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쿵 의성 국가지질공원 이야기] (3) 하얀 쌀밥같이 정갈하고 소중한 안계분지
[심쿵 의성 국가지질공원 이야기] (3) 하얀 쌀밥같이 정갈하고 소중한 안계분지
  • 윤덕우
  • 승인 2024.04.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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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에 황금을 한 움큼 흩어놓은 듯…세세연년 풍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여러갈래 개울 끌어모은 젖줄
인접한 산야 토양 자양분 풍부
생산성 높아 ‘황금알 낳는 봉황’
대가야 정벌 병참기지
안계, 신라 변방의 핵심 곡창
대가야정벌군 군량미로 제공
당시 전체병력의 20% 보급
의성진쌀 브랜드로 ‘날개’
안계분지들판
하천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안계분지.
 
안계평야의 젖줄
안계평야를 가로지르는 위천. 군위군 아미산에서 발원해 군위군과 의성군을 거쳐 상주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안계분지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동안 침식작용을 받아온 결과, 크고 작은 다수의 산간분지들이 분포한다. 이는 과거부터 주민들이 생활 지형면으로 활용해 온 곳이다. 의성의 서쪽을 흐르는 위천 하류에도 북서-남동 방향으로 긴 장방형 산간분지가 생성되어 있는데, ‘안계분지’라고 부른다. 안계분지는 침식분지에 해당하는데, 분지(盆地, basin)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평한 땅을 말하며, 이 중에서 하천의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분지를 침식분지(浸蝕盆地, erosion basin)라고 한다.

침식분지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생성 원인을 가지고 있는데, 지역마다 지질적인 조건과 암석의 풍화상태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반암의 차별침식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여러 가지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역에서 암석에 따라 풍화와 침식에 견디는 정도가 차이가 나므로 상대적으로 약한 암석이 더 침식되면서 분지의 낮은 지역을 만들고, 풍화와 침식에 강한 암석은 그대로 남아 주변 산지나 더 높은 지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계분지의 경우에는 산지, 구릉지를 이루는 지질은 모두 중생대에 퇴적된 낙동층군에 속하며, 이들 지층은 대체로 사암, 역질사암, 역암, 셰일로 구성된다. 지층별 구성입자의 굵기와 교결물질(cementing material)의 차이에서 경연 차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또 각 구릉지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있는데, 이는 낙동단층의 방향과 대체로 일치한다. 이는 안계분지 내에서는 지질적으로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지질구조선과 절리가 상당히 교차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침식분지는 분지를 둘러싼 외륜산 역할을 하는 배후산지, 배후산지에서 선상으로 연결되거나 또는 외따로 떨어진 낮은 구릉지들, 낮은 구릉지들 사이 움푹 패어 들어간 곡지, 그리고 분지 내를 흐르는 하천으로 구성된다. 또 하천에 의해 주변 산지에서 운반된 사력물질이 쌓여 만들어진 충적평야가 분포한다. 충적평야는 주변 산지에서 물, 퇴적물, 각종 영양소가 흘러드는 장소로, 상대적으로 생산력이 높은 곳이다. 침식분지 내에 발달한 취락은 지방의 행정·경제·사회적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다.

◇의성군 서쪽의 중심 안계면

안계분지는 의성군 서쪽의 안계면 일대에 위치하며, 주변 인접 행정구역은 동쪽으로는 비안면, 서쪽은 다인면과 단북면, 남쪽으로는 구천면, 북쪽으로는 안사면에 접해 있다. 안계면의 면적은 43.69㎢, 인구 4,420명(2023년 4월 현재)으로, 행정복지센터는 용기리 475의 2번지에 소재한다. 차를 타고 중앙고속국도 의성나들목에서 5번 국도 안동 방향으로 1.7㎞ 가다보면 봉양교차로가 나온다. 봉양교차로에서 예천방향으로 약 0.3㎞ 이동하면 28번 국도와 만나게 되는데, 28번 국도를 타고 다시 예천방향으로 17㎞ 이동하면 의성군 안계면에 도착한다.

