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나를 녹여 넣는 ‘가장 진지한 고백-장욱진 회고전’
[화요칼럼] 나를 녹여 넣는 ‘가장 진지한 고백-장욱진 회고전’
  • 승인 2023.09.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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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한 마리의 새가공중을 높이 날기 위해서는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수많은 열량들이 그 가슴에 늘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수익, ‘새’ 중에서



호라티우스는 시학에서 ‘시는 그림처럼’이라고 표현한다. 창작의 경직성이나 천편일률성에 매몰될 우려에 대해 “시는 그림처럼, 가까이 다가설 때 오히려 그댈 사로잡는 게 있고 어떤 건 멀리 떨어질 때 그댈 사로잡는 게 있다.”고 언급하며 예술작품 창작에 대한 모색을 제안한다.

동양에서의 시화일률(詩畵一律) 사상은 북송시대 문인화가인 소동파나 황정견 등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왕유의 시화를 두고 소동파는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고 했다. 그후 ‘그림은 그림처럼, 시는 시처럼’이라는 비판적 성찰이 일어나기도 하였지만, 시와 그림의 관계처럼 예술과 예술은 여전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진폭을 확장시켜가고 있다.

유독 한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눈길을 떼지 못할 때가 있다. 작품이 지닌 공감각과 아우라의 발현을 경험할 때이다. 그 속에는 시인 듯, 그림인 듯, 노래인 듯, 서사인 듯한 감흥과 영감이 내재된 경우이다. 언제였던가. 한 그림 앞에서 석상처럼 오래도록 발 묶여 서 있었던 적 있다. 장욱진 화가의 그림 ‘자화상’이다.

장욱진(1917~1990)의 ‘자화상(1951년 作)’ 속 주인공은 휘어진 버들인양 길게 늘어진 길고 긴 외길을 걸어왔지만 목적지를 눈앞에 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먼 여정에서 쓰이기도 했을 우산과 모자는 양손에 나누어 들었고, 가벼운 코트는 연미복마냥 경쾌한 바람을 품었다. 즐거운 걸음은 발자욱마다 맛있는 냄새를 틔우는지 검둥개와 새들도 그 뒤를 따른다. 황금빛 들판에는 잘 익은 알곡들이 이랑이랑 바람따라 춤을 추고, 한껏 푸르른 산천의 나무와 구름도 저마다의 빛깔과 터치로 행복한 힘을 뿜어 보내는 작품이었다.

‘그림 속의 시, 시 속의 그림’을 창작한 화가라고 평해도 과찬이 아닌, 장욱진은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해 재구성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해 주목받고 있다.

그의 학창 시절인 1920년대부터 1990년 작고 때까지 60여 년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돌아보게 하는 이번 회고전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장욱진 개인전이다. 그의 작품뿐 아니라 사진, 표지화, 유품 등 아카이브도 구축해 그의 예술을 둘러싼 미술사적 가치의 외연을 확장하는 교류의 장이 될 것을 기대한다.

장욱진은 자주 고백한다. “난, 나의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녹여서 넣는다. 나를 다 드러내고 나를 발산하는 그림처럼 정확한 놈도 없다(장욱진의 조선일보 기고 글). “독백처럼 예술과 일상을 일치시켜 한결같은 자세로 삶을 이어나간 장욱진 회고전은 같은 시대 활동하던 작가들인 박수근 유영국 김환기 등 한국의 추상화가들이 주로 사용했던 소재인 새, 나무, 집, 가축, 마을 등이 작품 속에 독특한 화풍 속에 담겨있어 정겹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함께 성장한 결과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청년기(10~20대), 중장년기(30~50대), 노년기(60~70대)로 재구성하여,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던 ‘주제 의식’과 ‘조형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변모해 나갔는지, 1990년에 이르기까지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동행하듯 관람하게 한다. 특히, 이번 장욱진 회고전에서는 반가운 ‘가족’을 재회하게 된다. 옛집처럼 나지막한 벽을 거쳐 들어가듯 성소처럼 어두운 공간을 손바닥만한 그림 2점이 꽉 채우고 있다. 장욱진(1917~1990)과 가족이 평생 그리워했던 유화 ‘가족’(1955)과 그것을 기억하며 다시 그린 ‘가족도’(1972)다. 평생 가족을 그린 화가의 전범(典範) 같은 그림이다.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소장가에 팔려 주요 전시 때마다 수배했지만 60여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을 일본에서 발굴해 흰곰팡이를 제거하는 등 응급 보존처리 후 대중에 처음 공개됐다. 반백 년을 넘어 돌아온 그림 ‘가족’ 앞에 서면 그림을 판 값으로 딸에게 바이올린을 사서 선물하는 아버지의 부정, 그 아버지에 대한 가족의 온기가 여전히 지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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