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튀르키예 민족의 역사
[류동학의 세상읽기] 튀르키예 민족의 역사
  • 승인 2023.03.0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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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튀르키예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돌궐로 보고 있다. 돌궐(突厥)은 튀르크를 한자로 차명한 글자다. 돌궐은 당시 세워진 오르혼 명문비석엔 '괵튀르크'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돌궐 제국(突厥帝國)은 BC 3세기 말부터 AD 1세기 말까지 발달한 흉노 제국에 이어 스텝 지역을 통일하고 튀르크 문화를 표방한 두 번째 튀르크 대제국이었다.
부민칸은 552년은 유연을 멸하고 흉노의 수도 외튀켄을 중심으로 돌궐 제국을 세웠다. 이후 동동궐은 무한(Mukan, 木汗, 553∼572)이 서돌궐은 이스테미가 지배했다. 이스테미의 아들 타르두(Tardu, 達頭, 576∼603)시기인 582년, 돌궐은 공식적으로 동(582~630)서(582~658)로 양분되었다. 동돌궐은 630년 당 태종에 의해 멸망하고 658년 서돌궐도 당 고종(재위649~683)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쿠틀룩 카간(Kutluk Kağan)이 제2돌궐제국(682~745)을 세웠다.
제2돌궐의 뛰어난 세 지도자는 퀼 테긴, 빌게 카간, 톤유쿡으로 오르혼 비문군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744년에 위구르, 바스밀, 카를룩 등 세 부족 연합의 반란으로 멸망했다. 이후 위구르 제국(745~840)이 성립되었다. 위구르 제국은 당 현종때 안사의 난(755~763)에 당을 도와 뤄양을 진압했으나 840년 튀르크계인 키르키즈(kirgiz)에 의해 멸망했다. 이 지역은 거란의 요나라가 나중에 지배한다, 여말선초의 설장수가 위구르인으로 경주설씨이다, 이 지역은 야그마 키질과 토시 크란이 중앙 아시아에 건설된 최초의 투르크계 이슬람 국가인 카라한조(840~ 1212)를 건국한다.
중앙아시아와 아랍세계의 용병으로 활약한 많은 튀르크 제족들 중에서도 오우즈족이 현대 튀르키예 민족의 뿌리가 되었다. 이들은 카스피해와 아랄해 사이의 초원 지역에 '오우즈 야구브국'을 세웠으며 이들 중 일부가 남하하여 대 셀주크 제국(1037~1157)을 세운다. 다른 오우즈족들은 현지에 남아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성립에 기여했다.
셀주크조의 창립자는 형제인 투그릴 벡(1038~1063)과 차그릴 벡이었다. 이들은 셀주크의 아들인 미카일의 아들들이다. 미카일의 동생인 이스라일 후손들은 룸 술탄국이라 불리우는 국가를 소아시아 반도에 만들었다. 셀주크는 시르다리야강(江)의 하류 지역에서 발흥하여 사만왕조(874-999)를 물리치고 호라산을 지배했던 투르크계의 이슬람 국가 가즈나왕조의 세력을 1040년 단다나칸전투에서 승리하여 몰아내고 호라산을 점유하였다.
가즈나 왕조(962~1186)는 이란계의 사만 왕조의 궁정 노예 출신 알프티긴(재위 962~963)이 아프카니스탄의 가즈니에 세운 국가로 최초의 술탄 마흐무드(재위998년~1030년)는 10여 차례 인도를 원정하여 영역이 동쪽은 인도 펀자브의 라호르, 북쪽은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드·부하라, 서쪽은 이란의 라이·이스파한까지 미쳤다.
셀주크는 1055년 바그다드에 입성하여 이란 최초의 시아파(派) 왕조인 부와이즈왕조(932-1062)로부터 지배권을 넘겨받았다. 셀주크의 군주 투그릴은 압바스 왕조(750∼1258)의 칼리프 알 까임(재위 1037~1075)으로부터 '동서방의 술탄', '최고의 아미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 당시 칼리프는 이베리아반도의 후우마이야 왕조(756∼1031)는 멸망하여 이집트의 시아파 파티마 왕조(909-1171), 이라크 바그다드의 압바스 왕조의 2인 칼리프 체제였다.
알프 아르슬란(Alp Arslān: 1063~1072)은 1064년 옛 아르메니아 수도 아니(Ani)를 병합했다. 1071년에 8월 19일 아나톨리아 동부 반(Vān) 호수 북서쪽 만지케르트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크게 격파하고 황제를 잡았다. 이 승리의 결과는 중동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071년은 곧 튀르크가 아나톨리아에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십자군전쟁(1096~1270년)을 불러왔다. 십자군은 현 튀르키예 지역피해지역에 에데사 백국(1098~1144),안티오크 공국(1098년 – 1268년),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1198~1375)등을 세웠다.
말리크 샤(재위 1072~1092)는 부왕인 알프 아르슬란에 이어 활약한 명재상 니잠 알 물크의 보좌를 받아 제국을 상당히 안정적으로 통치하였다. 그의 지배권은 트란스옥시아나에서 아제르바이잔·이라크·시리아·아나톨리아(튀르키예)까지 확대되었다.
말리크 샤의 죽음이후 셀주크는 분가(分家)하여 아흐마드 산자르가 지배한 후라산의 셀주크조, 키르만 셀주크조,룸셀주크조(1077~1307).시리아 셀주크조( 1094~1117), 이라크 셀주크조(1117~1194)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룸 셀주크조가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었다. 9대 술탄에 오른 아흐마드 산자르(재위1118~1157)는 무너져가는 제국을 복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거란족의 서요(1132∼1218)의 야율대석에게 사마르칸드부근의 카트완전투에서 대패하였다. 셀주크의 정복은 중동에 새로운 질서를 창출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동이 전기 압바스제국(750~1258)이래 처음으로 하나의 권위 아래 통일된 것이다. 중국 국경으로부터 지중해까지 방대한 무슬림의 영토가 셀주크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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