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희 개인전, 예술상회 토마
이향희 개인전, 예술상회 토마
  • 황인옥
  • 승인 2024.04.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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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 아름다움, 사람들과 공유하고파”
청년작가 9명 참여 릴레이전
물감 대신 검은 볼펜 반복 사용
코로나19로 일상 위대함 자각
이향희작-4PM
이향희 작 ‘4PM’

예술가의 덕목 중에서 호기심만큼 유의미한 것이 또 있을까? 호기심은 잠자는 감각을 일깨우는 ‘숨’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호기심이 예술가의 전유물이라 단정할 순 없다. 인류의 진보를 이끈 모든 발명들의 출발에도 호기심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이쯤되면 호기심의 위대함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그것은 무뎌진 세포와 감각들을 되살리는 효과에 있다. 잠자던 감각에 창작이나 발명이라는 특별한 숨을 불어넣는 데 호기심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이향희 작가에게도 호기심은 창작의 원천이다. 호기심이 발동하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에게는 산책이 촉매제가 됐다.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롯이 혼자가 되어 산책 할 때, 무뎌진 감각들이 새 숨을 쉰다. 이때 익숙하던 대상을 새로운 가치체계로 전환해 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산책은 그의 오래된 습관이다. 포항 출신인 그는 바닷가 산책을 습관처럼 하곤 했다. 일찌감치 산책의 매력을 간파한 것이다.

“누구도 아닌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산책의 매력인 것 같아요. 대구에 와서도 산책하는 습관은 계속됐고, 그것이 작업으로까지 이어졌어요.”

현재 그의 개인전이 한창 진행 중인 예술상회 토마에 산책 중인 그의 발과 다리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대구 방천시장에 위치한 예술상회 토마에서 진행 중인 ‘EVERGREEN PROJECT’ 전시다. 리플릿 없는 전시장에서 9명의 청년 작가가 참여하는 릴레이전의 네 번째주자로 이향희 작가가 선정돼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 제목은 ‘내일도, 또 내일도’. 이는 과거의 기억을 작업의 소재로 삼는 작업 스타일에 대한 역설이다.

‘내일’이라는 단어는 과거의 기억과 연결된다. 과거 시점을 현재로 소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 빛바랜 느낌을 받기 십상이지만 작가로써 자신의 의식은 어제가 아닌 내일을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가 ‘내일’이라는 단어에 담겨있다. “작업 속 소재는 어제와 오늘로 연결되지만 작업하는 저의 모습은 오늘과 내일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림의 분위기는 흑백의 모노톤이 끌고 간다. 물감 대신 검은 볼펜을 활용해 반복적으로 선을 쌓는 방식으로 형상을 축적해간다. 미술대학 졸업 후 주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전통 회화 방식을 따랐다. 당시에도 볼펜을 일부 활용하긴 했다. 하지만 소품 위주로 설치 작업에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점차 ‘볼펜’은 물감 대용으로 자리를 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볼펜은 붓과 달리 가늘고 섬세하고 예민한 특징을 지닌 도구다. 그는 볼펜의 바로 그 예민함에 주목한다. 날카로운 볼펜으로 한 줄씩 새기듯 그림을 그리면서 오히려 둔해진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경험하며 희열을 느낀다. 무엇보다 복잡한 감정들이 해소되고 해방된다는 점도 볼펜을 선호하게 된 이유다. 여기에 시간이 흐르면 색이 옅어진다는 것도 그의 작업 내용과도 유사성을 띄었다. 그는 빛바랜 기억을 현재로 소환하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볼펜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색이 바래지기 마련인데, 그 현상이 기억의 변화 과정을 닮아 있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에게는 산책 할 때와 그림 그릴 때 느끼는 경험은 동일하다. 감각을 선명하게 깨우고, 복잡한 감정과 기억을 정리하는 등의 산책 과정에서의 경험들은 볼펜 그림을 그릴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중요한 것은 감각이 오롯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감각이 살아있을 때라야 제가 의도하는 것들을 충분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죠.”

작업의 소재가 산책하며 만나는 일상이나 과거의 기억이다. 현재의 일상마저 그림을 그리는 시점에선 과거가 된다는 점에서 과거 시점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억 소환을 위한 촉매제다. 그는 주로 사진을 활용한다. 산책하며 촬영했던 사진이나 과거의 사진첩에서 자신의 의식을 붙잡는 대상을 선택한다. 선택된 대상들은 산책하는 자신의 모습이나 고향 포항의 기억과 맞물린 금호강변 풍경들이고, 그 모습들이 화폭에 담긴다. 금호강변은 최근 그가 선호하는 산책 코스 중 하나다.

그림에서 핵심 대상은 볼펜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부차적인 대상들은 먹이나 목탄, 흑연, 수채화 등의 재료를 사용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휘발되는 볼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림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단호하다. 그는 그림에서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려 노력한다. 그림의 기능 중 하나가 일반 대중과의 소통에 있다고 했을 때, 작가 개인의 감정은 소통력을 높이는데 방해요소가 된다는 생각에서 감정은 배제된다. 색채 또한 마찬가지다. 흑백 위주의 단조로운 모노톤을 사용한다. 모두 작가 개인의 개별성을 넘어 일반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보편성 획득을 위한 노력의 일환들이다.

지금은 볼펜이라는 도구로 섬세하고 선명하게 대상이 드러나지만 코로나 19 이전만 해도 기억 속 풍경을 현실과 초현실 사이의 모호함으로 표현했다. 당시 화면 속 지배적인 정서는 불안과 몽상이었다. 이는 그가 당시 처한 상황에 대한 반영의 결과였다. “그림을 계속할지 고민하던 시기여서,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그것이 그림에 반영됐어요.”

일상에 주목한 것은 코로나 19 팬데믹을 겪으면서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일상이 멈춰서면서 비로소 일상의 위대함을 자각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위대한 일상을 역설적으로 소소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무심하게 흘려보내기 쉬운 일상 속 순간들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전시는 2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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