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인문명리로 본 영조의 가족사
[류동학의 세상읽기] 인문명리로 본 영조의 가족사
  • 승인 2024.04.0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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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부친이 아들을 죽이는 비극을 경험한 인물이 영조와 사도세자이다. 숙종은 인경왕후 김씨,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영조의 양모) 사이에서 아들이 없었고, 희빈 장씨와 경종, 숙빈 최씨에게 영조, 명빈 박씨에게 연령군(1699∼1719)을 두었다. 파주 광탄면의 소령원에 모셔져 있는 영조의 생묘인 숙빈 최씨(1670∼1718, 경술 무자 기미생)는 무수리 출신의 후궁으로 이것이 영조의 신분컴플렉스로 평생을 지배했다. 영조는 동복형제로 영수와 동생이 있었으나 조졸했다.
 

명리학(命理學)에서 어머니는 주인공인 일간(日干)을 생하는 정인(正印)과 편인(偏印)으로 표현한다. 정인은 자연계와 조상계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헌신적인 십성이고 편인은 의심성분으로 외부의 사물을 뒤집어서 보는 습성이며 순발력과 전략적이고 임기응변이 좋으며 보통 계모같은 심리를 말한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싸는 영조의 사주에서는 ①술토(戌土)의 정화(丁火) 정인(正印)이고 법적인 어머니와 계모는 인(寅)중 병화(丙火)의 편인(偏印)의 장생(長生)으로 생기가 강하다. 영조에게 편인은 인원왕후, 인경왕후, 인현왕후, 명빈 박씨 등이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주는 신도비명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숙빈 최씨는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장희빈과 남인들이 득세한 분위기에서 계유년 1693년 정사월에 숙원의 첩지를 받고 10월에 첫 아들 영수를 생산했으나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1694년 갑술년(甲戌年)에 숙종의 장인인 김만기의 손자이자 노론 김춘택과 소론 한중혁등이 폐비민씨복위운동을 전개할 당시 서인에 의해서 중요인물로 대두되었고 영조를 출산한 갑술년은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장씨는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1701년(숙종27)신사년 인현왕후가 붕어하자 희빈장씨의 악행을 숙빈 최씨가 알리면서 희빈장씨도 그해 자진한다.

영조 사주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술월의 무토일주가 천간에 금강송같은 거목인 갑목(甲木)편관이 년월시에 모두 투출하고 지지 인목(寅木)편관에 뿌리를 내린 점이다. 이 사주는 거대한 금강송같은 나무가 산과 벌판에 숲을 이룬 모양새로 편관은 사회적인 권위와 자녀를 상징한다. 영조는 정성왕후(1693∼1757)와 정순왕후(1745∼1805)에게는 자녀가 없고, 정빈 이씨(1694∼1721)와의 사이에 화억옹주와 효장세자(1719∼1728), 화순옹주(1720∼1758)를 두었다, 화순옹주는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1720∼1758)에게 하가하였고 조선왕실 유일의 열녀이다.

영빈 이씨(1696년∼1764)사이에 3왕녀 화평옹주(1727∼1748), 4왕녀 화덕옹주(1728∼1731), 5왕녀와 6왕녀는 조졸하고 7왕녀 화협옹주(1733∼1752),9왕녀 화완옹주(1738∼1808)를 두고 장헌세자 사도세자가 1735년에 태어난다, 사도세자(1735∼1762)는 혜경궁 홍씨(1735∼1816) 사이에 의소세손 이정(1750∼1752), 정조(1752∼1800)와 청연공주(1754∼1821)와 청선공주(1756∼1802)를 두고 숙빈 임씨 사이에 은언군(1754∼1801)과 은신군(1755∼1771)을 두었다. 은언군은 철종의 조부가 된다,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직계후손인 남연군이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남연군의 손자인 고종이 왕위를 이어받게 된다.

영조는 귀인조씨(1707∼1780)사이에 조졸한 8왕녀와 10왕녀인 화유옹주(1740∼1777)를 두었다. 재4후궁인 숙의 문씨(?∼1776)사이에 11왕녀인 화령옹주(1753∼1821)와 제12왕녀인 화길옹주(1754∼1772)를 두어서 영조는 모두 2남 12녀를 두었으나 영조보다 오래 생존한 인물은 나중에 정조와 정적이 된 화완옹주와 화유옹주와 화령옹주뿐이었다. 숙의 문씨는 정조 즉위 직후 사도세자를 무고한 것 등으로 인해 사사되었다.

영조의 사주는 사주에 금기와 수기가 매우 부족하여 아들에게 너무 엄격하게 훈육하여 이것이 사도세자와의 사이에 1762년 임오화변(壬午禍變)으로 아들을 뒤주속에 죽게하는 비극을 만들었다. 영조는 사주에 부족한 여성을 상징하는 수기운과 지식을 상징하는 화기운과 강한 목기를 다스리는 금기운을 대운에서 잘 채워져서 장수하면서 18세기 조선의 안정을 구축한 왕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인간의 명(命)과 대운(大運)이 서로 조화로울 때 성공이 보장됨을 영조의 사주가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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