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출신 정현 작가 프랑스 개인전…동원화랑 20점 응원 전시
대구 출신 정현 작가 프랑스 개인전…동원화랑 20점 응원 전시
  • 황인옥
  • 승인 2023.01.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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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 1:1 제작·색채 사용 등 통해 ‘새로운 세계’ 열어
대학 이공계 전공 후 프랑스 유학
판화에 대한 고민·열정 30여년
복제 가능 장점 포기 유일성 적용
한 판 작업도 색 중첩 ‘다른 작품’
한글·한지 등 사용 한국성 결부
자연물·山 연작 고국 향수 담아
정현작-Kaki-감나무1
정현 작 ‘Kaki(감나무)
정현작-Gingko-은행나무
정현 작 ‘Gingko (은행나무)’

감나무나 은행나무의 가지, 제라늄이나 들풀들이 단색조의 배경 위에서 존재감을 발한다. 한 화면에 하나의 대상을 그렸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윽하다. 화면 속 나무나 식물들을 포착한 순간은 꽃이나 열매가 절정을 구가할 때지만, 쨍쨍한 환희의 감정들은 심연의 그것처럼 아련하고도 깊다. 간결한 구성과 명도와 채도를 낮춰 얻은 결실이다. 배경과 대상 사이에 한글을 세로로 열을 맞춰 써넣은 화면에선 빛바랜 고서(古書)의 고풍스러움마저 묻어난다. 대구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정현 작가의 목판화 작품들이다.

목판화로 30여년간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정현 작가의 개인전이 프랑스 유일의 판화미술관인 그라블린시 데생과 판화 미술관에서 28일부터 8월 27일까지 열린다. 전시에는 목판화에 진한 애정을 드러낸 그의 작품 40여점이 걸린다.

프랑스 전시와 함께 대구에서도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동원화랑이 그의 프랑스 개인전을 응원하기 위해 공간을 할애했다. 김구림, 권오봉, 권대섭, 남춘모 등 14인의 작가가 함께하는 올해 동원화랑 첫 기획 전시인 ‘동원의 정원’전에 그의 작품 20여점이 전시됐다.

◇ 판화에 덧씌워진 선입견 깨고 싶어 판화 선택

정현의 판화는 단순한 매체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의 개인사가 깊숙하게 관여돼 있다. 그는 먼 길을 돌아 어린시절 좋아했던 미술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 막연하게 그림을 좋아했고 그림도 곧잘 그렸지만, 대학은 이공계로 진학했다. 하지만 내면 깊숙이 자리했던 미술에 대한 간절함을 떨칠 수 없었고, 마침내 1990년에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 그가 선택한 매체가 판화였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는 “프랑스 유학 시기인 학부 2학년 때 전공 실기 수업을 선택해야 했다. 미술공부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과목이 목판화였다”고 언급했다. 현실적인 선택이었지만 판화에 대한 기대감 또한 판화를 전공하기까지 적잖은 영향을 미쳤음은 부인할 수 없다.

파리 제1대학(팡테옹-소르본)에서 조형예술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파리 보자르(Beaux)에서 카보런덤 판화를 공부한 후 베이징의 다양한 작업장에서 목판화를 탐구했고. 지금은 파리에서 판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유학하던 시기 파리1 대학의 분위기는 판화를 미술의 중심부로 인식하지 않았다. 개념미술이 강세였던 파리1 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하겠다고 하자 박사 과정 이수 과목 담당 교수 중 한 명은 “누가 요즘 판화를 하냐? 판화로는 학생을 받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판화에 대한 그의 믿음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담당 교수의 거부가 있자 그는 파리 보자르에 교환학생으로 가는 결단을 했다. “그곳에서 오히려 새로운 판화인 카보런덤 판화를 공부할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30년간 판화에 매료됐던 가장 큰 이유는 판화가 가진 가능성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다른 판화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그의 열정을 늘 새롭게 했고, 마침내 그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판화의 세계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

◇ 표현방식에서 새로움 추구하며 판화의 가능성 제시

융복합과 장르 파괴의 시대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그림이나 사진, 판화의 경계 또한 허물어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매체 특유의 특징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다. 정현은 이 점에서 유능했다. 판화와 회화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들었다. 판화 작품이라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회화로 오해받을 만큼, 그의 판화에 흐르는 짙은 회화성은 여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일단은 색에서 판화의 일반론을 뒤엎는다. 그는 흑백 위주인 판화의 일반적인 흐름을 과감하게 깨며 화면을 색채의 향연으로 물들인다. “색을 통해 다채로운 세상을 적극 수용하고 싶었어요.” 색을 쓰는 방식 또한 명도나 채도를 한껏 낮추는 방식으로, 회화의 예민한 감수성에 접근해 간다.

