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작은 친절, 긴 여운
[문화칼럼] 작은 친절, 긴 여운
  • 승인 2023.05.2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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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원주의 시간 : 최근 몇몇 지인과 함께 원주의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이곳은 원주의 박경리 문학공원과 함께 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겨진 곳이라 진작부터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다가 이번에야 찾게 되었다.

몇 년 전 처음 접한 뮤지엄 산의 안도 다다오 건축 미학과 특히 삼각코트에서 느낀 그의 의지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뒤 안도 다다오 다큐영화와 국내외 그의 몇몇 작품을 접해왔다. 특히 지금은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서 그의 건축세계를 다룬 전시까지 열리고 있어서 안도의 자서전을 미리 읽으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했다.

지난 달 일본 여행 중 찾은 오모테산도 힐스를 비롯한 몇몇 그의 작품에서 느낀 것처럼 안도 다다오는 건축주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의 반대와 현실적 제약에도 자기 철학을 굽히지 않고 그야말로 확신에 찬 결기로 전쟁을 치르듯 이상을 펼쳐 왔다. 우리가 만나는 그의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 표면은 직접 죽봉을 들고 뛰어다나며 때로는 인부들 멱살잡이까지 한 결과다.

안도 다다오 전시 탓인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나는 일전에 연 회원으로 가입했던 터라 일행들도 함께 할인혜택을 받고 기분 좋게 둘러보던 중 전화한통을 받았다. “단체 관람객과 함께 티켓 발매를 하다가 조금 혼선이 생겼는데 혹 명상관과 제임스 터렐 전시 관람시간을 조정해도 될까요?” 우리는 시간여유가 있어 흔쾌히 동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전시관 부근을 지나니 한 직원이 혹 아무개 씨?(난 줄 어떻게?) 그렇다 하니 티켓에 수기로 시간을 고쳐 준다. 오! 아날로그 적이지만 이 다정함! 전시를 둘러보고 명상관 입장을 기다리니 또 전화가 걸려온다. 내가 회원 카드를 흘렸나보다. “아무개 씨! 카드를 어디에 맡겨 두었으니 투어 끝나면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카드의 유효기간이 잘못 기입되었다. 그래서 전화로 “먼저 어제 잃어버린 카드를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니 즉시 아! 아무개씨? 라고 반문한다. 이름까지 기억해주다니…. “실은 카드유효기간이 잘못 기입된 듯하다.” “아! 그렇군요, 죄송! 다음에 방문하면 바르게 기입한 카드로 재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의 작은 해프닝은 한번은 나, 두 번은 그들의 작은 실수로 인함이지만 즉시 인정 그리고 발 빠른 대처는 오히려 사람 기분을 좋게 해준다. 덕분에 예전의 좋았던 기억까지 소환된다.

#도쿄의 시간 : 오년 전 가족과 함께 도쿄를 찾았다. 여행기간 중 하루는 혼자 산토리 홀을 가게 되었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그리고 크리스티안 치메르만 피아노 협연인 빅 카드 공연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 한 것 같은데 차는 주위를 계속 맴돈다. 알고 보니 산토리 홀은 대로변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호텔과 몇몇 건물들과 마주보고 있어 이곳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와야 극장 앞마당이 나오는 구조라 그랬던 것이다. 아무튼 늦을까봐 마음이 급한 나는 여기서 내려 알아서 찾아가겠다며 인근에서 택시를 세웠다. 기사는 매우 미안한 얼굴로 부근에 왔을 때까지의 요금만 받겠다(고 한 것 같았다-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았으니)며 미터기의 요금보다 꽤 적게 받았다. 몇 번이나 머리 숙여 미안하다고 하는 인사를 뒤로하고 나는 공연장을 찾아 나섰다.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밀라노의 시간 : 역시 택시와 관련된 나의 유학 초기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1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그날 저녁 대학 동문 집에 초대를 받아 몇몇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탈리아 생활이 얼마 되지 않아 미래가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많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자정을 넘겼다. 어쩔 수 없이 거금을 들여 택시를 탔다. 가는 도중 여자 후배 두 명을 각각 따로 내려 줘야할 상황이었다. 먼저 한 명이 내렸다. 그런데 승객 하차 후 즉시 출발이 아니라 좀 기다렸다가 간다. 두 번째 사람이 내렸다. 또 그런다. “왜 그러냐?” 라는 나의 물음에 그의 말과 손짓을 종합해서 해석한 결과 밤늦은 시간, 여성이 집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지 지켜봐야하지 않겠는가! 당시 그들의 문화가 사람중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던 터지만 한밤의 택시 운전수가 보여준 자세는 이탈리아라는 나라, 앞으로 내가 공부할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매우 품격 있게 만들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행지에서의 좋은 추억은 그 시간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때로는 작은 일이 공동체의 인상을 좌우하기도 한다. 누가보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말로야 쉽지 실제로 늘 그러하기는 어렵다. 나는 한 사회의 경쟁력은 이런 것에 있다고 믿는다. 참고로 소 제목은 지난달 도쿄에서 감상한 영국작곡가 마크 앤서니 터니지의 ‘Time Flies’의 악장제목(함부르크 시간, 런던 시간 그리고 도쿄 시간)을 패러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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