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경상호수 ‘하늘의 데칼코마니’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경상호수 ‘하늘의 데칼코마니’
  • 김종현
  • 승인 2023.01.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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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밤 은하수 광채와 낮 윤슬이 금호에 가득했다
중생대 공룡, 경상호수로 모여들어
침식작용 등으로 달구벌호수로 변모
경남-경기도로 이동하다 최후 맞이
아침햇살에 빛나는 황금빛 아침노을
한낮 햇살 받은 물결 옥구슬 처럼 빛나
어둠이 호수 덮으면 은하수 별 쏟아져
금호의하루축복
아침·저녁놀의 호수인 금호

◇직경 150㎞ 경상호수의 자존심 금호

달구벌호수의 모태는 중생대 경상누층군의 경상분지에 물이 고여 형성되었던 경상호수다. 짧은지름(短徑)이 150㎞(長徑 250㎞)가 넘었다. 한반도에서 최대호수였기에 중생대를 군림했던 지구촌의 모든 공룡들이 이곳으로 다 모였다시피 우글거렸다.

조산활동(화산폭발, 융기 및 침강 등)과 침식작용으로 거대한 경상호수에도 침식퇴적층이 15m나 쌓여지자 호수는 반경 40㎞ 내외로 좁아져 달구벌호수로 변모했다. 이에 따라 공룡들은 적자생존을 위해서 새로운 한반도의 저습지를 찾아서 흩어졌고, 6천500만 년쯤 혹성 충돌로 공룡이 멸종하기까지 최적 서식지였던 달구벌 호수에도 금호만 남았다.

화산활동으로 인한 재해를 피해 전남 보성에서 다시 경남 해남으로 마지막 피신지로는 군산을 거쳐 경기도 화성 거랑에까지 갔다. 그곳엔 화산폭발의 열과 열악한 환경으로 산란을 해도 부화가 되지 않았고, 먹거리마저 없어져 마지막 운명을 맞이했다.

화려한 공룡의 성스러운 최후(華龍聖終)가 반영되었는지 1794(정조18)년 화성(華城)을 축조하면서 장자(莊子 天地篇)의 화인축성(華人祝聖)고사를 벤치마킹해서 화성(華城)으로 명명하였다. 동아시아 제15위 캄보디아 톤레사프보다도 더 큰 경상호수였다. 이곳이 아침햇살을 받아 하루를 밝혔기에 주변에서는 아사달(阿思達, 아침 해 뜨는 땅), 조선(朝鮮, 아침 해 뜨는 신성함) 혹은 욱일승천(旭日昇天,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하늘) 등으로 칭송했다.

뿐만 아니라 저녁하늘의 온갖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경상호수를 보고 은한(銀漢, 은하수가 어린 큰물), 천한(天漢, 하늘이 비취는 큰물), 천하(天河, 하늘이 빠진 큰물), 혹은 운한(雲漢, 구름이 떠다니는 신비스러운 큰물)이라고도 표현했다. 경상호수는 하늘에 생긴 자연현상을 그대로 반영해 마치 미술작품으로 말하면 하늘의 데칼코마니였다.

이와 같은 신비함은 달구벌호수에 투영되었다. 삼한시대 때는 신성한 추수감사축제였던 아침신시를 이곳에서 열었다. 달구벌호수는 조선시대 금호로 축소되어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오늘날 달성십경에 ‘금호범주(琴湖泛舟)’라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시제(詩題)를. 아마도 동촌 구룡산 기슭, 운무에 싸인 아양루 위에서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단 하루 동안 금호(호수)에 펼쳐지는 그림들을 대략적으로 스케치한다면 i) 먼동이 트기부터 아침햇살에 빛나는 황금빛 아침노을, ii) 한낮 햇살을 받은 잔잔한 물결들이 수많은 옥구슬처럼 반짝거리는 윤슬(sun-glitter at noon), iii) 석양(해넘이)에 어둠이 깔리기 전 온 호수를 물들이는 보랏빛 저녁놀, iv) 어둠이 호수 위를 덮으면 하늘거울이 된 양 은하수별들이 쏟아져 내린 광채(star-glitter from heaven’s galaxy)를 모두 보담아 안게 된다. 금호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시인이 아니더라도 별들의 호수이고, 아침·저녁놀의 호수다. 그리고 한낮 물비늘의 호수(sun-glitter lake at noon)다.

금호에 비친 밤하늘의 별을 보고 덥석 주저앉아 한탄했던 시경(詩經)의 시 한 구절을 소개하면 “아~아~, 하늘은하수, 바라다보니 유난히도 빛나네. 저쪽 직녀성 찾아보니, 하루에 일곱 자리나 옮겨가네. 일곱 자리 옮기지만, (직녀답게) 비단무늬 못 짜네. 다른 쪽 견우성 쳐다보니 수레상자를 끄지 않네. 동쪽 하늘에 (금성이) 뜨면 새벽별(啓明星)이라고 하고, 서쪽하늘엔 개밥바라기별(長庚星)이라고 한다네. 휘우듬한 천필성(天畢星)은 뭇별 속에 담겨져 있을 뿐. 아~ 아~, (풍년을 안겨다 준다는) 남쪽 키별(南箕星)이 있건만, (가뭄에 흉년농사라) 키질하여 날려 보낼 껍데기조차 없다네. 아~ 아~, (국자모양의) 북두성이 있건만, 술이고 물이고 국자로 떠먹을 게 하나도 없다네. 아~ 아~, 남쪽 키별이 있건만, 뭐라도 잡히면 삼킬 듯이 혀까지 내밀었네. 아~ 아~, 국자모양 북두성이 있건만, (아예 못 잡도록) 자루마저 서쪽으로 돌려 버렸네.”