안계면 소속 법정동은 교촌리, 도덕리, 봉양리, 시안리, 안정리, 양곡리, 용기리, 위양리, 토매리 등 모두 9개 법정동이다. 안계면이란 명칭은 조선시대 1907년 이곳에 있었던 안계역과 안계원(安溪院)에서 유래했다.

풍수지리적으로 청송 보현산지맥이 흘러내린 북동쪽에는 자미산(일명 비봉산· 해발 579m),독점산, 문암산, 곤지봉, 골두봉, 화두산, 해망산 등이 둘러싸고 있다. 자미산은 고대동양천문학에서 천상의 3원 가운데 옥황상제가 살고있는 자미원에서 이름을 따왔다. 조선시대에 다인면이 예천군에 속했을 때 비봉산은 예천 용궁의 회룡포의 뒷산을 비룡산(飛龍山)이라고 함에 맞은편의 산이라고 해서 비봉산(飛鳳山)이라고 했다. 남서쪽으로는 대구 팔공산 지맥인 만경산, 장자봉, 청화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치 한 쌍의 봉황이 두 나래를 활짝 펴고 안개들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다인면 비봉산에서 안계평야를 감싸고 있는 산과 위천(위수강)을 보면 태극을 음양으로 가르는 음양구회선으로 보는 풍수지리가들도 있다. 안계들을 산 태극, 물 태극의 이 태극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오늘날 안계평야를 ‘아시들(Ashi, 鳳凰野)’이라고 했다. 신라어로는 ‘아시혜(阿尸兮)’라고 했다. 삼국사기에선 ‘아시촌(阿尸村)’ 이라고 적고 있다. 고려 때는 상주부(尙州府)의 ‘안동’혹은 ‘안서’라고 했으며, 조선시대 비안현(比安縣)에서 ‘안서면’으로 하다가 1907년에 ‘안계(安溪)’라고 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의성군의 서부 중심지역으로 서남으로는 위천을 끼고 안계평야를 이룬다. 마치 한 줌움켜쥔 황금을 땅 위에 흩어놓은 듯이 안계평야는 세세연년 풍년이다. 분지 가운데 낙동강 지류인 위천에서 여러 갈래의 개울물을 한곳으로 끌어모아 안계평야에 젖줄을 만들었다. 위천은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학암리의 아미산(737m)에서 발원하여 군위군, 의성군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에 유입되며, 본류 길이는 116.78km다. 안계분지 면적은 대략 1,000㏊이고, 동서 길이는 약 8㎞, 남북 길이 약 12㎞ 정도다. 팔방미녀가 임신한 모양이다. 쌀 생산량은 평균작일 경우는 4,567톤 정도 산출된다. 이렇게 안계평야의 풍년을 약속한 건 풍화·침식으로 주변 산야에서 흘러내린 토양자양분이 풍부하게 쌓였기 때문이다. 이런 유기물의 충적된 토양으로 안계분지는 황금알 낳는 봉황새로 인식되었다. 오늘날 안계 충적평야다. 물과 퇴적물질의 풍부함으로 일찍이 농작물의 생산성이 높았다. 침식으로 깎인 골짜기 땅들은 밭이 아닌 청동기 선사시대부터 벼농사 경작지로 개간했다. 바로 성경 표현을 빌리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리스 신화의 표현으로는“헤라여신의 젖 국물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다. 동양에서는 “골짜기를 창조하는 여신” 혹은 “가물가물하게 신묘한 검정 암소”라고 했다. 노자(老子, BC 571~ 몰년미상)는‘도덕경(道德經)’에서 “골짜기 여신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이렇게 현묘한 여신은 어머니와 같다. 여기서 산출되는 건 끊임없이 먹고 먹어도 모자람이 없다” 라고 퇴적평야의 창조력을 말했다.

이런 침식작용에 의한 대자연 어머니의 솜씨로 풍부한 토양자양분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데 풍년이 온다. 풍부한 토양자양분의 공급원이 되는 지질구조 형성과 변형작용 등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면, 지질생성은 중생대 제4기 백악기 경상분지 충적층에 해당한다. 안계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안계면 용기리 557의 13번지 일대는 안계평야를 전기밥통에 비유하면 전기 플러그다. 안계평야의 풍년을 여는 돌쩌귀에 해당한다. 이렇게 풍요한 식생을 기약하는 퇴적암을 초등학교 때는 생명체의 젖줄이라고 했다.

