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국회의원에 바라다, ‘일요일의 남자’ 송해처럼 ‘유능한 머슴’ 역할 다하길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국회의원에 바라다, ‘일요일의 남자’ 송해처럼 ‘유능한 머슴’ 역할 다하길
  • 윤덕우
  • 승인 2024.04.1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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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사투리 ‘진또배기’는 ‘솟대’
풍년·풍우를 빌던 어촌 마을 수호신
국민 통합 네트워크 ‘전국노래자랑’
지위나 재산에 따른 특별대우 없어
어린 출연자 등 사회적 약자는 배려
천의 얼굴을 가진 송해. 그의 미소를 볼 때면 힘든 세상사에 찌든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따듯하게 안아줄 것 같은 느낌이다. 그의 백만불짜리 미소는 여전히 그가 우리 곁에 남아있다.(송해 기념관)

“어촌마을 어귀에 서서/마을에 평안함을 기원하는/진또배기 진또배기 진또배기/오리 세 마리 솟대에 앉아/물 불 바람을 막아주는/진또배기 진또배기 진또배기”

이 노래의 제목은 ‘진또배기’로 몇 년 전, 가수 이찬원이 ‘내일은 미스터트롯’ 예선에서 불러 많이 알려진 노래이다. 김학진 작사, 송결 작곡의 트로트 곡인 ‘진또배기’는 남녀 혼성 듀엣 ‘머루와 다래’가 1990년 발표한 노래로 그 후 가수 이성우가 2003년부터 이 곡을 ‘커버’해서 다양한 버전으로 활동한 바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이성우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소울이 담긴 목소리로 ‘진또배기’를 오랫동안 활동하며 불렀는데 특히 항암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고 하니, 그야말로 이 시대의 소리꾼이자 ‘진또배기’ 노래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강원도 사투리인 ‘진또배기’는 ‘진(긴) 막대’와 ‘박이’의 합성어로서 ‘솟대’를 뜻한다. 긴 장대를 세우고 그 위에 나무로 깍은 세 마리의 새(물오리)의 형상을 앉혀 놓은 ‘진또배기’는 풍년과 풍어를 빌던 어촌 마을의 수호신이었다. 천상의 신들에게 바람·물·불의 삼재(三災)를 막아달라고, 지상의 온갖 소원을 들어달라고, 일상의 안녕을 지켜달라고 빌고 기도하고 의지했던 ‘진또배기’는 불확실한 삶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더없이 든든한 존재였을 것이다. 옛날 솟대의 새들이 천상계의 신들과 마을의 주민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전령조(傳令鳥)였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진또배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했던 것 같다.

‘진또배기’는 민요풍 뱃노래이지만 흥겨운 리듬감이 경쾌한 보컬을 동반하기에 듣기에 해도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고 국악과 트로트 느낌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우리 민족만이 갖는 묘한 ‘소울’을 느끼게 한다. 마치 한풀이하고 영혼을 위로해 주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인생을 황량한 벌판이나 바다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비유하곤 한다. 그래서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바다의 심술을 막아주고 말없이 마을을 지켜온 진또배기’라는 노래 가사를 들을 때면 ‘진또배기’ 같은 대상이 더 그리워진다. ‘진또배기’라는 단어는 도대체 무슨 힘을 가진 것일까? 한 번 들으면 강렬한 어감을 느껴지고 잊혀지지 않는 여운을 만들어, 진득한 끈기, 변하지 않는 의리, 흔들림 없는 우정, 구수한 사람 냄새를 생각나게 만든다.

 

‘전국노래자랑’의 최장수 MC 송해
프로그램의 진또배기·수호신 역할
총선서 국회의원 당선인 300명 결정
의전에 취한 ‘정치적 건달’ 되지 말고
전국 고향 삼은 송해처럼 최선 다하길

