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 첫 개인전…DGB갤러리 17일까지
이춘호 기자 첫 개인전…DGB갤러리 17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2.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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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에 희생된 영령들에 대한 ‘진혼화’
죽음 같은 삶·절망 같은 희망…
야생·원초적 정령 얼굴에 제시
붓 대신 조각하고 긁고 깎아내
다시-이춘호작뭉크의추억
이춘호 작 ‘뭉크의 추억’

산 자가 삶에 대해 가장 강렬한 의지를 불태울 때는 아마도 죽음 직전의 순간일 것이다. 자신의 죽음이나 타인의 죽음 앞에 직면 했을 때,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품는다. 심지어 죽음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행위들을 할 때조차 그 기저에 삶에 대한 갈망이 자리한다. 죽음이야말로 삶을 가장 진지하게 이끄는 원초적인 원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대구은행 본점 별관 1층 DGB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현직 영남일보 기자인 이춘호 작가의 첫 개인전인 ‘페이스토리(FACETORY·얼굴의 연대기)’전에 죽음으로 이승과 이별해야 하는 인간의 얼굴 표정들이 걸렸다. 죽음 직전의 얼굴 표정을 그린 신개념 인물화와 함께, 스케치북에 마음대로 그린 드로잉, 5합 한지와 합판에 그린 120호 짜리 꼭두변상도 1, 2 등이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하나같이 무섭거나, 기괴하고, 절망적이기까지 한 야수의 표정이다.

그는 “화면 속 얼굴은 꼭두처럼, 귀신처럼, 유령처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뭐랄까, 세기말 같은 경계의 얼굴”이라고 했다. “얼굴이 삶의 구간을 다 지나고 죽음의 표정으로 스러지면, 그 위에 ‘영정(影幀)’과 명정(銘旌)이 만장(輓章)처럼 포개집니다. 그 결별의 절망을 얼굴에 표현했어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도 기타와 노래에 심취하며 콘서트를 열었고, 미술 비전공자로 50대 후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다. 평범하지 않는 그의 족적에서 그가 예술적인 끼로 뭉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짐작한다. 그의 그림에 묻어나는 자유분방함은 타고난 기질이 이입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정제됨을 거부하고 일필휘지로 얼굴에 절망의 기운을 담아내려 했어요.”

죽음 직전의 무섭고 섬뜩하고, 흉측하고, 기괴하고, 으스스하고, 절망적인 얼굴을 그리기 위한 그의 표현법은 중견 화가에 버금간다. 밑그림을 거부하고 붓 대신 손가락과 손바닥, 칼과 끌, 정과 못, 철사나 돌맹이 등의 도구들을 사용하고, 사포, 나뭇가지, 구겨진 종이 등으로 원하는 질감을 표현한다. 먹, 락카, 몰타르, 돌가루, 머리카락, 모래, 먼지, 녹인 비닐, 아크릴, 한지, 검정 등도 섞는다. 그가 “그린다기보다 조각하듯 긁고 깎아낼 때가 많았다”고 언급했다.

희망보다 절망으로 얼룩진 얼굴들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중인 현재의 인간들의 고통으로부터 태동했다. 그는 코로나 19로 생의 끈을 놓거나 그에 버금가는 위협을 겪는 사람들의 절망스러운 얼굴들에서 오히려 “절망이 더 희망스러운 것 같았다”는 야릇한 감정을 경험했다.

그가 화면 속 얼굴들을 ‘페이스토리’로 명명했다. 아슴하고 어렴풋한 표정들을 얼굴(FACE)의 역사(HISTORY)의 합성어로 표현했다. 그에게 페이스토리는 불편한 이성의 끝, 그것을 자맥질한 여정이다. “고려 불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고려변상도(高麗變像圖)처럼 페이스토리는 망가질대로 망가진 금세기 표정의 연대기입니다.”

50대 중반에 화가로의 변신을 꿈꾸었던 배경에 그의 가족사가 있다. 그는 예술가의 기질이 충만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부친은 평생을 재야의 서예가로 살았고, 그는 그런 부친을 위해 ‘초록경’이라는 철학에세이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부친에 대한 존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스로 부친의 길을 따라 문방사우를 통해 서예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 여정들이 중첩되어 마침내 현대미술과도 조우할 수 있었다. 최근 3년여 전이 일이다. 기자와 현대서예가의 활동을 병행하다 부친의 죽음과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발작적으로 현대미술과 조우”했다. 그는 “마치 번개를 맞은 듯, 미친 듯 수 백 점을 채찍 맞듯 그려댔다”는 표현으로 현대미술에 심취한 상황을 설명했다.

비전공자이자 늦게 시작한 그림으로 개인전까지 꾸릴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삶에 배어있는 낭인스러움과 팔색조스러움이 한몫했다. 그는 20대에 범어사로의 출가를 시도하며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시작했다. 비록 출가는 불발되었지만, 그는 만행의 시간으로 기억하며 자족했다. 이후 초월명상에 관심을 두고 수행자들을 찾아다녔고 잡지사 기자라는 직업을 병행하며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얼개를 알기 위해 2천 권 이상의 책을 난독했다. 그리고 툭하면 무전여행 비슷한 산천기행을 즐겼고, 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세상과 인간을 공부했다.

“기자 생활을 통해 만난 숱한 화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부했던 서양미술사가 거름 구실을 했습니다.”

그는 ‘FACETORY’를 통해 가장 불편한 인물화, 가장 섬뜩한 표정을 추구한다. 지금까지 익숙하게 보아왔던 인물화와 판이하게 다른 신개념 인물화를 그리려는 것이 애초의 의도였다. 죽음 같은 삶, 절망 같은 희망, 이승 같은 저승, 울음 같은 웃음, 그런 중첩되고 대립적인 감정을 그림에 담아내고 싶었다. 속내는 비극적이고 비애스러운 존재, 코로나 19 팬데믹에 희생된 숱한 영령들에 대한 위무에 있었다.

그가 자신의 그림을 “내 나름의 ‘진혼화(鎭魂畵)’”라고 자부했다. “가장 생경하지만 가장 야생적이고 원초적인 정령을 얼굴들에 제시하려 했어요.”

화면 속 얼굴은 대개 어두운데, 어두운 색조로 수렴한 것은 진혼화에 부합하기 위함이다. 이런 태도는 평소 아트페어를 다니며 가졌던 의문과도 맞닿아있다. “말간 그림들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위로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그런 평소의 소신이 그림을 그리면서 어두운 색으로 구현됐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힘든 상황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그림이었다.

“제 그림이 결혼을 포기한 청년백수, 자살을 꿈꾸거나 도피 중인 신용불량자, 고독에 방치된 독거노인, 노숙자, 호스피스 병동의 말기암 환우, 우울증 환자 등과 공유되는 그림이기를 바랬어요.”

화가로서 그의 계획은 야심차다. 3차례 정도의 개인전을 대구에서 더 진행하고, 4회 개인전을 서울에서 개최하고 싶어한다. 이번 전시에 30여점의 작품을 걸었지만 미발표작을 150여점 보유하고 있어 가능한 계회이다. 이번 전시는 2월17일까지 대구은행 본점 별관 1층 DGB갤러리에서 열린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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