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 킴 ‘Marine Layer’…국제갤러리 부산점 내달 23일까지
바이런 킴 ‘Marine Layer’…국제갤러리 부산점 내달 23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3.26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 개 캔버스 패널 ‘하나의 풍경’ 구성
하늘·물 표면·물속 ‘ B.Q.O’ 연작
각 풍경 조합 따라 주제 무한 확장
시리즈는 신선함 찾아가는 과정
얼굴 형상없이 피부색 색채 표현
절제적·함축적 표현법 詩와 비견
“영원한 아마추어 미술가 희망”
다시-ByronKim
개인전 ‘마린 레이어’에서 11점의 ‘B.Q.O’ 연작을 선보이고 있는 바이런 킴이 국제갤러리 부산점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주변 인물들의 피부색을 형상 없이 오직 색채만으로 표현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인종에 대한 주제로 인식한다면, 그 작가의 주제 서술 능력은 환호 받아 마땅하다.

개별적이고 지엽적인 대상에서 출발한 주제가 제3자로 하여금 거시적이고 다각적인 담론으로 읽히게 한다면, 그의 주제 확장 능력은 박수를 받아야 한다.

지난 17일,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개인전 ‘Marine Layer’을 시작한 한국계 미국작가 바이런 킴은 일상의 작은 관찰로부터 포착한 주제를 심화하는데 탁월성으로 보여준다. 가까운 지인들의 피부색이나 주변의 하늘과 바다를 감각의 대상으로 삼아 예술가 특유의 심미성을 부가하며 주제를 공고하게 서술해간다.

그가 일상에서 포착한 소소한 단상들은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화면으로 구축되며, 범사회적이거나 범우주적인 주제로 확장된다. 대표작인 ‘제유법(Synecdoche)’ 연작에서 그의 주제 확장력은 충분히 증명된다. 이번 전시에는 걸리진 않았지만 그의 예술세계를 함축하고 있어 전시마다 언급되는 작품이다. 동일한 사이즈의 패널 500여 개에 지인들의 피부색을 단색조로 표현한 작품이다.

미국 교포인 부모 밑에서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다양한 피부색 사이에서 살아온 그에게 피부색은 적어도 한 번쯤은 진지하게 사유했을 주제였을 것이고, ‘제유법’ 연작은 그 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다.

막상 만나본 그는 “‘제유법’은 애당초 인종문제라는 거시적인 주제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저 “지인들의 각기 다른 피부색이 어느 순간 의식에 들어와 좀 더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표현하게 된 것”이라며 정치적인 해석을 자제했다. 물론 그의 화면에 “미시적인 차원에서의 출발”이라는 표명에 대해 수긍할 만한 힌트는 있다. 화면 속 색채들이 미국사회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피부색들이기 때문이다. 피부색을 둘러싼 정치적인 논의를 펼치고 싶었다면 그것을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초상화를 그렸을 법한데, 그는 구체적인 인체나 얼굴 형상 없이 오직 피부색에만 집중하며 단색조로의 화면을 구성한 것이다.

미시적인 접근에서 거시적인 담론으로의 확장을 이끄는 그의 역량은 주제 선택 능력과 무관치 않다. 그 지점에서 그는 유능하다. “지인들의 피부색을 모았다”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화면의 시각적인 완결성만으로 피부색을 둘러싼 인종문제라고 유추하기 쉽지 않은 선택을 했지만 피부색임을 언급하는 순간, 단박에 범지구적인 문제의식인 인종문제를 떠올리게 이끌기 때문이다. 단색 추상회화의 전통을 인종차별이란 사회적 논의와 연결짓는 그의 주제의식이 ‘제유법’ 연작을 ‘피부색 그림(skin tone painting)’이라는 이름까지 얻으며 급부상시키는 요인이 됐다.

‘제유법’ 연작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주제 확장력도 탁월하지만 미술에 덧씌워진 초상화의 선입견, 대상의 재현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추상적인 정체성의 서술 등에서 통념을 넘어선 것도 흥미롭다. 색채 하나로 그 모든 것이 충분히 납득할 만큼 설명된다는 것이 그의 화면이 가지는 힘이자 노련함이다.

간결하면서도 지적이며,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인 그의 표현법은 ‘시(詩)’에 비견될 만하다. 체계적이며 구체적인 기승전결의 결구를 버리고 함축적이며 절제적인 묘사로 일관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시가 그렇듯 긴밀하면서도 집약적이고, 암시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화면 속 주제들도 감상자와 만나면서 실로 다채로운 폭발력으로 증식되고 있는 것이다.

시의 형식을 빼닮은 그의 그림은 시인을 꿈꾸었던 젊은 날의 초상이다. 그는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시적(詩的) 감수성을 불태웠다. “시를 쓰고 시집도 출간 했지만 시인으로서는 절대 최고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꿈을 접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시인에서 작가로 돌아선 계기는 있었다. 대학 졸업반 때 미술사 수업을 들었는데 유명 개념미술가들의 작품을 접하고 개념미술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회화는 잘 하면 꾸준히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학사를 미술로 졸업하지 않아 비교에서 자유롭지 않나”라는 나름의 자신감도 있었다.

결심 끝에 다소 늦은 나이에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에 진학했고, 현재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업하며 예일대 미술학부 선임 비평직(senior critic)을 겸하고 있다.

개인전 ‘마린 레이어’에서 11점의 ‘B.Q.O.’ 연작을 선보이고 있는 바이런 킴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장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개인전 ‘마린 레이어’에서 11점의 ‘B.Q.O.’ 연작을 선보이고 있는 바이런 킴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장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5년 만에 열리는 그의 국제갤러리 개인전에 새롭게 선보이는 ‘B.Q.O’ 연작은 수직으로 쌓아 올린 세 개의 캔버스 패널로 구성된다. 가장 위의 화면은 바다에서 바라본 하늘을, 가운데 화면은 물의 표면과 그에 반사되는 모습을, 그리고 가장 아래의 화면은 물속의 모습을 포착된다.

