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기록 그리고 리멤버, 아담하고 정겨운 마을 어느 것 하나 남김없이 대청호 푸른 심연 아래로…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기록 그리고 리멤버, 아담하고 정겨운 마을 어느 것 하나 남김없이 대청호 푸른 심연 아래로…
  • 채영택
  • 승인 2024.05.0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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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지역 주민의 애환
배려없이 반 강제적으로 쫓겨나
마을 역사·건축 양식·민속 등
조사·보존 없이 그대로 수몰
뿔뿔이 흩어진 주민들 옛추억
호수 너머 물안개에 뒤섞여
소리없는 여명으로 다가오는 듯
사진2
물안개 피어오른 새벽 대청호의 물속에는 수몰된 마을과 추억이 잠겨 있다.

“기록은 기억을 보존하는 장치이며 남겨진 기록은 기억을 재구성한다.”(설문원. 2010)

얼마전 업무차 세미나가 있어 대청호에서 1박을 한 적이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대청호의 새벽 풍경이었다. 다섯시부터 시작된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글램핑장을 지나고 안개를 헤치며 서서히 다가오는 거대한 호수의 풍광을 맞이하는 순간은 정말로 감동이었다.

잠시 댐 위에 펼쳐진 하늘을 보았다. 아직 어둠이 깔려있는 하늘은 흑진주로 빛났고 그 한복판으로 유성 하나가 불꽃놀이를 한다. 가늠할수 없는 차디찬 허공에 별은 살아있음을 울부짖기라도 하듯 내가 서 있는 희미한 땅에 불똥이 튈 것만 같았다. 호수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고목나무 곁으로 싸늘한 새벽 바람이 일었다. 이날은 단체로 움직이는 터라 그 짧은 순간에 하늘을 보며 일어나는 온갖 우주의 양상이 나에게는 신선하고 경이로운 순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것을 오늘 이렇게 기록하는 순간 기억은 새롭게 태어나고 더욱 또렷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영화 ‘리멤버’는 죽음과 동시에 사라지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 한필주는 80살 노인으로 일제 강점기에 가족 모두 친일 세력에 의해 사망하였고 특히 장군 김치덕의 정혼자였던 한필주의 누나를 위안부로 팔아넘겨 그녀의 믿음을 배신한 친일파 김치덕 장군에 대한 복수 이야기로 알츠하이머 환자였던 한필주가 기억이 사라지기전 훈장 수여식에서 김치덕 장군을 죽임으로써 평생을 기억해온 복수의 막은 내리게 된다. 리멤버는 복수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지만 기록이라는 보존 장치를 통해 영화로 재구성 되어 이 사건에 대한 의미와 그것이 주는 새로운 가치를 재생산하게 된다.

한국기록관리학회의 저서 ‘기록관리론’에 따르면 ‘기록은 소멸되어가는 기억 혹은 사실을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소멸되지 않도록 통제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저장하는 고도의 지적 행위이다’라고 했다. 기록은 그래서 중요하다. 다시 대청호로 돌아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호수 주변의 산책로를 걷는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대청호를 만들 당시 수몰지역 주민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거의 반 강제적으로 쫓겨나다시피 마을을 떠났고, 그곳 마을의 역사와 문화, 집의 구조와 건축 양식, 지리적 특성, 민속 등에 대해 제대로 된 사전 조사와 보존 장치 없이 그대로 수몰되었다는 것이다. 대청댐의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댐 건설 당시 마을의 수몰 유형은 아마 대청호와 비슷할 것이다.

어느덧 호수 위를 유령처럼 떠돌던 희뿌연 안개가 걷히고 호수 주변으로 마을이 드러났다. 불경에 여청량지(如淸凉池)라고 했다. 청량한 물은 목마른 자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다. 보이지 않는 대청호의 푸른 심연에는 이제 수몰민이 아니라 물속의 온갖 뭇 생명들의 삶터가 되었다. 이어지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냉온이 교차하는 새벽 바람에 들릴 듯 말 듯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가 내 몸 세포 하나 하나를 씻어내는 느낌이다.

구불거리는 호숫가 산책로를 걷다 보면 키가 크고 검은 수피에 연록색 푸른 나뭇잎이 특히 눈에 띈다. 상수리나무였다. 예로부터 마을 근처의 상수리나무는 벼농사가 흉년이 들었을 때 대신 양식으로 먹었던 구황작물로, 열매를 갈아 묵을 만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색을 하며 호숫가 둘레길을 따라 걸어갔다. 아직도 상수리나무 군락이 길게 펼쳐지는데 상수리나무의 분포를 위도상으로 보면 평지인 맨 아래쪽에 많이 자생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순으로 분포하는데 유독 이곳 대청호의 산책로 주변은 온통 상수리나무 천지다. 나무 바로 아래는 물에 잠긴 아담하고 정겨운 고향 마을이 있었을 것이다. 뿔뿔이 흩어진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온다면 아마도 토토리를 줍던 선연한 추억이 호수 너머로부터 물안개에 뒤섞여 미세한 붉은 가루를 뿌리 듯 점점 소리없는 여명으로 다가올 것이다.

