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갤러리 전속작가 신경철 ‘저 멀리서’展…4월 22일까지
리안갤러리 전속작가 신경철 ‘저 멀리서’展…4월 22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3.1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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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 건조→단색 페인팅→선 드로잉
회화 새 가능성 찾다가 ‘역순 작업’ 선택
은회색 사용해 비현실적 풍경성 극대화
“아련한 분위기에 마음 맡기고 싶을 것”
자연 풍경에 상상력 더해 관념성 강화
원경·근경 아우르는 풍경 20여점 선봬
신경철작T-HERE
신경철 작 ‘T-HERE’ 연작. 리안갤러리 제공

예술은 발견 아니면 발명의 영역 중 하나다. 미처 보지 못한 사물이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 발견이라면, 전에 없던 물건이나 방법 따위를 새롭게 착안하는 것이 발명이다. 신경철 작가는 예술을 발명의 영역으로 인식한다. 그의 예술 활동이 철저하게 ‘회화의 새로운 방법론 모색’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을 예술가의 책무로 받아들인다.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리고 있는 신경철의 ‘저 멀리서(In the Distance)’전에 그가 제안하는 특화된 예술세계가 펼쳐져 있다. 올해부터 리안갤러리 전속을 공표하는 선언적인 전시이자, 원경과 근경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녹여낸 다채로운 풍경 신작 20여점을 소개하는 자리다. 

◇ 회화에서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발견

그의 풍경이 바라보는 세계는 관념이다. 직접 보았거나 인터넷 등에서 채집한 풍경 이미지에 예술가적 상상이라는 2차적인 감각 행위를 더하며 새로운 풍경으로 도출한다는 측면에서 현실 풍경의 재현과 거리를 둔다. 신체 기관을 통해 인식하는 본능적인 감각 행위와 신체 안팎의 자극에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고차원적 인식능력인 오성 활동, 타고난 기질과 경험의 축적으로 형성된 개별적 감정의 활성화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현실 풍경을 관념의 풍경으로 전환한다.

그가 새롭게 제시한 자신의 풍경을 재현된 풍경과 분리하며 ‘풍경성’으로 명명했다. “저의 풍경성은 재현된 풍경의 재해석 버전입니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현대미술도 현대사회의 속도전에 편승하며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세상의 속도로부터 자유롭다. 비록 느리더라도 자신이 목표한 바에 충실을 기하려는 주의다. 그 충실함에서 강렬한 힘이 형성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태도가 회화와의 농익은 밀월로 표출됐다.

그는 작업 초기에부터 ‘회화에 대한 집중’으로 작업의 방향성을 잡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업을 본격화 하던 초기에 표현주의에 경도되어 세상의 속도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취했고, 그것이 회화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드러났다. 

“표현주의에 흥미를 느꼈고, 그것은 저의 정서와도 맞았어요.” 하지만 당시에 유행하던 미술사조는 팝아트나 미디어아트, 설치 등의 뉴미디어와 관련됐고, 전통매체인 회화에 집중하던 그의 미술세계는 구태의연함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신경철작T-HERE-2
신경철 작 ‘T-HERE’ 연작. 리안갤러리 제공

◇ 예술의 출발점을 작가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둔다. 

사회적인 속도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옳았다. 자신만의 속도에 대한 믿음을 ‘예술적 기운 상승’으로 연결해 냈기 때문이다. 상승하는 결과치를 도출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매체를 끌어들여야만 혁신인가?’ 하는 의문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새로운 미술에 대한 탐구가 구태의연하다고 치부되는 바로 그 회화라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선택은 “그 어떤 매체보다 회화가 더 혁신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의 전환에 기인했다. 그때 떠오른 그의 혁신은 회화의 일반적인 방법론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밑그림인 드로잉을 후에 형상을 그리는 전통회화의 작업 방식을 역순으로 치환해 새로움과 완결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혁신이 아닐까 생각하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수차례에 걸쳐 석회를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캔버스 바탕의 밀도감을 높인 뒤 은색이나 흰색 등의 단색으로 배경을 칠하는 것으로 작업은 시작된다. 이후 직접 촬영하거나 인터넷에서 채집한 풍경 이미지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풍경을 화면에 쌓아간다. 그런 다음 배경과 풍경의 경계지점을 선으로 마감하면 모호하면서도 몽환적인 풍경이 존재감을 드러난다. “저의 작업은 재현과 거리가 있습니다. '재-이미지화'이자 '탈-이미지화'죠.”

선 드로잉은 일반회화의 밑작업과 일치한다. 특별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분명 특별한 지점이 존재한다. 비밀병기는 작업의 순서를 역순으로 뒤바꾸는 것이다. “첫 단계에서 진행되는 밑작업을 마지막 단계에 위치시켰어요.” 일반적인 작업 순서의 전복은 팝아트나 미디어아트라는 새로운 매체를 굳이 구사하지 않더라도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역순을 따르는 그의 작업 방식은 “연필로 윤곽을 그리면 스치듯 지나간 붓의 흔적을 더 명료하게 하는 효과”로 연결됐고, 또 하나의 예술적 방법론의 발명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작업의 순서를 바꾸자 화면에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지점들이 생겨났고, 그림이 마치 ‘나를 좀 봐 달라’고 하는 것처럼 존재감이 부각됐어요.” 

