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동 개인전, 갤러리 더 블루
이원동 개인전, 갤러리 더 블루
  • 황인옥
  • 승인 2023.03.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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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화의 전통적 조형성 유지
재료·채색·구도는 새로움 추구
홍운탁월 기법으로 공감각 자극
화제 쓰던 자리엔 조형요소 넣어
이미지 시대 사는 현대인과 소통
장방형 50호 등 100여점 선봬
이원동개인전-1
이원동 작.

맵고 찬 겨울바람이 투박한 몸통을 한 바퀴 휘감아 돌자 ‘사그락’ 소리가 칼칼한 허공을 가른다. 댓잎이 바람에 부딪히며 내는 파열음이다. 석경 이원동이 겨울 대죽의 푸르른 생기를 한지에 먹으로 단숨에 그려냈다. 찰나적인 붓의 운용으로 가로 7m와 세로 2m 크기의 대작에 대나무의 기개와 절개를 포착했으니, 그 위용이 선계(仙界)가 따로 없다.

대죽이 천하를 호령하고도 남을 기세라면, 가녀린 몇 가닥의 선으로 완결지은 난초의 자태는 고고함의 극치다. 호통한번 치지 않고 천하를 호령하는 경지다. 석경 이원동이 갤러리 더 블루에서 진행하는 30번째 개인전에 소개하는 대나무(竹)와 난초(蘭) 그림이다.

“나무인가 싶으면 풀이고, 풀인가 싶으면 나무”라고 언급한 고산 윤선도의 대나무나 향기가 천리를 간다하여 난초를 ‘난향천리’라고 칭송했던 당나라 시인 이백(二伯)의 난초에 대한 예찬이 석경의 문인화에서 생명력으로 잉태된다. 수묵으로 그린 난초와 대나무의 경지가 가히 무소부재(無所不在)에 비견될 만한데, 50여 년 간 지극하게 수묵에 매진한 그의 결실이다.

“세죽이 서예적인 운필을 구사해야 한다면, 대죽은 붓 전체를 끌고 가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저는 50년을 수묵으로 단련이 되어 세죽을 그릴 때나 대죽을 표현할 때나 크게 흔들리지는 않아요.”

거침없는 태도는 석경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석경은 언제나 자신의 삶이나 예술 앞에 당당하다. 지난 50년간 한 눈 한번 팔지 않고 진실되게 화업에만 매진한 시간들에 대한 당당함이다. 일찍이 석경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관통하는 새로운 수묵화를 목표로 매진해왔다. 그 열망이 먹 대신 직접 만든 석채(石彩)를 사용하거나 전통적인 구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운필을 구사하는 등의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드러났다.

“성실하게 매진한 시간들과 저만의 수묵화를 추구해온 태도가 50년이 쌓였기에 자유로운 화풍을 구사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이죠.”

전통을 현대적인 미감이나 어법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많은 예술가들의 과제였다. 하지만 석경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다. 옛것에 토대를 두고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 했다. 재료나 채색, 구도, 소재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작품의 규격 역시 아파트 문화에 맞게 다양하게 제작했지만 전통 수묵화의 근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문인화라는 조형성은 지켜온 것.

최근 2~3년 사이에 석경은 수묵에 다시 빠졌다. 새로운 재료에서 현대적인 관점을 모색했던 과거와 달리 수묵으로 승부수를 띠우고 있는 것. 과거와 다르다면 욕망을 들어냈다는 것이다. 비워낸 마음들을 툭툭 던지듯 뻗어 나간 선들에 이입하며, 담백하면서도 고고한 수묵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욕망을 들어내면서 자유로운 화면을 얻을 수 있었어요.” 시각 예술에서 청각과 후각까지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선계의 경지가 아닐까?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석경의 대나무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고, 난초에선 그윽한 향에 취하는 듯 했다. 대숲을 지나가는 바람 길이 보이고, 난초에선 난향이 배어나왔다.

달을 그리되 하늘이나 구름 등의 주변을 그려서 달이 드러나게 하는 표현법인 홍운탁월(烘雲托月)을 구사한 대목에선 눈밭의 대죽을 경험하게 했다. “대나무 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그림자처럼 그려서 바람을 표현하고, 절제된 난초의 선 사이에 소담하게 핀 꽃에서 향기까지 들여놓으려 했어요.”

전통문인화는 관념의 예술이다. 소재에 이상이나 철학을 덧입혀 은유한다. 하지만 석경은 관념을 버리고 표현법에 집중하려 한다. 전통문인화가 추구했던 유교사상이 지금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선택이다. 산업사회에서 이미지의 시대로 이행한 동시대의 현상을 수용한 결과다. “대나무의 지조나 난초의 절개나 매화의 고결함을 요즘 사람들에게 말해도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예술이 시대와 호흡해야 한다고 보고 간결한 형상으로 말하고자 했어요.”

문인화는 시서화가 결합된 종합예술이었다. 석경은 전통 문인화의 정신은 이어가되, 형식에서 구애를 두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고 화제(畵題)로 설명을 곁들였던 공식에서 벗어나 조형요소들로 화제를 대신했다. 문자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화제를 써서 첨언하지 않아도 난초의 향기나 대나무의 바람의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조형적으로 표현했어요. 이미지의 시대인 현대인의 감수성을 이해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7mX2m대작부터 장방형의 50호, 20호, 10호 등 100여점을 소개하는 그의 서른 번째 개인전은 갤러리 더 블루(대구푸른병원14층)에서 7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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