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교섭' 비난도 미화도 아닌…오직 ‘휴머니즘’
영화 '교섭' 비난도 미화도 아닌…오직 ‘휴머니즘’
  • 김민주
  • 승인 2023.01.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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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샘물교회’ 사건 소재
납치된 선교단원 23명 구출 목표
민감한 소재지만 본질에만 집중
현빈·강기영 연기 변신 ‘눈길’
공들인 스토리와 액션 밸런스
상업영화 균형감 잃지 않아
논란 줄고 영화는 안전해졌지만
구출의 카타르시스는 떨어져
영화-교섭1
영화 ‘교섭’ 스틸컷. 플러스엠 제공

23명의 선교단원이 아프가니스탄에 선교 활동을 위해 입국했다. 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버스에서 탈레반(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에 의해 납치됐다. 탈레반은 살해시간을 정해 알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어떠한 경우라도 희생 없이 인질 전원을 구출하는 것을 목표로 교섭에 나선다.

자국민들을 안전하게 귀환시킬 목적으로 교섭 전문 외교관 재호(황정민)가 현지에 파견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온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도 현장에 투입된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 뒷골목에서 생존본능 만렙으로 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다가 인질 협상팀 다리어·파슈토어 통역 전문가로 영입된 카심(강기영)이 합세해 예측 불가한 인질 협상 구출 작전에 돌입한다.

원칙이 뚜렷한 외교관과 현지 사정에 능통한 국정원 요원, 입장도 방법도 다르지만 두 사람은 인질을 살려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간다. 살해 시한은 다가오는데 협상 상대, 조건 등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교섭 성공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 간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든 피랍자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쯤되면 자연스레 한 사건이 떠오를 것이다. 영화는 지난 2007년 일어난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을 소재로 해 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국가의 이면을 파고든다.

당시 샘물교회 교인들은 정부 지침을 무시하고 여행제한 국가로 분류한 아프가니스탄에 선교 활동을 위해 몰래 입국했다가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단체 탈레반에게 인질로 붙잡혔다. 당시 정부는 대면 협상을 진행한 끝에 살해된 2명을 제외한 21명 전원을 구출했다.

영화는 피랍 당시에도 의견이 분분했던 피랍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비난과 미화, 그 어느 쪽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직 ‘인질’이란 보호하고 구출해 내야만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본질의 대상에 집중한다. ‘교섭’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피랍된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그들이 가진 고뇌와 사명감, 두려움의 순간을 포착해 진심 어린 시선으로 이야기를 그려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리틀 포레스트’ 등 매 작품 인간에 대한 존중 어린 시선을 담아낸 임순례 감독은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재를 감독의 장기가 묻어나는 인물의 ‘진심’에 초점을 맞춰 관객들을 설득하고자 노력했다.

110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사건이 왜 벌어졌는가’보다는 국경의 장벽과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뚫고 누군가의 생명을 구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집중하게 된다.

임순례 감독이 가장 공을 들였다는 최후 대면 협상 장면은 영화의 전체 서사를 압축한 몰입감을 전달한다. 탈레반 수장을 눈앞에 둔 목숨을 건 교섭 현장에서 재호는 21명의 목숨은 물론 통역을 자처한 카심 그리고 자신의 목숨마저 교섭의 성공 여부에 달린 상황에 놓인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 재호의 심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황정민의 얼굴은, 그 순간만큼은 ‘절실함’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황정민의 연기력이 협상의 긴장감을 완성하며 극의 몰입도를 최고로 끌어올린다.

현지 국정원이라는 캐릭터 설정에 맞게 거친 수염과 까만 피부 등으로 외모부터 변화를 꾀한 현빈은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파워풀한 액션 연기는 물론이고 재호의 특별한 파트너가 되어 극의 중심을 꽉 잡아준다.

카심을 연기한 강기영은 등장 때마다 숨구멍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영화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다소 어둡고 진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카심은 극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어려운 파슈토어를 랩 가사처럼 외웠다는 배우의 노력도 매 장면에서 느껴진다.

요르단의 경이로운 풍광 역시 ‘교섭’의 미학적 시퀀스를 완성시킨다. ‘교섭’은 입국 자체가 불가능한 아프가니스탄과 가장 유사한 풍광을 담을 수 있는 요르단에서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팬데믹 상황 속 여러 가지의 어려움을 딛고 촬영을 마친 ‘교섭’은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이국적이면서도 낯선 혼돈의 땅 아프가니스탄을 한국 영화 최초로 스크린에 펼쳐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밖에 없는 느낌”이라는 대식의 대사처럼 황량하고 거칠면서도 특유의 아름다움을 지난 광활한 풍경은 관객들을 압도하며 낯선 이국 땅에서 교섭관들이 펼치는 분투가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분명 아프가니스탄에 선교 활동을 위해 입국을 한 기독교인들의 피랍 사건은 국제 정세와 맞물려 민감할 수밖에 없는 소재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은 인간애와 국민을 위해 맡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공무원의 의무와 책임감에 집중하며 군더더기 없는 연출력을 선보였다. 여기에 액션과 캐릭터 사이 관계성에서 오는 재미와 긴장감 등 상업영화로서의 균형감을 잃지 않고 단단한 작품을 완성해냈다.

물론 이렇게 공들여 밸런스를 맞춘 덕분에 논란의 여지는 줄고 영화는 안전해졌지만, 그만큼 구출의 카타르시스는 떨어진다는 점이 이 소재를 다룬 작품이 가진 필연적인 아이러니다. 마침내 구해냈다는 기쁨과 동시에 밀려오는 여러 감정들이 복잡 미묘한 상념에 빠지게 한다. 구출에만 휴머니즘적으로 주목하려 했지만 구출만이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렇다고 교섭만 남는 것도 아니었기에.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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