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벚꽃동산
[수요칼럼] 벚꽃동산
  • 승인 2023.03.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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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의 대표적인 희곡인 <벚꽃동산>은 변화하는 러시아 귀족사회의 몰락과 신흥 자본가 계급의 등장이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벚꽃동산>은 아름다운 벚꽃 동산이 포함되어 있는 영지 소유자인 라넵스까야는 오랜 파리 생활 끝에 영지로 돌아온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파리에서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이자 갚기도 빠듯한 상황이다. 그녀의 일행을 환영해 준 인물 중에는 로빠힌도 있었다. 그는 이 영지에서 농노로 지내던 사람의 손자로서 지금은 상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큰 빚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라넵스까야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 귀족들에게 벚꽃 동산은 버찌를 팔아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중요한 재산이었지만, 1861년 농노해방이 되고, 일하는 사람들이 떠나면서 벚꽃 농장으로서의 경제성은 떨어지게 된다. 로빠힌은 새로운 변화를 위해 라넵스까야와 그녀의 오빠인 가에프에게 영지를 분할하여 임대하는 방식으로 돈을 모아 이자를 갚아가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라넵스까야와 그 가족들은 벚꽃 동산과 영지에 대한 추억에 젖어 있었고, 영지가 넘어가는 것이나 분할 임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처럼 라넵스까야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대대로 물려받은 벚꽃 동산과 영지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으면서도 그녀는 이 난국을 타개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녀는 벚꽃 동산이 경매에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그저 벚꽃 동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면서 계속 돈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벚꽃 동산이 경매에 넘어가는 당일에도 여전히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악단까지 불러 호화로운 연회를 열었다.

연회가 무르익는 가운데 영지가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영지를 산 사람이 다름 아닌 로빠힌이라는 사실도 밝혀진다. 로빠힌은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농노생활을 했던 이 영지를 산 것을 상당히 자랑스러워 하는 반면 라넵스까야 등은 크게 상심하게 된다. 그는 영지를 구입하자 마자 라넵스까야가 그토록 아겼던 벚꽃동산의 나무들을 베어내었으며, 라넵스까야 일가는 저택을 떠난다. 그들을 따랐던 하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평생을 라넵스까야의 집안에서 일했던 피르스라는 하인이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진 체 굳게 잠긴 저택에 남겨진다.

벚꽃이 활짝 핀 시기에 한&#8228;일 정상회담을 두고 여야가 벌이는 소모적인 논쟁이 아직도 1960년대의 정치적 틀 속에서 갇혀 정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벚꽃 동산을 배경으로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몰락하는 귀족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지난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을 두고 연일 여야 간 날 선 비판이 오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우리나라의 운명을 다른 나라에 위탁하는 굴종외교로는 미중 갈등의 파고와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국민을 지켜낼 수 없다"고 경고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야당이 "반일 선동질에 매달린다"고 맞받았다. 그는 "주목할 만한 성과에도 민주당이 여전히 구한말 식 죽창가를 외치며 '수구꼴통' 같은 반일 선동질에 매달리고 있으니 그저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하면서 비판했다.

<문명의 붕괴>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사회는 다른 사회와 지리적으로 이웃해 살면서 일정한 접촉을 가졌는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 이웃 나라를 견제할 수 있지만 힘이 약해지면 적의 침략을 받는다고 했다. 또한 그는 이웃 나라들의 침략 못지않게 이웃 나라로부터 우호적인 관계가 끊어져도 문명이 붕괴된다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패권 국가들은 자국에 유리한 게임의 법칙을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과거 영국은 인도산 면직물에 대한 수입금지, 관세율 인상, 디자인보호법 등을 통해 자기 나라의 섬유산업을 보호했다, 최근 중국의 반도체 굴기 선언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보호주의 강화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국가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는 국제 사회에서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독일과 러시아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폴란드는 여러 차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었다. 2차대전 발발했을 때 영국과 프랑스가 보호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공격을 받고있는 폴란드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힘도 없으면서 강대국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나라가 가장 먼저 침략을 당한다는 사실은 폴란드의 예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한일관계에서 과거는 잊지는 말되, 이성적으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양국에 이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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