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무신도, 막막한 삶에 도움 얻고자 ‘사람 닮은 신’을 만들었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무신도, 막막한 삶에 도움 얻고자 ‘사람 닮은 신’을 만들었다
  • 윤덕우
  • 승인 2023.03.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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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모시는 몸주신 그림
천·지·용·불교신 등 수백 종
세밀하게 담은 용모가 특징
다른 이가 모신 무신도 사용불가
쓰임 다하면 땅에 묻거나 불태워
현존 最古 작품 1700년대 추정
신당 찾아 답 얻고자 하지만
상처받은 영혼을 구하는 건
가까운 이들의 응원 아닐까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를 보았다. 유년 시절 학교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주인공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 주인공은 항상 자신의 곁에는 신(神)이 존재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지만.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신의 존재는 멀리 있었던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응원하고 도와준 이들이 결국 자신의 신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보고 오늘은 그런 친근한 신의 모습을 우리의 옛 그림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신의 그림이라고 하면 불교나, 천주교 등의 종요에서 형상화된 부처님, 예수님일거라 생각하지만 오늘은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전통문화에 큰 영향을 준 무속신앙의 신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답답한 일이 생기거나 뭔가 누군가의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 찾아가는 곳이 무신도가 그려져 있는 신당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속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무속은 우리 역사와 함께하며 오늘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기층문화의 굳건한 요소로 자리 잡아 우리의 삶과 현대인의 생각까지 두루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그런 곳을 가본 적이 있다. 화려한 의상과 무서운 눈빛의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할머니 같기도 한 분들이 그려져 있는 곳! 그곳에 계신 분에게 막막하고 답답한 일을, 그래서 나의 미래를 물어 보지만 그림이 전공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무신도)에 먼저 관심이 갔었다. 그 그림에는 주로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 등장한다. 이유가 뭘까?

무신도는 무당이 신앙하는 신격(神格)을 그림으로 무속신앙에서 섬기는 신들을 그린 종교화이다. 따라서 초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기록화의 성격을 가진 조선 시대 사대부 초상이나 불교의 고승진영(高僧眞影)과는 달리 무속에서만 숭배하는 무속신의 용모를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속에서는 귀(鬼)와 신(神)이 합쳐진 귀신을 오랫동안 초자연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무당들은 이를 신령(神靈), 또는 신명(神明)이라고 부르고 무당을 통해서만 그 힘을 발휘하는 존재로 봉신하여 민간에 영향력을 끼쳐왔다.

그래서 무신도는 특별히 강신(降神) 체험을 통해서 신력을 갖게 된 무당인 강신무(降神巫)가 그들이 체험한 신의 실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보통 강신무만이 무신도를 소지한다.
 

신중도-1
<그림1> 작가미상, 신중도(神衆圖) 연대 미상, 46.2 ×74.1cm 지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신도는 무당이 신단에 봉안하거나 굿이 행해지는 장소에 거는 무구(巫具)의 일종이지만, 이와 같이 실체가 없는 무속신의 대리자의 역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려진 그 신을 몸주신으로 모신 강신무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어차피 무당들은 다른 이가 모신 무신도를 재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쓰임을 다한 무신도는 대개 땅에 묻거나 태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존하는 무신도의 제작년도는 아무리 길게 봐도 1700년대 이전으로 올라갈 수 없고, 남아있는 모본(母本)을 추적해 봐도 조선시대 이상으로는 소급되기 어렵다고 본다.

무신도에 그려진 무속신의 종류를 크게 자연신 계통과 인신 계통으로 나누었으며, 다시 그것을 신격별로 분류하여 천(天)신, 일월성신(日月星辰)신, 지(地)신, 산(山)신, 용(龍)신, 방위(方位)신, 신장(神將)신, 역(疫)신, 왕(王)신, 장군(將軍)신, 무조(巫祖)신, 산(産)신, 불교(佛敎)신, 영웅(英雄)신으로 보았다.

이들 무속신은 자연신 계통이든 인신 계통이든 모두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렇게 무신도에서 모든 신격이 인간 모습에 근거한 이유는 모순되게도 수십, 수백 종의 신들이 인간 중심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이러한 한국의 무속신앙과 무신도에 관심을 가지고 영미권 국가에 소개하는 책도 발간되었다.
 

다시-무신도
<그림2> <GOD PICTURE IN KOREAN CONTEXTS> 양종성(서울 샤머니즘박물관장), 윤열수(가회민화박물관장), Laurel Kendall(미국 국립역사박물관 큐레이터) 공동저자.

특히 이 책의 저자 중 한사람인 Laurel Kendall은 1970년도부터 샤먼인 ‘용수 엄마’의 실제적 단골이 되어 그녀의 신당 안에서 40년 동안 무속 활동을 깊숙이 관찰해왔다. 한국 무속을 연구하면서 무신도와 무구들이 성스러운 영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신과 신이 그려진 그림, 즉 무신도의 관계, 신이 만신(萬神) (만 가지 신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보통 여자 무당을 높여 일컫는 말)을 선택하는 조건에 대한 문제 등은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신도라는 용어 대신에 무화(巫畵), 신화(神畵), 무속화(巫俗畵), 무신화(巫神畵) 등을 쓰기도 하나 널리 지지를 받지 못하고 연구자 제각각의 용어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이 무속 현장의 용어는 아니다. 무신도 역시 학자들의 용어라는 점에서 ‘무속적’이지 못하다. 무당들은 정작 이런 말들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무신도는 지역에 따라 탱화, 환, 전안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황해도 무당들은 무신도를 ‘마지’, ‘화분’이라 부른다. 이런 이름 외에도 ‘신령님, 할아버지’라 부르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신령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두루 높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무당 사이에서 실제로 쓰는 말이기에 가장 지시성이 강한 용어다.

환은 그림을 뜻하는 화(畵)에서 왔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일컬어 ‘환쟁이’라 낮추어 말했는데, 이때의 ‘환’이 바로 무신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화분은 어디서 비롯된 말인지 정확한 어의를 알 수 없다. 짐작컨대 그림을 가리키는 ‘화(畵)’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분’이 합쳐진 말인 것 같다. 화에 그려진 신을 높여 부르는 의미로 말이다. 마지는 무신도를 마지(麻紙)에 그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탱화는 부처, 보살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불교 용어를 가져다 쓴 것이 분명하다.
 

대신부부무신도
<그림3> 작가미상 대신부부 무신도 19세지 후반 지본채색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여러 가지 무신도 중에서 화목해 보이는 부부 무신도를 보면 우리의 부모님의 얼굴이 담겨져 있다.

무섭거나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다 위로해줄 수 있는 인자한 미소! 그 그림만 쳐다봐도 안심이 될 듯도 싶다.

다시 그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주인공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봐! 신은 나를 돕지 않는다니까!”라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행동을 보면 마치 신의 얼굴이 그를 향해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의 조력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그들 간에 따뜻한 위로가 있고, 그로 인한 치유가 일어난다.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아주 작은 것들을 향해서도 배려를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표정과 눈빛에는 서로를 향해 구원을 빌어주고 있는 듯하다. 결국 그 드라마의 작가는 가장 큰 고통을 겪은 피해자들의 연대야말로, 서로를 포용하는 관계야말로 신의 위로와 가깝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 여러분이 보고 있는 무신도의 이미지가 인간의 형상을 한 모습이기에 그 그림의 표정과 화풍에서 우리는 소통하는 것이고, 그런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건 아닐까?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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