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앙거만 작품 전시… 윤선갤러리 내달 26일까지
피터 앙거만 작품 전시… 윤선갤러리 내달 26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2.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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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되고 비판적인 회화 속에서도 사랑의 기운 ‘넘실’
엘리트적인 스승 보이스와 결별
주류 개념 벗어나 구상미술 헌신
‘일반적인 이미지의 회화’ 지향
경쾌·다채로운 야외 작업 선호
스튜디오선 유머·철학 등 반영
“고뇌로 채워져도 결국 인간애”
피터앙거만현장에서
피터 앙거만
피터앙거만작MoneyisFree
피터 앙거만 작 ‘Money is Free’
피터앙거만-TrabiinBayern
피터 앙거만 ‘Trabi in Bayern’

유럽 특유의 목가적인 풍경이 유려하면서도 따뜻한 터치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지배적인 화풍을 목가적인 풍경화로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마냥 전원적인 감성만은 아니어서 더러는 귀여운 곰 인형이나 돈 등의 소재들을 대담하면서도 해학적으로 다루며 우리 삶의 부조리를 비판하기도 한다. 윤선갤러리에 소개된 피터 앙거만(Peter Angermann, b. 1945)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다.

최근에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앙거만표 회화’를 구축해왔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 화가로서 그의 여정은 회화로 자립하기 위한 고뇌의 시간들로 채워졌다. 회화가 고루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일 때 과감하게 회화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더 깊고 오묘한 회화의 세계를 제시하는 것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아왔다.

◇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제자였지만 그의 엘리트주의적이고 난해한 개념미술에 반기

회화로 그림을 시작했지만 그도 한때는 외도를 감행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그림과 자연과학에 흥미를 느꼈지만 독일과 미국의 팝아트와 개념미술에 경도되어 그 시기의 미술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던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로 학교로의 이동을 감행했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뉘른베르크 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 전공자로 열심이었지만, 뜻한 바가 있어 ‘사회적 조각’의 창시자인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가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쿤스트아카데미로 옮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몇 년 지나지 않아 결국 1972년 아카데미를 떠났다. 스승인 보이스가 추구하는 종류의 예술세계에서 개인적인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그는 보이스의 아이디어를 모두 폐기하는 결단까지 감행했다. 정통적이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는 플럭서스(Fluxus:반예술적 전위운동)식‘ 작품을 진행하며 스승인 보이스의 총애를 받았던 그가 보이스의 예술과 결별을 선언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억압과 권위에 반대하는 보이스의 행보에 이끌려 그의 문하로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의 엘리트주의적이고 난해한 작품세계와 자신을 동일시하기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달랐다”는 것이 그가 밝힌 이유였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새로운 관심사는 회화였다. 회화로 그림을 시작했지만 60년대 독일과 미국의 팝아트와 개념미술에 영감을 받아 세계미술사의 흐름을 주도하던 개념미술의 최정점을 경험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오히려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재발견하고 보다 진화한 시각으로 회화에 주목하게 됐다.

그의 이런 행보는 당시 미술계의 주류였던 개념미술과 보이스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잊혀진 구상미술에 헌신하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1960-70년대는 전통미술보다 비물질적인 개념미술이 강세였고, 그에 따라 풍속화나 산수화 같은 전통적인 구상 회화는 점차 후퇴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회화에 대한 그의 새로운 시도는 시대에 반하는 행보로 비춰졌다. 하지만 그는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았다. 주류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걷는 다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지만, 시류에 휘둘리지 않고 회화에 대한 중심을 더욱 굳건하게 잡아갔다.

그의 소신은 그룹의 행태로 또는 개인적으로 진행됐다. 쿤스트아카데미 재학 시기에는 그와 뜻을 함께 하는 동창생들과 함께 ’YIUP‘ 그룹을 결성해 보이스의 수업에서 그의 원칙에 반항하는 비판적인 작업을 펼쳤고, 아카데미의 가르침에서 독립한 후에는 비슷한 고민을 하던 동창 밀란 쿤(Milan Kunc)과 얀 크납(Jan knap)과 함께 또 다른 그룹 ’노말(Normal)‘을 결성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일반(Normal)적인 이미지의 회화를 만들자’고 선언하기도 했다.

“‘노말’ 회원들은 엘리트주의적이고 신비화된 예술을 극복하고, 일상을 소재를 재치있게 표현하는 우리들만의 조형 언어를 만들고자 고민하며 다수의 공동작품을 발표했어요.”

