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 아웃] 주지훈과 장르적 쾌감
[백정우의 줌인 아웃] 주지훈과 장르적 쾌감
  • 백정우
  • 승인 2023.01.1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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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젠틀맨' 스틸컷
영화 '젠틀맨' 스틸컷

 

한국형 범죄스릴러 작법은 2000년대 이후 그러니까 최동훈의 케이퍼무비 ‘범죄의 재구성’을 기점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영화가 발전하면 관객의 눈도 동반상승하기 마련이다. 달리 말하면 판에 박힌 형식과 내용으로는 관객을 사로잡기 힘들다는 것. 관건은 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의 무게중심을 명확하게 드러내는데 있다. 그래야만 관객은 장르적 쾌감과 만나게 된다. 그렇다! 쾌감을 안겨주지 못하는 영화는 관객에게 버림받는다. 어설픈 낭만주의를 표방하거나 과도한 폭력을 전시하는 것, 혹은 하위 장르가 끼어들며 서사를 어지럽히는 난해한 진행방식도 마찬가지다.

관객과 전문가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내가 김경원 감독의 ‘젠틀맨’을 주목하는 건 묘한 장르적 쾌감 때문이다. 그것은 배우 주지훈 특유의 아우라에서 촉발된다. 주지훈은 전작 ‘암수살인’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른 흉악범 강태오로 등장하며 허우대 멀쩡한 미치광이를 실감나게 연기했고, ‘아수라’에선 돈과 욕망에 충실한(무모할 정도로 조직에 특화된) 전직 경찰을 맡았으며 ‘좋은 친구들’에선 뜻하지 않게 인생이 꼬여버린 보험영업사원을 연기했는데, 시작은 늘 의기양양 호언장담하지만 과도한 불안과 의심에 사로잡혀 나락으로 떨어지는 캐릭터에 최적화되었음을 증명하였다.

주지훈의 연기를 보는 일은 필연적 의구심과 막연한 설렘과 이유모를 경탄의 연속이어서(연기력과는 다른 관점으로) 어떤 인물일지라도 주지훈이라는 외피를 입는 순간,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나는 그의 실루엣을 쫓곤 했다. 때문에 대형 로펌 대표와 고위 검사장 사이의 추악한 거래, 즉 성추문과 납치와 감금이 뒤섞인 역설적 제목의 ‘젠틀맨’에서 장르적 쾌감을 촉발하는 지점 마다 주지훈을 만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익숙한 것들의 경계허물기와 열등한 계급의 상승가능성이 21세기 영화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젠틀맨’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즉 경계 없애기와 지위 역전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밀접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검사와 가짜 검사의 위상 역전, 거대악과 일반범죄 사이의 경계 없애기를 주도하는 인물이 주지훈이라는 것. 검사의 수사가 범죄행각 아래서 기동한다는 점, 이를테면 진짜 검사의 수사 과정이 검사를 사칭한 자의 서브플롯을 장식한다는 점은 감독이 장르적 쾌감을 제대로 이해했음을 증명한다. 늘씬하고 훤칠한 범죄자와 강단 있고 스마트한 검사가 대조를 이룰 때 주지훈의 앞면과 최성은의 뒷모습이 거슬리지 않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에 따르면 우월한 자를 다루는 건 비극이고 열등자를 다루는 것은 희극이다. 범죄자가 검사를 견인하며 거대 로펌과 맞설 때, 그리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자에게 잡범 수준의 범죄(횡령, 뇌물공여 및 수수. 납치 감금, 성매매특별법위반) 혐의가 덧씌워질 때, 로펌 대표가 멈춰버린 시계에 몰두하는 사이 수사관이 들이닥치고 그의 범죄사실이 보이스오버로 들려오는 그 쇼트에서 나는 비극과 희극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장르적 쾌감을 본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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