안계분지는 위천 하류구간에 분포하는 북서-남동방향의 장방형 산간분지다.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퇴적암 기원의 침식분지다. 중생대 백악기 분지 땅밑이 사력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석유 산출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973년 중동 유가가 연 720% 이상 폭등하자 국내에 석유 시추작업에 혈안이 되었다. 1974년에 1975년까지 안계 인근 지역 석유 시추작업 바람이 불었다. 의성군 다인면 가원2리(시말, 지자말)에 사시는 김도상(1959년생)씨의 말씀에 따르면, 1974년부터 1975년까지 대구국채보상공원 인근에 있었던 주식회사 흥구석유(1966년 창립, 동안1가 537번지 창립자 김상우)에서 시추작업을 하였으며, 석유가 나왔다는 헛소문까지 나왔다.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시추작업에 사용하는 코아드릴의 거대한 장비를 봤다. 동네에서도 석유의 꿈으로 투기붐이 생겼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는 격이었다. 마치 1935년대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의 ‘금 따는 콩밭’소설과 같은 이야기였다.

◇‘안계평야의 모유 통’ 대제지(大堤池)를 찾아서

안계평야에 ‘모유의 통’역할을 대제지가 함으로서 삼한 때부터 안정적으로 쌀을 생산할 수 있었다.

대제지에 대한 명확한 문헌 기록이나 기념물 등이 전혀 없다. 정확한 위치마저 비정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대제지 소재지 비정에 대해 단밀(丹密)로 보는 주장이 있다. 근거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이라는 표기에서‘미동(彌凍)’은 삼한시대 말‘미르(水) 동(桶)’을 한자로 표기했다. 오늘날 말로는“물덤벙(堰)”,“물 둑(堤)” ,“물 동(池)”혹은 “못(淵)” 이다. 삼한 시대 고어로는 물을‘미르(水)’라고 했다. 오늘날에 남아있는 말로는 미나리, 미더덕, 미리네, 미르나무, 미터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단밀(丹密)이란“담미르”를 한자로 표기했다. ‘담은 물’은 담아놓은 물로 연못이나 저수지였다. 그래서 이병도(李秉道, 1896~ 1989) 박사도 대제지(大堤池)를 ‘단밀(丹密, 담미르)’로 봤다.

한편 1987년 11월 의성농지개량조합장 한동선은 삼한시대 소국명칭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과 용기리(龍基里)가 합쳐진 미끼 못(彌基池)이라는 사실에 착안했다. 그래서 용기리로 대제지가 있었다고 비정을 했다. 전설과 현재 상태를 종합해서 안계면 용기리 787의 5번지에 ‘대제지 유허비(大堤池遺墟碑)’를 세웠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론은 근거가 되는 현존하는 지명이 있다. 즉 단북면 효제2리에 속칭 대제마을이 있다. 그 마을 앞에‘대제표석(大堤標石)’이 있다. 그 마을 남쪽 신하 2리를 하제(下堤)라고 부르고 있다. 현지명을 종합할 때는 용기리 대제지 유허비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삼국시대 이후에 하천둑을 쌓고 대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서로 다른 주장에서도 인식(認識)을 같이하는 건 대제지의 면적 30ha과 길이 1km다. 여기서 결론을 낼 문제도 아니고 낼 수도 없다.

대제지의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고찰한 바가 없다. 대제지 위치는 물론 규모도 불확실하다. 단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둘레가 2,896척(1.48km), 깊이가10척(5.1m)이라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위치는 상주목에서 68리 단밀현에 있다고 하는 게 전부다. 둘레를 원주율로 나누면 지름이 471m인 대체로 둥근 못이다. 담수 가능 용량을 신출하는 관계식은 120만톤{ = 원주율 3.14× (반지름 277.3)2 × 깊이 5m}이다. 못물을 받아서 경작 가능 농지면적은 100 결 내외다. 저수지 조성 토목공사기법은 당시에 다른 저수지를 감안하면 판축공법이다. 당시 대제지로 관련한 생산량은 쌀 7,860 가마니(628톤) 정도로 환산된다. 오늘날 안계평야의 쌀 생산량은 4,567톤이다. 이에 비하면 그때 생산은 오늘날의 13.7% 정도다. 삼한시대 당시로는 대단한 쌀 생산량이다.

