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의사 수 늘린다고 문제 해결 안 돼…물 부으려면 물그릇 먼저 준비해야
[의료칼럼] 의사 수 늘린다고 문제 해결 안 돼…물 부으려면 물그릇 먼저 준비해야
  • 승인 2023.11.05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명희 소아청소년과 의원 원장, 대구시의사회 논설위원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 의료 전문의들이 피부 미용, 비만 등 전공과 무관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인기과가 바뀌었다. 지금 회자하는 의사 수를 늘리겠다거나 공공의대를 만들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지금 의사 정원을 증원해도 남자의 경우, 군대 3년 복무까지 마친다고 하면 적어도 13~14년 이후에나 전문의가 될 수 있다.

필자가 전공의 수련을 시작할 당시에만 해도 소위 내. 외. 소. 산(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이 인기 진료과였고 경쟁도 치열했다. 그 필수 진료과가 전공하려는 이가 줄어 더 힘든 비인기과가 되었을까, 바로 줄어든 출산율에 어린이 환자부터 줄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는 저 출생 현상 시작으로 수입은 줄고 의료사고 위험 등 업무 부담은 과중해져 업무가 편하고 수익을 보장하는 피부 미용, 비만 등의 분야로 나간다.

유명 산사에서 경내를 돌며 설명하시던 스님 한 분이 말씀하셨다. 불가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년에 30명 정도 출가를 해야 하는데 최근 3년 동안 한 사람도 출가하지 않았다고.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에 명맥 유지가 어렵다는 뜻이다. "출가 반 토막, 총신대 첫 미달, 불교도 기독교도 '종교절벽' 왜"? 출생률이다, 이를 높이기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할 때다.

필수 의료 위기가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곪기 시작한 이슈다. 복지부는 의료인 수급 정책, 건강보험 수가 정책 등의 여러 수단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하지 않아 더 심해진 것같다. 의대 정원 확대를 시도하곤 했지만, 핵심은 의사 총량이 아니라 의사 배분 문제다. 먼저 필수 의료수가를 현실화하고 의료사고 부담을 완화해 달라는 의사들의 주장을 제대로 들어야 한다.

필수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의대 학생을 증원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의사 수가 많으면 인기 분야 경쟁에서 밀린 의사들이 떠밀려서라도 필수 의료 과를 선택할 것이라는 탁상이론, 즉 낙수효과다. 필수 의료 부족 문제는 줄어든 환자 수, 턱없이 낮은 필수 의료수가 때문이다.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 의과대학 정원을 증가하면 낙수효과로 필수 의료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한다면, 문제투성이 발상이다.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Harry G. Frankfurt)가 쓴 '개소리에 대하여'가 떠오른다. 거짓말쟁이는 진리를 알고도 속이려고 하지만, 개소리를 말하는 자(Bullshitter)는 참과 거짓과는 상관없이 지껄인다고 주장하였다. 교활하게 본질을 흐리며 사회에 만연하게 퍼진다. 이런 개소리 담론은 특정 입장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공고히 하며 확대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의사 수를 늘리겠다거나 의과대학 정원을 증원하겠다고? 어디에 어떻게 할 것인가. 기존 의대에 증원한다고? 물을 받아 이용하려면 물그릇이 준비되어야 하지 않은가. 그들이 공부할 교실, 실험실 등 공간이 부족해진다. 그것도 확보하지 않고 탁상공론으로 증원한다면 부실한 여건에서 제대로 실력을 기를 수 있겠는가. 물그릇 없이 물을 부으면 쏟아져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지 않으랴. 새로 의대를 짓는다고? 건립과 수련 병원 짓는 데 엄청난 돈이 들어갈 것이고 가르칠 교수진 모집도 쉽지 않다. 현재 의대 기초 분야 교수는 초빙하기도 어렵다. 기초 의학 분야의 교수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의사 교수 외엔 비 의사 교수가 그 자리를 대신해 교육에 나서는 현실이다. 예전에는 기초 의학을 전공하려면 조교로 들어가서 연구 및 교육을 담당했으나 고등교육법(제15조 4호 조교는 교육 연구 및 학사에 관한 사무를 보조한다. 2011.7.21.) 개정으로 조교는 행정직원으로 바뀌었다. 의사가 기초 의학을 전공할 방법이 없어졌기에 기초 의학 의사가 심각하게 부족하다. 비 의사 교수가 점차 많아져 거의 50% 가까운 실정이다. 의대 정원 증원은 의료계의 의견부터 먼저 듣고 협의하여야 할 사항이다. 의료전달체계 왜곡이나 저수가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필수 의료나 지역 의료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다. 의사 증원이나 신설 의대를 쉽게 결정하여 진행하면 서남의대처럼 부실 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서는 출생률 높이는 정책을 효과적으로 펴고, 물 붓기 전에 물통을 먼저 준비하듯이 의료계와 협의하여 좋은 해결방안을 만들어 나아가기를 바란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