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재일한국의사회(在日韓國醫師會)와 고베 아사히(朝日)병원을 아십니까?
[의료칼럼] 재일한국의사회(在日韓國醫師會)와 고베 아사히(朝日)병원을 아십니까?
  • 승인 2023.09.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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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사회와 재일한국의사회의 교류를 시작하며
김경호 대구광역시의사회 부회장,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일본의 여름은 덥고 습하기로 악명 높다. 그래서 여름철 일본 여행은 가급적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로 지난 8월 일본 간사이(関西) 지방을 다녀왔다. 일본의 무더위를 몸소 체험해보겠다는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고, 대구광역시의사회와 재일한국의사회(在日韓国医師会)의 교류 사업을 논의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오사카, 고베, 교토 등 일본의 간사이 지방에는 재일 교포가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재일교포 의사들의 모임인 재일한국의사회가 자리 잡고 있다. 재일한국의사회는 '본회는 재일한국인의사 및 한반도에 뿌리를 가진 의사로 구성한다. 회원은 정회원을 의사로 하고, 준회원을 의학생 또는 의사 이외의 의료관계 업무 종사자로 한다.'라고 회칙에 명시하고 있는 재일교포 의사들의 단체이다.
재일교포 혹은 재일동포는 넓은 의미로 보면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인 한국인과 그 자손들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와 특별 영주자 자격을 가지고 살고 있는 한국계 거주자를 의미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이 재일교포의 시초이며 발전소와 철도공사 등에서 위험하고 힘든 작업에 일본인 대신 투입되어 최하층 노동자로 천대 받으며 근근이 삶을 이어갔다. 힘든 삶을 살던 그들에게 1945년 광복은 조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힘들게 일본에 마련한 삶의 근거지를 옮기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남았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를 거치며 일본 경제는 호황을 누렸으나 재일교포들의 생활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피지배층이었던 일제 강점기로부터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아 재일교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아지지 않았고 조국의 국력이 부족하여 해외 교포들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으므로, 후진국 출신의 빈민으로 소외되고 차별받아야 했다. 거기다가 일본 극우파들의 정치적 먹잇감으로 찍혀 탄압받기 일쑤였다. 일본 극우파들은 1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재일교포들에 대한 혐오과 폭력을 이어오고 있으며 지금도 그들의 혐한은 계속 되고 있다. 이런 어려운 환경속에서 재일교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수의 재일교포 의사들이 배출되었으며 그들 중 일부가 재일한국의사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한민족 핏줄임을 당당히 밝히고 대한민국 총영사관과 연계하여 재일교포 사회의 보건향상과 복지증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일본 출장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지만 재일한국의사회 이광희(李光喜) 회장과 김수량(金守良) 부회장, 김수기(金秀基) 아사히병원장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재일교포 2세인 이광희 회장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자식이 차별받을까 두려워한 부모님이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집에서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속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뿌리 깊었다. 부모님의 묘소를 고향인 충청도에 모셨으며, 매년 한국을 방문하여 제사를 드린다. 또한 재일한국의사회를 이끌며 재일교포들의 단합과 권익향상에 힘쓰고 있다. 필자는 한국어를 하지 못하지만 자신은 한국인이고 끝까지 한국인으로 남겠다며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교류사업의 재일한국의사회 측 실무담당인 김수량 부회장과 그의 아들 김수기 아사히병원장 또한 기억에 많이 남았다. 김부회장의 부모는 1930년대 일제 식민지 당시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해 무작정 현해탄을 건넜다. 김부회장은 여느 재일교포들처럼 조센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회적 편견과 차별 속에서 살아왔다. 조센진이라는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사회 하층민으로 멸시받으며 변변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재일교포들을 위해 병원을 설립했다. 조선의 '조(朝)'와 일본의 '일(日)'자를 합쳐 아사히[朝日]병원으로 간판을 걸고 재일교포들의 건강을 돌봐왔고, 평소에도 여러 경로로 한국과 일본의 의학교류 메신저 역할을 해왔다. 방일 당일 아침 코로나19 감염이 확진되어 김부회장을 만나지 못하였으나, 대신 외과 의사로 현재 아사히병원장으로 근무 중인 그의 아들 김수기 원장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수기 원장은 서툰 한국어로 재일동포 지원 등에 대해 부친의 뒤를 잇겠다는 뜻을 밝히고 한국과의 교류 사업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대구광역시 의사회와의 교류 사업은 자신에게도 큰 기회이며, 한국과 한국어를 더 알고 배우고 싶다는 그에게서 무엇인지 설명하기 힘든 동질성을 느끼며 가슴 한편이 먹먹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은 전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너무도 숨가쁘게 살다보니, 바다 건너 동포들의 삶을 이해할 생각도 여유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재일교포는 시대의 결과로 만들어진 아픈 역사의 희생양이다. 이들은 일본인들에게서는 배척해야 할 외국인으로 차별받고, 정작 한국에서는 같은 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겪었다. 이제라도 재일교포들의 아픈 과거를 우리 역사 일부분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들의 아픔과 애환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한다. 그들이 한국인으로 자긍심을 느끼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긴밀하게 교류하고 협력하였으면 한다. 올 가을 재일한국의사회의 방한이 이루어져 그들과 형형색색 단풍을 함께 보며 시원하게 막걸리 한잔을 같이 나누고 싶다. 한국인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는 막걸리에 파전을 곁들여야 제 맛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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