색의 중첩 또한 회화성을 짙게 하는 요인이다. 그가 “어떤 판들은 같은 종이에 7~8번의 색을 중첩한다”고 언급하곤, “중첩하는 과정에서 색과 색이 섞이고 스며들면서 다른 질감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색의 중첩은 공간의 깊이를 확보하는 한편, 어린 시절 가졌던 여백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해소해 주었다. “배경을 메워야 한다”는 어린 시절 받았던 미술교육은 그에게 트라우마였다. “데생의 판 부분만 빼고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잉크로 덮는 판화의 특성에서 어린시절 배경에 대한 트라우마를 해소했어요.”

그의 판화를 회화다움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는 1 : 1 제작 방식이다. 그는 오직 1점의 판화 작품만 제작한다. 단시간에 복제가 가능한 판화의 가장 큰 장점을 포기한 것. 1 : 1 제작 방식의 핵심은 “회화가 가지는 유일성을 판화에서도 적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작 방식은 경직성보다 유연함으로 진행된다. △한 판으로 하나의 작품을 제작하거나 △한 판으로 여러 장의 작품을 제작하거나 △몇 개의 판을 섞어 하나의 판화 작품으로 만드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한 판으로 여러 장의 작품을 제작할 경우, 색의 변화를 통해 유일성을 유지한다. 동일한 화면을 복제하지 않는다는 것. “색의 변화는 단순히 색의 변화에만 머물지 않고 그 변화를 통해 새로운 질감과 깊이가 생겨나고 각기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 지게 됩니다.”

작가는 1 : 1 제작 방식을 “판화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1 : 1 제작을 통해 고유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끌어낸다. “하나의 판에서 각기 다른 색과 분위기를 추구하며 판화에 고유성을 추가할 수 있는 것은 판화의 다양성과 변화성에 대한 저 나름의 해석이라고 보면 됩니다.”

◇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판화에 녹이며 독자성 모색

표현의 영역 못지않게 인식의 영역 또한 독자적이다. 그의 판화 작품들에서 동양 문인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 배경에 자신의 뿌리인 ‘한국성’이 있다. 2002년에 파리 세르누치 동양 박물관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정체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박물관 소장품 중 한글로 된 작품을 본적이 없고, 박물관 수업의 많은 부분이 중국 문화 (한자)와 관련됐어요. 그때 저의 판화 작업만큼은 한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의 화면은 여백과 자연 그리고 한글로 구성된다. 시서화(詩書畵)의 합일을 강조한 전통 문인화의 구성법과 일치한다. 소재 또한 꽃이나 나무, 들꽃이나 들풀 등의 자연이며, 선(線)적인 요소들로 간결하게 표현된 방식도 전통회화와 맥이 닿아있다. 종이 대신 한지를 사용하는 것 또한 그의 작업이 한국성과 결부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판화 작업에서 한글은 의미적으로 접근되진 않는다. 단음절의 소리들을 적어 나가는 형식으로 자리를 잡는다. 의미보다 소리에 더 비중은 둔다는 이야기다. 이런 태도는 그가 어린시절 붓으로 한자를 그리며 소리내어 읽으며 천자문을 깨우쳤던 기억과 맞닿아 있다. “저의 천자문 읽는 소리가 산골 절간 스님들의 불경 읽는 소리처럼 들렸어요. 음계처럼 귀에 울리는 소리들을 빠르게 받아 적는다는 느낌으로 목판화에 한글을 써 내려갔어요.”

소재에 대한 고민이 늘 따라다녔다. 일단은 가장 가까운 곳인 일상에서 무시로 눈에 띄는 존재들을 찾았다. 자연이었다. 작업 초기에 단순한 소재로 접근했던 자연물에 시간이 흐르면서 개념화도 시도됐다. 이는 물(景)을 묘사함으로써 정신(情)을 드러내거나, 경물과 정신을 융합시키는 한국화의 전통에 정확히 부합했다.

“작고 흔한 것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라는 저의 자연관이 꽃과 나무 등의 자연물들에 이입해 갔어요.” 산을 소재로 한 ‘산(山)’ 연작에는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담아냈다.

여백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태도에도 한국 전통 미술의 특징이 녹아있다. 중첩을 통해 두껍게 깔거나 화면 가득 채워진 색들은 그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여백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었다. 박사 논문의 주제 조차 ‘판화에서의 여백이 의미’였으니, 여백에 대한 그의 고뇌는 진심이었다. “중첩되고 녹아난 색 속에서 역설적으로 동양의 여백의 의미를 찾고자 했어요.”

판화에 동양화의 산수 전통과 한글을 접목한 것은 어린 시절 서예를 했던 부친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건축 설계 일을 했던 그의 부친은 인격수양의 도구로 서예와 도자 예술을 즐겼고, 문인화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었다. 그는 부친의 예술 활동을 어깨 너머로 경험하며 무의식 중에 동양의 전통 미술에 젖어 들었다.

판화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어린시절 부친을 통해 접했던 전통 미술이 무의식 아래서 스멀스멀 올라왔고, 그의 판화에 접목되기 시작했다. 전통 미술과 판화가 접목되자 그의 판화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진화해 갔다. “제가 어린시절 아버지의 작품에서 내용도 모르면서 감동을 받았듯, 저의 판화작업도 감상자에게 감동으로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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