금호는 “달이 천필성(天畢星)에 걸려있으니 비가 내려도 세차게 내릴 것입니다”라고 희망을 이야기 했다. 남쪽 키별의 벌어진 모습을 보고, “조금만 입을 벌리면, 남쪽 키별처럼 까불어대니. 남을 헐뜯는 저 사람들은 누가와 더불어 음모를 하겠는가?”라고 읊기도 해 세상 무서움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금호의 밤하늘을 보고 이렇게 노래했겠지?

조선시대 민속화가였던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그림을 보면 김명원(金命元, 1534~ 1602)의 칠언절구 한시가 적혀있다. 어설픈 해석을 붙인다면 “삼경 깊은 밤, 창밖엔 가랑비 내리는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알 것인데. 사랑의 즐거움이 미흡한지, 하늘이 밝아오네. 다시금 비단적삼 잡고 훗날 가약을 묻는다네.” 같은 맥락에 사설시조가 있으니 “창외(窓外) 삼경 세우시(細雨時)에 양인심사양인지라, 신정(新情)이 미흡한데 하늘이 장차 밝아온다. 다시곰 나삼을 부여잡고 훗기약을 묻더라.” 서정주(徐廷柱, 1915~ 2000) 시인은 ‘동천(冬天)’에서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로 월하춘정을 노래했다.

2006년 제2회 정가경창대회에서 ‘흥보가’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에 지정된 이수자(가객 예찬건) 님의 ‘영제사설시조100곡(앨범)’에 수록된 ‘창외삼경세우시(窓外三更 細雨時)에’는 “창외삼경세우시에 양인심사 깊은 정과 야반무인사어시(夜半無人私語時)에 백년동락 굳은 언약, 이별이 될 줄 어이 알리. 동작춘풍(銅雀春風)은 주랑의 치소요, 장신추월(長信秋月)은 한궁인(漢宮人)의 회포로다. 지척천리 은하는 사이허고. 오작이 비산허니 건너갈 길 바이없고, 어안이 돈절(頓絶)하니 소식(消息)인들 뉘 전하리. 못 보아 병이 되고, 못 잊어 원수로다. 가즉히 석는 간장 이 밤 새우기 어려운저.”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 최근 유행하고 있는 하무마키 고한의 ‘은하록(Gingaroku)’노래가사에서도 “…가까이 가면 멀어지는 빛, 옅은 오렌지 빛이 어두워져서, 울어버리는 이유를 침묵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지는 까닭은, 웃어주는 것 같은 마법 같은 말, 은하는 숨기고 있으니까 그래.”라고 나오고 있다.

1960년대 국민(초등)학교 교과서에 ‘의좋은 형제’로 실렸던, 고려시대 금호 주변 성주 땅에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그리고 이조년(李兆年)의 빈곤한 가계를 꾸며가면서도 형제우애가 두터웠던 이야기가 있다. 막내 이조년은 고려의 원종에서 충혜왕까지 문신이고, 시인이며, 매운당과 백화헌 호를 가졌던 학자였다. 그가 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난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가 새삼 기억난다. 조선시대 정조 때 신위의 문집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소악부에 이조년의 시조가 칠언절구로 한역되어 올라왔다.

끝으로, 영남유생 연암 이좌훈(李佐薰 : 1753~1770)이 5살 때 지은 (금호강물에 비춰진) ‘뭇별들이 흐르는데(衆星行)’라는 시가 ‘연암유고(煙巖遺稿)’에 남아있다. “밤은 깊어만 가는 푸른 달빛 아래, 뭇별들은 곳곳에서 휘황 찬란히 빛나는데. 작은 구름이 (저 많은 별들을) 덮겠다고? 초하루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오니 별빛 더욱 유난하구나. 은하수 진주알이 무려 삼만 섬은 되겠네. 파란 유리 하늘에 모래 알알이 쏟아지듯이. (이걸 보니) 가슴에 상처딱지 하나 없이 떨어져 버리네. 원래의 기운을 찾아 더욱 힘을 내라고(群芒起虛無, 元氣乃扶持)…”로 시작해서 “이런 하늘의 이치를 누구 주인이 되어 펼치는지? 내라도 곧바로 하늘에 물어봐야지(天機孰主張, 吾將問化翁)”라고 끝맺고 있다. 1801년 4월 8일 서대문 네거리에 참수형을 당했던 이승훈(李承薰, 1756~ 1801)의 6촌 형이었다.
 

 
글·그림 =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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