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현장을 찾아] 보증금에 미래까지 빼앗긴 청년들…고통의 나날
[전세사기 피해 현장을 찾아] 보증금에 미래까지 빼앗긴 청년들…고통의 나날
  • 조혁진
  • 승인 2023.05.2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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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출산 앞둔 이 모씨
분양 받은 ‘내집’ 이사 계획 꼬여
1억대 잔금에 세금·이사비 ‘막막’
입주도 못하고 팔기도 힘든 상황
비용 부담 산후조리도 못할 지경
대구 북구 침산동 한 빌라에 갑작스러운 내용증명이 날아들었다. 세입자들이 불법 계약에 따른 불법 점유를 하고 있으니 이번달 안으로 자진 퇴거를 하라는 내용이다. 세입자들은 전월세 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른바 ‘전세사기피해’가 불러온 파장은 단순히 해당 보증금의 상실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곳의 피해 청년들은 보증금과 함께 미래를 빼앗겼다고 입을 모은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도 함께 뒤따른다. (관련기사 참고)

◇행복했던 나날이 악몽으로, 남은건 우울증뿐.

이 모(40) 씨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해 연말 결혼에 성공한 데 이어 아이까지 얻으면서다.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갈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사에 앞서 미리 계약을 해지하고자 집주인과 연락했으나,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져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답변만 받았다. 이어 최근 신협으로부터 불법계약에 따른 퇴거 통보까지 받으며 보증금 자체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분양받은 아파트는 부담이 됐다. 1억원 중반의 잔금과 세금, 이사 비용, 유아용품·가전 구매 비용 등을 고려하면 필요한 돈은 급격하게 치솟는다. 묶여있는 보증금 1억원을 고려해 계획을 세웠지만, 이사 계획 자체가 꼬여버렸다. 현재로선 잔금을 맞추기 위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팔아넘겨야 하는 실정이다.

비용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고민은 이어진다. 이 씨는 “지금 집을 비울 수도 없고, 이사를 가더라도 전입 신고도 못 한다”면서 “매매나 전세를 놓으려니 건물이 나갈 경기상황도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신세”라고 토로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정신적인 고통도 뒤따르고 있다. 그는 “임신 중이기도 해서 처음에는 아내에게 말을 안 했으나, 다른 세입자들 얘기를 듣고 알게 된 모양”이라며 “아내가 우울증 증상을 겪고 있다. 집 밖으로도 안 나가려 한다”고 전했다. 다가오는 출산 시기도 걱정이다. 이 씨의 아내는 곧 출산을 앞두고 있지만, 비용 부담에 산후조리도 포기할 마음이다. 괜한 걱정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에 이같은 내용은 다른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비밀로 부쳐졌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장인·장모님에게도 아직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건물 곳곳에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라는 현수막이 붙기 시작한 탓에 집에도 찾아오지 못하도록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 씨는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가졌다. 이제 행복한 미래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이런 일이 닥쳐 버렸다”며 “가장으로서 앞으로 많은 일을 헤쳐나가야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이런 일이 생겨버리니 나도 아내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분양 아파트 포기한 정 모씨
60% 납부·2억4천 만원 더 내야
보증금 못받으면 잔금 낼길 없어
납입한 중도금까지 포기할 상황
“결혼 준비했는데 어렵게 됐어요”

◇결혼도 입주도 포기…이미 낸 중도금도 다 날릴 위기.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정 모 씨는 분양받은 아파트는 물론 지금까지 납입한 중도금까지 포기해야 할 신세다.

현재 60% 가량을 납부한 상황에서 2억4천만원 상당을 앞으로 더 내야 하지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며 남은 돈을 낼 길이 없어진 탓이다. 강제퇴거를 당한다면 새로 살 집까지 구해야 하는 터라 잔금을 치르기란 언감생심이다.

정 씨 역시 2021년 8월에 1억원 상당의 전세 계약을 맺었다. 그는 “분양받을 당시에 현금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 이 돈이 수중에 있으면 쓸 수도 있으니까 이 돈을 지켜두고자 보증금을 크게 걸고 들어왔던 거다. 그런데 이 돈을 못 살리면 저는 잔금납부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2억4천만원을 더 내야하지만, 우리는 이제 가진 게 없다. 분양을 포기해야 한다”며 “계약 포기를 하려면 계약금 낸 것도 다 사라지고 1억원 가량을 들여 확장·옵션 공사했던 것도 사라진다. 거기다가 위약금까지 물어야 한다. 이번 사기로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린 거다. 앞으로의 미래도 잃어버렸다”고 토로했다.

결혼도 앞두고 있었던 터라 타격은 더욱 크다. 정 씨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결혼도 조금 어렵게 됐다”고 한숨지었다.

정신적으로 큰 피로감이 들지만, 심리상담 등을 받기도 벅차다. 그는 “심리 상담이 지원된다고는 하는데, 상담 신청하기에도 너무나도 많은 서류가 필요하다”며 “회사로 출근해야 하고 전세사기와 관련해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일도 많다. 여기서 다른 어떤 일이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한편 해당 빌라에는 총 17가구가 퇴거 위기에 놓여있다. 이 중 여섯 가구가 신혼부부다. 특히 두 집은 이 씨의 집과 같이 임신 중이다.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징검다리로 삼거나 내집마련을 위한 토대로 전세를 활용하는 청년들이다.

조혁진기자 jhj1710@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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