드디어 태양이 호수위로 붉은 양탄자를 까는가 싶더니 어느새 하늘 위로 날아 오르듯 호수의 안개를 걷어가 버린다. 대청호의 새벽은 아름다운 한편의 꿈을 꾼 듯 부지런한 새들과 호수 너머에서 물결을 밀며 불어온 바람이 녹색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가는 청량한 소리와 알을 까기 위해 날개짓 하는 곤충들의 붕붕거리는 가느다란 소리로 어느덧 분주해지는 아침을 맞았다. 나의 경험과 사실을 이렇듯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는다면 기억은 시간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대청호의 추억이 있고 얼마 뒤 나는 고향 마을 뒷산 꼭대기에 있었던 당산집과 당목을 찾기 위해 산을 올랐다. 어릴적에는 두려움으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는데 역시나 당집은 사라지고 당산 소나무는 부러져 썩은 부위가 을씨년스럽게 나를 맞이했다. 당집은 마을의 안녕을 위해 해마다 마을 제주를 중심으로 당산제를 올리던 곳이라 안타까움이 컸다. 이 일이 있고 마을 주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수십년 전 당집과 당산목을 없애고 난 후 몇 년 사이에 마을의 젊은이들이 줄줄이 아프거나 갑작스런 사고로 다섯 명이나 죽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샤머니즘(shamanism)인 원시 신앙으로만 치부하기도 곤란한 노릇이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을에서 그동안 지내오던 당제를 왜 없애버렸을까 하는 나의 의구심은 결국 물질적 사고가 이곳 시골에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고서야 의문점이 풀렸다. 마을 주민의 입을 통해 ‘돈이 양반’이라고하는 소리도 들은터라 안타깝고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당산제가 조상의 영혼을 달래고 마을의 평안과 복을 짓는 의식으로 마을의 아름다운 풍속으로 이어져 내려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동안 수 십 년간 지내오지 않았던 당제를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보호수 아래에서 몇 년 전부터 지내오고 있다는 것이다. 당제는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중의 마음이 가장 경건한 의식으로 표현된 모습일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의 일변에서 새롭게 출발하듯 비록 과거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살아있는 모든 생명 존중의 마음을 담은 정갈한 의식은 지금도 필요하리라 본다.

 

로컬리티

특정한 지리적 공간을 토대로

사람들 관계가 만들어내는 산물

사라져가는 마을의 문화·특성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기록하고

시간속에 새로운 미래 구축하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기를


기록 문화라고 한다면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이문웅 서울대 명예교수의 고향 울산 달동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내용은 이렇다.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농촌 조사를 하고 있던 이교수는 1936년도에 고향인 울산에 와서 농촌 사회위생조사라는 심층적인 조사를 벌여 70년이 지나 그 조사 내용을 타임캡슐의 형태로 보존하고 있다가 고향 울산에서 공개한 내용인데 여기에는 그 당시 울산의 생활 민구류를 비롯하여 모든 세세한 정보들이 담겨있고 표본 생활 도구의 보존은 박물관이나 학교를 통해 분산되어 지금도 잘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자료들은 학술자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커서 잘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수몰지역이나 도시재개발 혹은 작은 댐이나 호수의 건설에서도 로컬리티는 반드시 필요하다. 로컬리티란 한국기록관리학회지에 의하면 ‘특정한 지리적 공간을 토대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산물, 즉, 언어 역사 문화 제도 등 복합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고유의 특성’을 의미 하는데 특정한 지리적 공간은 가장 작은 마을단위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마을이지만 인근 마을과는 또 다른 문화가 있고 고유의 특징이 있다. 또 마을 단위의 각 개개의 주택 안에도 다양한 기족 문화와 유산들이 즐비하다. 인구의 유입이나 개발로 인해 빈집이 늘어나는 시골의 마을 소멸 현상은 새로운 이주 세력들에 의해 여지없이 파괴되거나 때로는 방치되기 일쑤다. 이제 빈집을 활용해 마을마다 작은 박물관 만들기를 시도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내 마을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나무나 물건 하나쯤 남겨두고 작고 소소한 일상적인 모습들이 그저 시간 속에서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기록하고 그것이 시간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고 연결하는 소중한 자산으로 남기를 바라본다.
 

 

임종택<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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