◇대가야 정벌의 병참기지로 아시촌소경이 설치?

이렇게 저수지 대제지는 안계평야의 벼농사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큰 흉년 없이 쌀을 생산했다. 신라는 국태민안을 기반으로 부국강병을 꿈꾸고 있었다. 신라 지증마립간 15(514)년에 왕권 강화와 강역 확장을 위해 신라 북방인 오늘날 삼척에 실직곡국(悉直谷國)을 병합하고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했다. 아울러 오늘날 안계에다가 아시촌소경(阿尸村小京)을 설치했다. 신라도 안계를 신라변방의 핵심 곡창으로 인식했다. 당시 소경제도는 대부분 군현제실시로 반발하는 부족국가 가운데 부용하거나 귀부하는 부족에 대한 예우해주는 정책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대항하는 부족에겐 회유 혹은 협박 방안이었다.억압과 회유이란 일명채찍과 당근정책이다. 소경이란 일명의 속국 혹은 분국이란 별칭이다. 아시촌을 아시라국(阿尸良國)이라고도 했다. 아시촌소경은 주변 소국을 정벌에 회유의 표본을 제시하면서 동시 병참기지로 역할을 했다. 안계평야의 쌀 생산은 곧바로 대가야 정벌군의 군량미로 제공되었다. 연간 400톤(5,000가마) 이상은 당시 하루 한 끼 먹던 때라서 전체병력 3 ~ 4만 명에게 20% 정도의 군량미를 보급했던 병참기지였다.

◇안계평야 쌀, 의성진쌀 브랜드로 날개를 달다

안계평야를 중심으로 계약재배 중인 쌀은 최고 밥맛을 자랑하는 일품벼 품종으로, ‘의성진(眞)쌀’이란 브랜드로 날개를 달고 있다. 화학비료를 줄이는 대신 유기질 비료를 사용해 친환경으로 재배하고, GAP인증을 통한 수매, 보관, 가공, 유통까지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고품질 쌀이다. 의성진쌀은‘2023년 경북 우수브랜드 쌀’에 선정되었는데, 경상북도 내에서 생산되는 쌀 브랜드 중 단일 브랜드 매출액이 20억원 이상인 경영체의 추천을 받아 품위, 품질, 품종 혼합 비율등을 종합평가해 선정된 우수브랜드 쌀이다. 또 작년에 윤석열 대통령이 설명절을 맞아 호국영웅과 유가족, 사회적 배려계층 등 1만5천여 명에게 보내는 선물에 의성진쌀로 만든 떡국 떡이 포함됐다. 의성진쌀은 매년 열리는‘가양주酒人선발대회’에서 가양주 재료로도 활용된다. 이렇게 의성진쌀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 고향사랑기부금 답례품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지원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의 일환으로 6차산업클러스터(안계면 양곡리 491-1) 부지 내‘전통주교육용 양조장 조성’사업도 추진 중이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비안향교

안계면 교화길 65-14(교촌리)에는 이 있음에도 안계면에 비안향교(比安鄕校)가 있는데 1992년 11월 26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유서 깊은 비안향교는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특이하게도 현재 비안면 지역에 있을 법한 이름인데, 이는 과거 조선시대 때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 향교는 조선건국 군주 태조 재위 7(1398)년 1향1교의 지방 관학으로“인재양성과 지방풍속의 조율” 이란 목적으로 처음 세웠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2(1610)년에 복원되었다. 이후 1898년, 1924년, 1935년에 각각 수선했다. 임진왜란 당시 손복(孫復, 생몰미상)이라는 유생은 위패를 산중 굴속에 숨김으로써 전화라는 재앙을 모면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삼문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었으나, 지금은 제사 기능이 남아 전통과 예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글 = 이대영 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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