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의 겨울 넘나들기
영호의 겨울 넘나들기
  • 여인호
  • 승인 2023.02.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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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야, 내일 오전에는 어디로 갈래?”, “오늘은 파랏골(산 이름)에서 했으니 내일은 정골(산 이름)로 가자.”, “그래. 그게 좋겠다. 그쪽이 다니기도 좋고, 깔비(말라서 땅에 떨어져 수북이 쌓 솔잎의 의미인 ‘솔가리’의 사투리)도 많을 것 같다.”

50여 년 전 초등학교 6학년인 영호가 산에서 땔감용 나무를 하고 잠시 쉬면서 친구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겨울방학에는 오전과 오후에 땔감용 깔비를 했습니다. 5학년 때부터 지게질을 해서 6학년 겨울방학에는 지게를 지고 이산저산에 가서 땔감을 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나무를 한 짐 한 후에점심으로 시래깃국에 밥을 넣고 고추장으로 비벼 먹었던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6학년 때 영호가 가장 많이 한 운동은 축구입니다. 공부를 마치면 학교에 하나밖 없었던 축구공으로 매일같이 축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여름방학이 되고 겨울방학이 되었습니다. 정월 대보름이 되기 전부터 깡통으로 쥐불놀이를 하고 수수깡으로 농기구를 만들면서 훌륭한 농부의 꿈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고향 산천에 눈이 오면 며칠 동안은 땔감 걱정은 접어두고 아버지를 도와 새끼를 꼬고 가마니 짜는 것을 돕기도 했습니다.

6학년이었던 영호는 60대가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 지금도 아주 일찍 일어납니다. 휴대폰의 알람 시각은 첫 숫자와 마지막 숫자를 같게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호의 첫 알람은 4시 44분입니다. 혼자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면 7시 전후에 학교에 도착합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일정합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각 교실을 돌아보면서 난방을 합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기분 좋은 따뜻함이 가득한 교실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교장실에 끓인 차에 꿀을 조금 넣어서 학교 주사님과 보안관님께 한 잔씩 드리고 교문으로 나갑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아이들 아침맞이를 하고 급식실과 교무실에 들렀다가 교장실에 들어옵니다.

수업이 없는 날은 결재를 하고 공문을 확인합니다. 다시 교장실을 나서서 학교 담장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아봅니다. 학교를 이전한 게 25년이 지나서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습니다. 도서관 자원봉사를 하시는 학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교실을 돌아봅니다. 2년 전에 외벽과 창호 공사를 마쳤고 아침에 미리 난방을 해서 교실과 복도는 따뜻합니다. 지나가다 보면 쉬는 시간이기도 하고, 체육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1학년 교실에서는 자칭 1학년 씨름왕인 조○○와 씨름을 합니다. 1승 1패 이후에 진행되는 씨름은 계속 무승부입니다.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합니다. 어떤 날은 6학년, 또 다른 날은 5학년과 합니다. 어려서 축구를 많이 했고, 전임지인 교동초에서 맨발축구를 많이 한 덕분에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약속이 있는 날에는 정시에 퇴근을 하지만, 남아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도 합니다. 늦게 남아서 수업 연구를 하는 선생님들과 저녁을 먹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퇴근이 늦어집니다.

교대부초는 2023년 1월 18일 수요일에 졸업식과 종업식을 하고 방학을 했습니다. 3~4학년 공간혁신 때문에 여름방학이 길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겨울방학과 봄방학을 합쳤습니다. 11월에 교육부 공간혁신 공모에 선정이 되어서 겨울방학에는 1~2학년 공간혁신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방학 전에 시공업체 관련자와 여러 차례 협의를 하고, 공사 중에도 의논할 일이 많습니다. 공사와 관련된 분들께는 항상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안전하게 공사해 주세요. 그리고 이 학교에 내 손자 손녀나 내 아들과 딸이 다닌다고 생각하고 시공해 주세요.” 마침 시공업체의 친척들이 우리학교를 많이 다녔고, 책임자는 우리학교에 지원해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성실한 시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6학년인 영호의 겨울은 축구와 나무를 하고 쥐불놀이를 즐기면서 끝났습니다. 교원인 영호 겨울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영호에게 어떤 겨울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김영호 <대구교육대학교대부설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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