한 피아노 전공자로 발탁되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안티 시랄라(Antti Siirala) 교수에게 사사하여 만장일치 최고점을 받으며 졸업했다.

유럽에서 그의 연주에 대한 평가는 “유럽인보다 더 유럽스러운 연주력”이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 유럽인들의 창작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창작물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그것이 곧 인간에 대한 이해였고, 유럽인들의 마음을 파고든 원동력이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귀국 후에도 저의 연주 인생을 떠받드는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서사가 절실한 이유는 청중과의 관계 때문이다. 서사는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철학은 유학 시절 어느 콩쿨에서 만났던 관객으로부터 촉발했다. “콩쿨에서 제 순서의 연주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나이 지긋하신 관객 한 분이 뛰어오셔서 ‘내가 전혀 모르는 여행지를 당신이 너무나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가이드 같은 연주였다’는 말씀을 주셨어요. 그때 ‘아! 나는 이런 연주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그가 바라는 연주자상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연주자다. 그는 조성진이나 임윤찬 같은 스타급 연주자처럼 테크닉적으로 감탄을 자아낼 만한 연주를 할 수는 없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자로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연주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출산과 육아, 번아웃 등을 거치며 그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내적 성숙도는 높아가고 있고, 높아진 공감지수는 연주에 십분 발휘하려 애쓴다.

이번 독주회는 그의 연주 철학을 단적으로 드러나는 공연으로 기대해도 좋다는 것이 그의 귀띔이다. “번아웃을 겪으며 든 생각은 ‘비록 힘든 상황이지만 묵묵하게 견뎌내면 이 시간들이 다른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기운으로 승화될 것이라고 믿었어요. 그때 가졌던 서사들이 이번 연주에 표현될 것입니다.”

공연장 기획공연이든, 자체 기획공연이든 그의 티켓 파워는 맹렬하다. 공연마다 전석 매진의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독주회도 티켓 오픈 하루 만에 전석 매진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어느새 대구 지역에서 그의 팬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자체 기획인 독주회와 달리 공연장 기획 공연을 통해 저를 알지 못하는 청중들도 공연을 관람하게 되면서 팬들이 생겨났어요. 그분들이 저를 더 좋은 연주자로 이끄는 원동력으로 믿고, 이번 연주회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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