작업의 출발에 작가 자신을 세우는 방식은 많은 작가들에 의해 채택된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예술일 때, 내용적인 서사나 진정성에 농밀함을 끌어올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신 작가의 경우는 유난스럽다. 작업의 소재나 방법론 그리고 개념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경험이나 기억 또는 직접 채집한 자료들에 기반한다. 그 유난스러움 이면에 그가 주목하는 가치는 ‘효율성’이다.

“저 자신으로부터 출발할 때 가장 효율적일 수 있다는 믿음에 의해 역순을 선택이었어요.”

그의 전매특허처럼 된 역순을 따르는 작업 방식은 작가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작업의 대표적인 예다. 물감으로 형상을 그리고 연필로 윤곽을 표현하는 방식은 학창시절 습관으로부터 기인했다. “멀리서 무엇을 찾기보다 제 안의 것들을 활용하는 스타일이에요. 대개 그런 방식이 효율적으로 다가왔어요.”

그가 “학창시절에 형광펜으로 쓴 글씨에 검은색으로 테두리를 치던 습관이 있었는데, 회화에서 새로움을 모색하던 중에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학창시절의 습관을 캔버스에 재현하면서 신경철표 회화가 정착되어 갔어요.”

작업의 개념적 토대는 “근원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이나 역순적인 작업방식이나, 흔들리는 풍경 물가 풍경, 단색에 대한 선호 등은 작가 개인의 취향과 경험, 그리고 기억의 산물이다. 물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이 물가 풍경을 채택하는 결정타가 됐으며, 흔들리거나 단색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실내외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했을 만큼 나빠졌던 시력으로부터 촉발했다. 강렬한 빛 아래 섰을 때 일어나는 눈부심 현상을 그림에 적용했다.

“눈이 나빠지면서 사물이 파편화되기도 했고, 두 세 겹씩 겹쳐 보이기도 했어요. 눈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색 사용도 제한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 눈에 모습들을 작품으로 표현했죠.”

작업의 변화를 모색할 때도 철저하게 작가 자신에 기댄다. 작업 초기부터 수집했던 자료나 오래된 기억으로부터 변화의 단초를 찾는다. 최근에 원경에서 근경으로 확장하거나 테두리 없는 작업을 시도했는데, 그 역시 외부에서 찾기보다 전작과 그가 수집한 자료들에서 착안했다. “모든 것은 저로부터 시작되어 농도를 더해가며 하나의 작업으로 완결됩니다.”

◇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에서 근원의 기운을 찾는다.

그가 자신의 경험이나 기억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고자 결심 했을 때, 처음부터 완성도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확신은 하지 않았다. 반복적인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면 아이디어가 확신으로 굳어질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결국 개별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그 만의 독특한 작업으로 형태를 갖춰갔다.

그림 속 풍경은 물가 주변이나 숲속을 원경이나 근경으로 갈무리된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의 작업실에 서식하는 식물들을 초근경으로 당긴 신작도 소개된다. 원경이든 근경이든, 화면을 주도하는 분위기는 모호함과 몽환이다. 풍경을 흔드는 방식으로 형상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없도록 터치한 결과다. “안개 속 풍경처럼 표현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몽환적인 분위기는 정제된 풍경으로 이끌기 위한 선택이다. 그의 의식은 현실 풍경보다 그 너머의 근원을 향하고 있다. 눈앞에서 금방이라도 휘발되어 사라질 것 같은 화면 속 풍경의 아련함은 인간이 원초적으로 기대고픈 근원적인 정서이고, 그는 인간의 바로 그 열망을 풍경 속에 포착해낸다. 

그가 “힘들고 지칠 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풍경을 그렸다”고 했다. “근원이나 본질의 세계는 정제되고 고요합니다. 그 속에 진정한 평화와 아름다움이 있죠. 저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찾고자 하는 고차원의 풍경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었어요.”

색채를 구사하는 태도는 엄격하다. 한 두 개의 색을 제한적으로 채택하고,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마다하지 않으며, 눈부신 빛을 닮은 은회색을 트레이드마크처럼 사용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중립적이고 본질적인 공간 획득과 관련된다. “색은 실제 풍경이 아닌 비현실적인 풍경인 풍경성을 획득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하려 했어요.”

본질적인 풍경을 추구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세계도 염두에 둔다. 은회색은 현실 수렴적인 매개다. 빛에 반사된 색채로 은회색을 해석하지만 그는 산업화의 상징으로도 해석한다. “현대인은 살아남기 위해 자기가 원치 않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제게는 그게 비현실로 다가왔어요. 은색은 빛에 반사된 비현실이기도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찾아낸 또 다른 비현실의 상징이기도 했어요.”

그의 풍경성은 추상과 구상의 공존으로 표출된다. 멀리서보면 구상의 형태를 취하지만 가까이 가면 분절되어 형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어려워진다. 멀어지면 풍경, 다가가면 추상이라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흥미로운 풍경은 현실과 비현실, 현상과 관념, 구상과 추상의 공존으로 가능해집니다.” 전시는 4월 22일까지.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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