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세한삼우도...선비가 지조를 지키듯 추운 겨울 버틴 세 벗 ‘송·죽·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세한삼우도...선비가 지조를 지키듯 추운 겨울 버틴 세 벗 ‘송·죽·매’
  • 윤덕우
  • 승인 2023.03.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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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조맹견 ‘세한삼우도’
먹으로만 그린 수묵백묘법 특징
白梅·가는 가지·짙은 잎 조화로워
명나라 변문진 ‘삼우백금도’
구륵법으로 세밀하게 물상 표현
채색 발전하면서 꽃·새 그림 더해
조선 전기 석경 ‘마고채지’
삼우 배경으로 옥황상제 시녀 담아
당시엔 보기 드물었던 인물화 눈길
며칠 전 경칩이라더니 날씨가 제법 풀려서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민화 연구소 문 입구에 심어두었던 미스김 라일락(수수꽃다리 속 식물로서 1947년에 캠프잭슨에 근무하던 미국 군정청 소속 식물 채집가 엘윈 M. 미더(Elwin M. Meader)가 북한산 국립공원 내 도봉산에서 자라고 있던 털개회나무의 종자를 채취,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해서 ‘미스김 라일락(Miss Kim Lilac, Syringa patula “Miss Kim”)’이라는 품종을 만들었고 당시 식물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 타이피스트 김(kim)씨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였으며, 1970년대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가정용 관상식물로 알려져 있다.)이 올 겨울 추위에 얼어 죽었나 보다 싶었는데, 가지 끝 초록 기운에 시원하게 물을 부었더니, 새싹이 벌어졌다. 다행이다 싶고 올해는 기다리던 꽃도 보겠다 싶어 지금부터 설렌다.

요즘 사람들에게 봄을 대표하는 꽃을 물어보면 향기 좋은 프리지아, 고고하게 피는 수선화, 빛깔 고운 튤립 등 그 옛날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꽃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예전에는 겨울을 지나 봄소식을 먼저 알리는 대표적인 꽃은 매화였다.

조선시대 초기 문집에 실린 한시를 살펴보면 다른 꽃에 비해 매화를 읊은 작품이 압도적이다. 그림의 소재로도 사군자의 개념이 들어서기 전에도 송(松),죽(竹), 매(梅), ‘세한삼우(歲寒三友)’가 화재(畵材)의 중심이었다.

세한삼우라는 말은 ‘세한’ 즉 ‘설 전후의 추위’라는 뜻으로 매우 심한 한겨울의 추위를 이르는 말이다. 삼우는 말 그대로 세친구로서 추운 겨울 산야에 은은한 향기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으로 곧게 자라는 대나무, 십장생(十長生)에도 포함되며 낙락장송(落落長松)부터 반송(盤松)까지 늘 푸른 소나무를 일컬으며, 이 셋을 ‘세한삼우(혹은 삼청三淸)’이라고도 한다.

‘삼(3)’이라는 숫자는 중국 고동기 중 발이 셋인 솥인 정(鼎)에서 연유한 것으로 삼국정립(三國鼎立)이나 삼위일체(三位一體)처럼 완벽과 안정을 상징한다. <논어(論語)>에 언급된 이로운 세 벗 ‘익자삼우(益者三友)’는 강직하며 아량이 넓고 박식한 이들로 표현된다. 또한,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지은 ‘오우가(五友歌)’에서는 소나무와 대나무 외에 물·돌·달 등도 친구에 포함되기도 한다.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 한·중·일 세 나라에선 아주 오래전부터 이 세 소재를 각기, 또는 솔과 대, 대와 매화 등 두 가지, 나아가 셋을 함께 즐겨 그렸다.

현존하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옛 그림을 통해 지조를 굽히지 않는 군자의 인격을 투영한 세한삼우의 모습을 살펴보자.
 