◇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미술’로 회화에 주목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미술’을 향한 그의 지향은 회화로의 회귀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의 회화는 반(反) 아방가르드주의, 풍경, 구상회화의 고전적인 모티브, 곰에 자신을 투영한 자화상의 변형, 알라 프리마(alla prima·밑그림이나 밑칠을 하지 않고, 덧칠하지 않고 한 번의 칠하기로 마무리하는 기법) 기법의 화풍, 구상회화의 전통적 개념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 팝(Pop) 장르 등의 형식으로 구체화됐다. “의식을 건드린 의미나 가치들을 회화라는 장르로 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 싶었어요.”

작업은 두 가지 경향으로 진행됐다. 다채로운 색과 리드미컬한 구성으로 담아낸 야외 풍경 작업(Plein-air)과, 유머와 철학을 결합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스튜디오 작업 등이 그것이었다.

야외 풍경은 인공조명이 아닌 옥외의 자연광선에 의한 회화적 효과를 표현하는 것에 집중한 작업이다. 야외에서 자연의 햇살을 받으며 그리는 플레인 에어(Plein-air·야외에서 자연의 햇살을 받으며 그리는 방식) 기법은 야외 작업 특성으로부터 왔다. 그는 자신의 거주지 주변이나 가까운 지역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편안하면서도 흥미로운 구성을 가진 지형을 찾고, 그곳에 자리를 잡아 작업을 진행한다. 해당 장소의 이름을 따서 제목을 지으며 지형에 대한 단초를 남기기도 한다.

“플레인 에어 작업은 현장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고, 더 자발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 매료되어 채택해 왔어요.”

현장에서 진행하는 작업은 작품의 규모가 50호 이하로 소규모이고, 최소한의 터치로 대상을 포착하는 알라 프리마 기법을 사용하는 등의 특징을 보인다. 충분히 심사숙고 할 수 없는 제작 환경으로부터 기인한 선택이었다. 짧은 제작 시간에 그린 작품이지만 화면에선 특유의 경쾌한 리듬과 편안함을 경험한다. 의식한 풍경을 내재된 경험적 코드로 재구성한 결과다. 장소의 이름을 딴 제목에 화면 속 풍경의 지형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심어놓는다.

“현장에서 그린 회화는 특정한 순간에 저의 주변 환경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인식과 그것을 추상적인 대상으로 인코딩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현장을 감각한 그의 인식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현장 그림을 선호한다는 의미가 그의 말에서 녹아났다. “현실을 저 자신의 인식으로 번역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했어요.”

현장 그림이 반(反) 아방가르드적(기존의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향과 운동을 선보이는 전위예술)이지만 각각의 풍경에선 그가 풍경에서 섬세하게 감각한 감성들이 표현된다. 나무가 심겨진 들판을 가로지르는 작은 개울을 표현한 화면에서 방금 자전거가 지나간 것 같은 물의 파동을 감지할 수 있다. 그가 “무언가를 위해 들판을 지나갔을 부지런한 사람들의 온기를 담아냈다”고 언급했다.

스튜디오 작업은 좀 더 계획적이다. 소재와 구성 그리고 주제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사회적이며 거시적인 담론을 시각적으로 서술한다. 사회적인 문제를 꿰뚫는 혜안, 철학과 수학에 대한 관심, 아이러니하고 유머러스한 성격 또는 일상적인 경험과 같은 개인적인 성격이 작업에 반영된다. 작품 ’Money is free‘은 스튜디오 작업을 대표한다. 몇 년 전 은행 위기를 다뤘던 연작의 일부다. “돈이 어떻게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지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돈을 필요로 하지만 돈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현장의 풍경이 스튜디오 작업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작품 ’Geburt der Venus(비너스의 탄생)‘에서 그런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현장에서 굴삭기를 먼저 그렸는데 특별한 메시지가 없어 스튜디오에 두고 고심하던 중에 결정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라 완성했다. “무겁고 다루기 힘든 흙을 파는 사람과 고고학적 발견을 대비했어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선택한 것은 유명하고 알아보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목가적인 풍경을 재해석한 풍경 작업은 물론이고, 귀여운 테디 베어나 화폐를 해학적으로 등장시키며 우리의 삶을 날카롭게 표현한 비판적인 작업에서조차 화면에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기운이 넘실댄다. 인간에 대한 사랑, 개인적인 삶에 대한 존중, 자연에 대한 경외심 등에 대한 그의 관점들이 인간적인 화면으로 귀결된다.

“저의 예술은 다른 현대적인 트렌드에서 영감을 얻기보다 개인적인 발전에서 더 쉽게 연결되고 많이 나타납니다. 그런 지점을 통해 저 만의 회화 세계를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그런 방향성은 계속 될 것입니다.” 전시는 3월 2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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