‘B.Q.O’ 연작의 제목은 폴란드 과학소설(SF) 거장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에 등장하는 인물 ‘버튼’(Berton)과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작살잡이 ‘퀴케그’(Queequeg),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주인공 ‘오디세우스’(Odysseus)의 이름 첫 글자에서 따왔다. “바다와 씨름하는 이 세 명의 서사 속 영웅적 인물들은 2020년 1월 라우센버그 레지던시를 위해 캡티바 섬(Captiva Island)에 머물며 이 소설들을 다시 읽는 과정에서 저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재부상 했어요.”

‘B.Q.O’ 연작도 ‘제유법’ 연작처럼 작가에게 각인된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말미암았다. 바다 수영을 회화로 만든 작품인데, 코로나 19 팬데믹 영향으로 1년 간 그의 부모 거주지인 샌디에이고에서 가족들과 생활하게 되면서 시작한 작업이다.

코로나 19의 답답함에서 탈출하고 싶어 인근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게 되고, 광활한 바다에서의 경험으로 미처 경험하지 못한 물 속 세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면서 작업으로 영글었다.

바이런 킴 작 'B.Q.O. 28 (Near Cove)'. 국제갤러리 제공
바이런 킴 작 'B.Q.O. 28 (Near Cove)'. 국제갤러리 제공

 

‘B.Q.O’ 연작에서 특이점은 세 개의 캔버스 패널로 하나의 풍경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의 캔버스에 풍경을 그리는 일반적인 방식과 결이 다르다. 하늘, 바다표면, 바다 속 풍경들을 각각의 패털에 그린 후 조합한다.

“각각의 풍경들은 각기 다른 버전으로 제작되어 보관되는데, 이 풍경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작업은 무한 확장할 수 있죠.” 이는 그의 주제 확장력을 언급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개념적인 성향이 짙은 그의 작업이 작품 ‘B.Q.O’ 연작에서 회화성을 보다 농밀하게 끌어올린다.

“회화 작업을 하며 주제에 충실하려는 태도를 견지했는데, ‘B.Q.O’ 연작에선 회화 작품 자체가 좋으면 그것도 하나의 흐름으로 인정해도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지금까지 그의 작업들은 개념적이며 그에 따라 추상성이 짙었지만, 움직이는 수단으로서의 몸에 의지하게 되면서 추상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졌다. 느슨하게나마 “현실 기반의 재현”을 수용하게 됐고, 구상적인 요소들이 출현했다.

세 개의 패널을 관계성으로 묶고 있는 ‘B.Q.O’ 연작에서 그의 예술이 바라보는 가치가 명징하게 드러난다. 바로 ‘관계성’이다. 그가 “내가 이 세상 속 나머지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는 모두 거대한 전체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나는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 나의 작업 대부분은 전체와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설명을 더했다.

그가 관계성을 언급하며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의 철학자였던 장자를 떠올렸다. “장자가 큰 것과 작은 것의 관계 등 다양한 관계에 대해 탐구하며 쓴 글을 많이 봤다”며 장자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그가 장자의 철학인 ‘관계성’에서 발견한 가치는 ‘조화’다. 장자가 일찍이 ‘조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파한 것과 맥이 통한다.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것의 중요성”과 “내면세계의 영적 성장”이 장자 철학의 핵심이었다.

그의 또 다른 연작인 ‘선데이 페인팅(Sunday Paintings)’도 관계성을 주제로 한다. 2001년부터 시작된 연작으로, 매주 낮에 하늘을 보고 그린 희거나 푸른 단색조 그림이다. 아마추어 화가를 가리키는 ‘일요 화가’란 말이 마음에 들어 ‘선데이 페인팅’이란 제목을 붙였다. 그림 밑에는 작가가 느꼈던 그날의 단상이 글로 짧게 표현된다. 그는 그림 그리기가 직업이 아닌 여가활동처럼 대하며 영원히 아마추어 미술가로 남기를 희망하며 이 그림을 계속하고 있다.

개인적 기록과 동시에 하늘을 경험하는 ‘선데이 페인팅’ 연작 또한 관계성에 대한 서술이다. 작가는 두 대상을 매개로 광활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존재들을 서로 연결한다. “다소 추상적인 어휘로 환원됐지만 제 작업은 구상적인 차원에 남아 개념주의와 관찰, 그리고 추상 간의 긴장감을 구현하는 회화적 도구로 기능합니다.”

그가 작업에서 관계에 몰두하며 찾아가는 가치는 더 높은 차원에 자리한다. 그것은 미학이다. 그는 “미학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없지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원인에 대한 고민이 많다”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은 실로 다양할 수 있다. 눈부시게 탐스러운 꽃이나 순수한 눈망울을 한 어린아이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을 희생해 누군가의 삶에 빛을 선사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 가치적인 아름다움 등 모두 해당된다. 그는 그 많은 아름다움들 중에서 “교육된 지식이나 사회적인 의식 없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에 관심을 표했다.

그의 연작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그가 “완성됐다는 느낌이 있어도 계속 작업을 하게 된다”고 했다. “같은 시리즈를 계속 발전을 시키면서 신선함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그의 성향이 연작들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다.

“뭔가 옵션이 없고 되게 제한적인 것에서 색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 구현해 나가는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연작들이 커질수록 그만큼 변주를 하기가 어렵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움을 찾으면 보람이 더 큰 것 같아요.” 바이런 킴의 개인전 ‘Marine Layer’전은 4월 2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