조맹견-세한삼우도
조맹견 작, 세한삼우도, 견본수묵 32.2×53.4cm 대만 고궁박물원소장

위 그림은 중국 남송시대 화가조맹견(趙孟堅, 1199~1295)의 소품 <세한삼우도>이다. 그는 남송이 멸망하자 원(元)나라 조정에서 벼슬살이를 거부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은거해 시(詩)·서(書)·화(畵)에 매진하며 고서화 수집과 감식에도 일가를 이룬다. 그가 즐겨 그린 그림 소재로는 자신의 심회를 드러낸 듯 먹만으로 그린 수묵백묘법(水墨白描法)위주의 죽석(竹石)과 매화·난초·수선화 등으로 해맑은 격조를 지닌 명품들이 많다. 위 그림은 세한삼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비단에 먹만을 사용해 유려한 필치로 그린 그림에는 절지(折枝) 형태로 화판을 펼친 백매(白梅)와 가는 잎의 솔가지, 그리고 짙은 먹색의 잎이 돋보이는 대나무 가지가 서로 잘 어우러진다.

명(明)나라 시대에는 채색화가 발전하면서 삼우(三友)와 화조(花鳥)가 섞여있는 그림이 탄생했다. 명(明)나라 채색화조의 궁정화풍으로 이름난 변문진(邊文進, 15세기)의 <삼우백금도三友百禽圖>를 소개한다.
 

변문진-삼우백금도
변문진 작 , 삼우백금도, 견본채색 151.3×78.1cm 대만 고궁박물원소장

변문진의 영모(翎毛圖),장자성(蔣子成)의 인물(人物), 조렴(趙廉)의 호랑이 그림과 함께 ‘금중삼절(禁中三絶)’로 불렸다. 대부분의 물상(物像)을 구륵법으로 세밀하게 그렸으며 새들의 형태가 세밀하고, 정확히 그려냈다. 작품 제목이 증거 하듯 새와 바위를 빼면 골격으로 삼우가 선명히 드러난다.

우리나라 화가들의 삼우도(三友圖)를 살펴보자. 조선 전기 시대 화가인 석경(石敬)의 <마고채지麻姑採芝>에서 삼우를 살필 수 있다. 이 그림에서는 고려부터 조선 초 산수화의 구성요소로 삼우의 기능과 역할을 알 수 있다.
 

마고채지-석경
석경 작, 마고채지, 견본채색 21.9×19.0cm 간송민술관 소장

위 그림의 화가 석경(石敬)은 조선 전기시대의 화가로 안견(安堅)에게서 그림을 배웠던 제자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안견의 제자였다고 하는 것은 오세창(吳世昌)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만 보이고 있고, 다른 기록들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분명한 사실로 단정 지을 수 없다.

또 <명종실록>에는 ‘석경(石璟)’이라는 화원(畵員)이 이상좌(李上佐)와 함께 1549년(명종 4)에 중종의 영정(影幀)을 그렸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 주목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석경은 바로 석경(石敬)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되므로, 석경은 16세기 중엽에 활동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그가 1세기 전의 화가였던 안견의 제자일 수는 없고, 아마도 안견파의 화풍을 추종했던 16세기의 화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고는 옥황상제의 시녀로서 꼭 천도복숭아 바구니를 들고 등장한다. 옥황상제란 고구려 시대에 중국 도교(道敎)의 유입으로 그 당시 우리백성들도 하느님과 같은 최고의 신으로 알고 있다.

위의 작품 마고채지는 마고선녀가 사슴을 데리고. 파초 잎을 들고 망태기를 허리에 차고. 영지를 캐러 나선 모습이다. 대담하고 선명한 소나무 둥치와 그사이로 나오는 붉은 매화 꽃송이, 마고 발아래 대나무 잎까지 삼우의 형상이 배경으로 그려져 그 기능과 역할이 감지된다.

보기 드문 조선 전기 시대의 인물화라는 점에서 독자들께 소개해드린다.

자! 이제 오늘, 이 시대의 삼우도(三友圖)를 감상해보자. 필자의 스승으로서 30번째 개인전을 <갤러리 더 블루>에서 개최하고 있는 석경 이원동 선생님의 그림이다.
 

이원동
이원동 작.

가끔씩 선생님의 화실에 가면 호방한 대나무의 줄기와 그사이로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을 느낄 수 있고,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배경으로 붉게 피어나는 매화의 꽃잎을 볼 수 있어 눈과 마음이 행복해진다.

삼우(三友)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고 꽃을 피우는 특성이 있어, 인내와 절개를 상징하는 그림이다. 어쩌면 50년간 한 눈 한번 팔지 않고 진실 되게 화업(畵業)에 매진한 화가의 끈기와 열정을 느껴보시라. 아울러 눈과 마음의 즐거움도 느껴보시라.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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