오래전부터 KBS <전국노래자랑> 출연자들이 유독 ‘진또배기’를 많이 불렀던 것 같다. 수많은 노래들이 발표되자마자 사라지고, 반짝 유행에 그치지만 ‘진또배기’는 1990년에 발표된 이래로, 이성우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고 <전국노래자랑> 출연자들처럼 일반인들에게도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서 그런지 세월의 숙성을 머금은 노래인 것 같다. ‘진또배기’를 들을 때면, 초등학생 때부터 전국노래자랑에 4번 도전하며 끝내는 ‘진또배기’를 불러 ‘미스터 트롯 미’로 등극한 이찬원의 가수 도전 스토리가 생각나고, 음반을 발표할 때 진또배기’를 각각 다른 버전으로 수록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진또배기’를 울려 퍼지게 만든 가수 이성우는 ‘진또배기’ 노래를 지키는 ‘진또배기’처럼 느껴지고, <전국노래자랑>을 34년 동안 지킨 송해 선생은 ‘인간 진또배기’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전국노래자랑>은 송해와 너무 닮았다. 송해 선생이 44년 전통의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의 34년간 단일프로그램 최장수 MC로 활동하여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점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송해’이고 ‘송해’가 <전국노래자랑>처럼 느껴진다. 몸짓, 표정, 목소리까지 되살린 ‘AI 송해’로 진행을 맡기자는 여론도 있고 아직까지 전국노래자랑 MC가 송해라는 착각이 든다는 사람들도 있다. 대한민국 일요일을 책임졌던 ‘일요일의 남자’ 송해는 평생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데가 없지만 그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열고 싶다는 평생소원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전국노래자랑>은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들의 이야기와 노래를 통해 각본 없고 연출 없는 생생한 삶의 드라마를 만들었기에 많은 사랑을 받았고 로컬문화의 허브로써 소통·교류의 국민적 통합 네트워크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국 노래자랑은 공평하고 평등하다. 수도권이라고 더 많이 가는 것도 아니고 영남이라고 호남이라고 차별하는 것도 없으며, 충청도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 또, 참여자 모두가 ‘내가 주인공’이라고 인식하기에 지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다고 특별 대우를 요구할 수도 없고 그렇게 대접해 주지도 않는다. 다만, 방송에선 ‘땡’을 치면 한 번에 탈락하지만, 녹화 현장에서는 기회를 한 번 더 준다고 한다. 즉 방송에서 탈락자는 두 번의 기회에서 불합격이 된 셈인데 실패를 용인하고 한번 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꽤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나이가 어린 출연자나 외국인에게는 봐주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도 수준급이다.

누군가는 전국노래자랑은 ‘시대의 서사(敍事)’라고 말했다. 매주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지역만의 고유한 영상기록물이 되고 지역 홍보 및 지역만의 정체성 확립에도 기여를 한다. 이러한 서사들이 모여 만들어진 <전국노래자랑>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공유재가 되었고 로컬 브랜드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향민인 송해에게 있어 <전국노래자랑>이 열리는 곳은 모두 송해의 고향이 되는 것 같다. 그가 영남에 가면 영남 사람이 되고, 호남에 가면 호남 사람이, 충청에 가면 충청도 사람이 된다. 그렇게 송해는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었지만 전국의 226개 기초자치단체 모두를 고향으로 둔 최초의 사람이기도 했다. 작은 거인 송해는 각기 다른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대와 객석을 하나의 공감의 장으로 만들었고 소시민들을 부각시켜‘지역민들이 주인공인 축제’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는 진정한 의미의 혁명가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전국노래자랑에 투영된 송해 선생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는 물·불·바람 삼재(三災)를 막아주는 진또배기처럼 <전국노래자랑>의 진정한 수호신이었다. 모진 세상사에 지친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진또배기 노래 가사처럼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바다의 심술을 막아주고 말없이 마을을 지켜온 진또배기”였던 것이다. 6.25 전쟁 중 실향민이 되어 배 위에서 “바다야 내 갈 길 어디냐”는 생각에 바다 해(海) 자를 예명으로 짓게 되었다는 송해(宋海)의 선생의 자서전 같은 이야기는 운명적으로 그를 <전국노래자랑>의 MC로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게 만든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송해는 우리에게 형이고 오빠였기에 우리는 고인이 된 일요일의 남자 송해를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진또배기’같은 삶을 살았던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얼마 전, 우리는 22대 총선에서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았다. 총선 전, 정치권은 후보 공천에 있어 국민의 눈높이를 그토록 강조했지만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눈높이에 진짜 맞는지에 대한 ‘리스크 관리’는 이제 그들을 뽑아준 국민들의 몫이 되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다. 악착같이 주권자를 위해 일하는 유능한 ‘진짜 머슴’이 되라고 임기 4년 동안 총액 6억원이 넘는 연봉을 주고 보좌진 9명과 활동에 필요한 경비 등 연간 수억원이 넘는 혈세를 지원하며 약 180가지의 특권을 준다. 그런데 그들은 당선이 된 후에는 어느새 국민의 상전이 되어 의전에 취한 채, 폼만 잡는 ‘정치적 건달’이 되거나 자기 몸만 사리고 세평 관리나 하면서 다선 중진이 되는 마법을 부린다. 어떻게 국회의원 노릇을 할지 모르는 자들은 딱 한 가지만 기억하면 훌륭한 국회의원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송해만 같아라! 진정한 진또배기 우리들의 송해처럼 말이다!

칼럼니스트 이상철
칼럼니스트 이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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