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초원으로 돌아가다
[문화칼럼] 초원으로 돌아가다
  • 승인 2023.06.0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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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그는 사목을 한 것이 아니라 몽골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고(故)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님의 장례미사에 참석차 한국에서 온 신부님께서 남기신 말씀이다. 김 신부님의 몽골에서의 삶의 자세를 가장 적절히 설명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제가 된지 25년, 그 중 성지순례, 재충전 등으로 3년 정도 자리를 비운 것 포함 23년을 몽골에서 보내셨다. 헌신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살다 불과 55세 이른 나이에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평소 사랑하던 초원에 묻히셨다.

가까이서 신부님과 함께 일했던 한 수녀님의 “이제 편하시겠다”는 말이 그분께서 지내 오신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김 신부님은 두 가지 면에서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남다름이 있다.

우선 사제로서 그러하다. 몽골 땅에 공산화의 장막이 벗겨진지 삼십 여년, 이제 겨우 두 명의 몽골인 신부가 나왔다. 그 두 번째 아들사제가 신부님의 헌신으로 탄생했다. 울란바토르에 붉은 벽돌로 된 아름다운 성당을 세우고 그곳에서 9년간 두 번에 나누어 각 12명씩, 24명의 몽골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셨다. 숙식과 교육 모든 것을 신부님께서 해결하셨다. 이 아이들 중 한명이 사제가 된 것이다. 고인께서 언제나 소원하던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 끌고 간 것이 아니라 한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며 사랑을 주는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다.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4~5시간 떨어진 시골에서 몽골 아이들을 대상으로 3년간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간이 있었다. 참다운 선교의 자세를 위하여 몽골사람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며 기도 가운데 2년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들이 마음을 열고 받아주자 그렇게 기뻤다고 하셨다. 앞서서 가르치려 한 게 아니라 진정한 이웃이 된 후에 그들의 손을 잡고 이끄셨다.

그의 깊은 사랑과 훌륭한 인품에 감동한 많은 몽골 이웃들의 애끓는 애도를 눈물 속에 볼 수 있었다. ‘나를 따르라’가 아닌 스스로 따르도록 만든 힘이 훨씬 강력하다.

그리고 신부님은 한 인간으로서도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분이셨다. 그분께서 화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언제나 따뜻한 미소와 조용한 목소리 그리고 맑은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셨다. 이처럼 늘 온화하지만 또한 그의 의지를 꺾은 사람도 아무도 없다. 당신께서 뜻을 세운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가는 길에는 고요하지만 거침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하소연과 도움 요청에 벽을 친 적이 없다. 힘자라는 대로 돕고자 했고 그도 안 되면 함께 울어 주셨다. 아마 이것이 신부님을 많이 힘들게 했으리라 짐작된다. 도저히 물리적으로 단 한 치의 틈이 없었음에도,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준 그의 한 없이 넓은 품은 우리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이런 면모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대자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 그렇게 애틋하게 생각해온 노모를 두고 먼저 간 것에 대하여 너무나 안타깝고 또한 이해하기 힘들었다. 건강을 좀 보살펴가며 일하지 왜 그리 미련을 떠셨나 하는 원망스런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한 얘기들을 하나씩 들어보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신부님의 어깨에는 무겁고 많은 짐이 얹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당신 몸속에 남은 에너지의 마지막 하나까지 일에 다 쏟아 부으셨다. 건강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졌지만 그것을 챙길 단 하나의 여력도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죄스러워하고 마음 아파하는 이유 중 하나다.

코로나로 인하여 신자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낙담도 하셨지만 오히려 강론 준비에 평소보다 더 큰 공을 들이고, 그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매일 한 시간씩은 성당에 앉아 기다리셨다고 한다. 아마 지금도 나처럼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 멀리 나간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앉아 기다리고 계실 것 같다.

청빈했던 신부님은 유품이라고 할 것도 없이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고 떠나셨다. 그러나 그는 당신께서 걸으신 길을 통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기셨다.

신부님의 족적에는 진심이 담겨있고 그 속에는 감동이 섞여있다. 요즘 보기 드문 이런 가치들이 그로 인하여 이곳 몽골 땅에서 자라고 있다. 이것이 뿌리를 잘 내리도록 하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고인의 형님께서 하신 말씀 “많이 슬퍼하지 않겠다. 동생이 이렇게 일찍 간 것은 혼자 힘으로는 버거워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큰일을 이루려 함인 것 같다.”

고 김성현 신부님은 사제로서, 인간으로서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다.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을 볼 수 있었음은 모두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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