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현장을 찾아…] (下) “빚으로 들어온 집, 남은 선택지는…” “이웃끼리 의지하며 해결 방안 모색”
[전세사기 피해 현장을 찾아…] (下) “빚으로 들어온 집, 남은 선택지는…” “이웃끼리 의지하며 해결 방안 모색”
  • 조혁진
  • 승인 2023.05.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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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 보증금 묶여 쫓겨날 신세
은퇴 고려 나이에 일 더 늘려야
결국 가족에게 피해 사실 알려
도움 손길에 위로·용기 얻기도
대구 북구 침산동 한 빌라에 갑작스러운 내용증명이 날아들었다. 세입자들이 불법 계약에 따른 불법 점유를 하고 있으니 이번 달 안으로 자진 퇴거를 하라는 내용이다. 세입자들은 전월세 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전세사기 이후 중년층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은퇴를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서 노후 자금을 모두 잃게 생긴 탓이다. 이들은 사기 사실을 인지한 후 극도의 불안과 우울, 무기력함을 호소하고 있다. 화목해야 할 집엔 웃음도 대화도 끊겼다.

◇ “극단적 선택하는 심정 이해”

A(여·56)씨 부부는 2020년 3월 현재 건물에 입주했다. 보증금 1억원과 월세 20만원을 내는 계약을 맺었다. 이 돈은 이들 부부가 마지막으로 끌어모은 자산이다.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사회생활 중인 자녀와 친인척 등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 이곳에 들어왔다. 앞서 이어오던 사업의 부도로 빚더미에 앉은 탓이다.

이 집에 입주할 당시에는 미약한 희망이 남아있었다. 집을 기반으로 빚을 갚아 나간다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A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남편 B씨는 정비 일을 하며 재기를 노렸다. 매달 200만원 가까이를 원금과 이자로 납부하며 남은 빚을 줄여나갔다.

하지만 집에서 퇴거해야 한다는 신협의 연락을 받은 후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신협을 직접 찾아갔지만, 청천벽력 같은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갚아야 할 빚에 묶여있는 보증금까지 더해진 채로 집에서 쫓겨날 신세다.

A씨는 “아직도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눈 뜨면 꿈이었겠거니 싶은 순간도 많다”며 “마지막 희망을 안고 다시 시작하려 온 곳이 지옥이 됐다. 보증금만 돌려받는다면 무조건 여기에서 나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은퇴를 고려해야 할 나이지만, 노후준비는 상상할 수도 없다. 이들 부부는 오히려 일을 늘려갈 고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로선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에도 벅찬 순간들이 많다. A씨는 “일을 나가긴 하는데 정상이 아니다. 혼자 있으면 멍해지고 너무 힘들다. 처음에는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사실상 식음을 전폐했다”면서 “부부간에도 대화가 끊겼다.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해서 대꾸도 못 하겠었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힘들어한다. 모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와의 인터뷰에선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꾸준히 흘러나왔다. A씨는 “뉴스에 나오는 극단적 선택을 한 전세사기 피해자들 심정이 이해가 간다. 희망적인 생각이 안 들다 보니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며 “그나마 이웃들이 도와준 덕에 의지하면서 버티고 있다. 혼자 이 일을 해쳐나가야 했다면 정말 목숨을 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우울 심해…다 포기하고 집 떠나는 게 나을까 생각도”

오 모(54)씨의 가장 큰 걱정은 아내다. 전세 문제를 알게 된 후 아내가 우울증 증세를 겪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 씨의 집엔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집사람에게 그냥 보증금 1억원은 포기하고 집에서 나가자고 얘기한 적도 있다”며 “이 집에 있으면 계속 우울한 생각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그랬다. 집사람 몸이 너무 안 좋아질까 걱정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가구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기로 하며 집에 남게 됐지만, 노후계획까지 꼬여버린 상황에서 회복은 쉽지 않다. 결국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당초엔 오 씨 역시 가족에게 알려선 안 된다는 생각했지만, 아내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딸들에게 얘기했더니 자기가 일하면서 2천만원을 모았다며 2천만원을 주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이렇게 마음을 써주니 더 가슴 아프기도 했다”며 “처가에도 얘기했다. 집사람이 얘기를 하면서 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가족 걱정으로 운을 띄운 오 씨지만 그 역시도 속이 문드러지는 심정이라고 전했다. 최근엔 오 씨도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아내에 이어 오 씨도 휴가를 내고 집에서 회복해야 했던 상황이다.

그는 “사기를 당해보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안 좋은 생각부터 시작해서 뭘 할 수가 없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며 “집사람 앞에서 똑바로 정신을 다잡고 아내가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출근하면 집 걱정이 든다. 직장생활은 물론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혁진기자 jhj1710@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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