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통신은 대화가 아니다
[박명호 경영칼럼] 통신은 대화가 아니다
  • 승인 2023.01.1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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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최근에 들은 일화 한 가지.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궁금함을 참지 못한 어머니가 마침내 모바일 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답신을 받지 못해 걱정하던 중 또 다시 장문의 문자를 보내며 꼭 연락을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며칠 후 마침내 아들이 답을 보내 왔다. ‘네’라는 한 글자였다. 아들이 무사함에 안도하면서도 답이 너무 짧은 것이 서운해 좀 더 길게 써 보내면 안 되겠느냐고 문자를 다시 보냈더니 이번에는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네 네 네’라고.

어머니는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고, 자세한 사연도 듣고, 서로 조언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의 계속되는 연락이 그리 반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진정한 대화를 원했지만 아들은 단순한 안부 통신을 한 셈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대화를 ‘마주 대하여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요즘 많은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도 말이나 글로 이야기를 잘도 나눈다.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제 정보통신기술은 대화의 수단으로 일상 사용된다. 대화의 매체인 ICT에서는 T(기술)보다는 I(정보)가 더 중요하다. 당연히 하드웨어(기술)는 소프트웨어(정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나누는 의미 있는 메시지, 곧 이야기를 전달하고 공감하는 C(소통)다. 단순히 정보의 주고받음만으로는 온전한 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은 기계나 정보시스템이 오히려 사람보다 능숙하다. 반면 대화의 목적인 공감이나 상대방이 말하는 뜻을 제대로 알려면 정보가 주는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적 요소가 대화의 핵심이다.

확실히 근래에는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대화가 매우 부족하고, 그 내용도 삭막하기 그지없다. 예전에 비해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매우 힘들어졌다. 코로나19와 같은 역병으로 교류가 제한되기도 하였지만 모두가 바쁘다고 해서 얼굴을 마주하기가 어렵다. 무엇에 그리 바쁜지 ‘바쁘죠?’라고 묻는 것이 인사다. 분명 살기는 더 나아졌다는데 모두가 허둥대며 살아간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친인척이나 친구는 물론이고 이웃과의 대화도 거의 단절 상태다. 사람(人)이란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라는데 모두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그런 까닭인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와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 경영에서도 구성원들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화로써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집결해 시너지(synergy)를 이루어야 경영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기업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되는 힘은 바로 소통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경영자가 구성원들의 지각, 기대, 요구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소통의 선결 조건이다. 먼저 기업의 나아갈 방향에 관한 정보를 종업원이 제대로 지각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종업원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영자가 주는 메시지를 종업원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무런 반응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에서 소통의 궁극적인 목적은 종업원들이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종업원과의 인격적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성격이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우리 국민들은 먹통과 불통의 정치 풍토를 크게 걱정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내기 때문이다. 여야 간에는 물론이고 자기 진영 내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올바른 해결책을 대화로 찾아내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연초에 대통령이 제시한 3대 개혁과제도 결국은 대화로써 국민 공감대를 이루며 추진해 나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일수록 국민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자세가 매우 필요하다.

무슨 대화에서든지 말하는 목적은 상대방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말을 듣는 것 역시 뜻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대화 가운데서 말 속에 담긴 뜻을 찾고 나름대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서로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남의 말을 성심 성의껏 듣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옛말에 독서를 할 때는 눈과 입과 마음, 세 가지가 합쳐져야 비로소 글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했다. 독서삼도(讀書三到)다. 마찬가지로 대화에도 마음과 몸의 준비가 필요하다.

설날이 다가온다. 고향의 부모님과 친지들을 찾아뵙고, 서로 마주보며 정겨운 목소리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삭막한 통신이 아닌 풍성한 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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