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위대한 경북의 역사…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앞날의 등불’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위대한 경북의 역사…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앞날의 등불’
  • 윤덕우
  • 승인 2024.05.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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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도(雄道) 경북! 자부심을 가져라!
전 국토의 18.3%…서울보다 31배 커
인구 최다 지역서 이젠 지방 소멸 걱정
경북의 고토였던 신라는 원조 ‘한류’
포항~영천~칠곡 ‘자유민주주의의 땅’
다양한 문화의 태생지이자 집결지
포항제철 신화 지금까지 경북의 자랑
현실의 모순 냉정히 인식해 미래 대응
미래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할 지름길
문무대왕릉
동해 앞 바다를 지키는 문무대왕릉.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은 죽어서라도 왜적의 침입을 막겠다며 동해의 용이 되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늘 앞장섰던 경북의DNA의 발현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도시마다 지역마다 1등을 내세우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수도 서울은 수많은 경제지표에서 1위를 내세우고, 경기도는 가장 많은 인구와 가장 높은 잠재력을 과시하며, 강원도와 제주도는 자연환경과 관광자원을, 전라남도는 전국 1위 수산물 생산량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곳은 어디일까?

전 국토의 18.3% 차지, 18,420㎢ 면적으로 수도 서울보다 31배 크고, 335㎞에 달하는 긴 해안선과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그리고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어울려져 만들어 낸 곳, 바로 최대면적을 자랑하는 경상북도이다. 그러나 22개 지방자치단체(10시, 12군)로 구성된 경북은 대부분이 지방소멸 고위험 지역에 속할 정도로 심각한 인구감소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1896년 을미개혁 때 13도제 실시로 경상북도가 설치된 후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까지 한반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북이었다. 그래서 ‘웅도 경북’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다.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경북 인구는 부침을 거듭하다가 1963년 울진군을 편입하면서 1960년대 중반 경북은 다시 인구 1위로 도약하게 된다. 그러나 60년대 말 서울의 급속한 인구 증가로 경북 인구는 2위로 떨어지고 80년대초 인구 5백만 정점을 찍은 후 계속 인구가 줄어들어 오늘날 지방소멸을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경북은 청정 비경 동해 1000리, 낙동강 700리, 백두대간 800리에 남겨진 선조들의 숨결과 찬란한 역사적 전통들, 그리고 신라 천년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여전히 웅장하고 크게 느껴진다. 사실 경북은 늘 한반도 역사의 중심이었고, 각종 문화의 발원지이자 호국 성지였고, 산업화의 기수였다. 길을 잃을 때는 북극성을 바라보아야 하고 민족의 미래를 개척하고자 할 때는 역사부터 공부해야 한다고 했던가! 지금 ‘웅도 경북’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이 시점에 ‘웅도 경북’를 만들었던 경북의 역사, 문화, 호국정신, 그리고 산업화의 기적을 이루었던 시간들을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먼저, 경북은 한민족의 역사적인 시간들이 응축된 땅이다. 삼한 중 하나였던 진한은 오늘날 경북 지역의 위치 및 면적과 상당 부분 비슷한데 진한 12국 중 하나였던 사로국(경주)은 다른 소국들을 흡수·복속시키면서 ‘신라’로 성장하였고,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동맹과 가야 세력들을 병합함으로써 신라는 삼국시대의 최종 승자가 된다. 찬란했던 불교 관련 유산들과 명승들은 대부분 통일신라 시기에 완성됐고 천년고도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의 문화는 중국과 일본을 넘어 멀리 아라비아반도까지 알려지게 된다. 한 이슬람 문헌에는 신라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누구든지 신라에 오는 사람은 이곳에 정착하는데 풍부한 금과 과일, 맑은 공기와 물 등 살기 좋은 조건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경북 웅도의 뿌리였던 신라는 그 당시 전성기를 누렸던 당대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였다. 이러한 점에서 경북의 고토였던 신라는 원조 ‘한류’였던 셈이다.

두 번째, 경북은 호국의 땅이자 성지였다. 삼국 통일의 주역인 신라 문무왕(재위: 661년∼681년)은 나당전쟁에서 승리해 불완전하게나마 삼한일통의 대업을 완수했다. 그러나 왜적의 침입 에 취약했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어서 용이 된 문무왕의 호국정신은 오늘날까지 문무대왕릉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DNA’가 발현해서일까? 2024년 현재, 경북의 독립유공자는 2,496명으로 전체 18,018명의 13.85%를 차지하여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그 지위를 공고하다. 그뿐만 아니다. 6.25전쟁 때 다부동 전투(칠곡), 장사상륙작전(영덕), 학도의용군(포항), 안강·기계전투(경주와 포항), 신녕 전투(영천) 등은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전투였다. 이런 의미에서 포항에서 영천, 칠곡까지 이어지는 지역을 ‘자유민주주의의 땅’이라고 불러도 전혀 과하지 않다.

세 번째, 경북은 다양한 문화의 보고(寶庫)이다. 경북은 넓은 면적을 가진 만큼 다양한 문화의 태생지이자 집결지이다. 특히 경북은 우리나라 세계유산 16건 가운데 6건을 보유한 전국 최다 지역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신라·유교·가야 등 3대 문화와 관련한 세계유산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한국 속의 한국(Korea in Korea)’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전통문화를 보유한 경북은 고령의 대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등 가야문화, 삼성현(원효, 설총, 일연)과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대표되는 불교 문화, 성리학의 시조인 안향과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등으로 대표되는 선비문화 등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오늘날까지도 웅도 경북을 지탱해주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고려말 홍건적에 의해 공민왕은 안동으로 몽진(蒙塵)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안동은 임시수도로서 역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공민왕 신앙’의 중심지가 될 정도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실 안동은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승기를 잡은 고창(안동)전투부터 공민왕의 몽진까지 고려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도시가 된 셈이다.

네 번째, 경북은 지조의 땅이다. 충신의 상징인 포은 정몽주(경북 영천)로부터 시작되는 조선 사림의 계보는 길재(경북 구미), 김숙자(경북 구미)와 그의 아들 김종직까지 이어져 그 후 동인· 남인·서인·북인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언적(경북 경주)과 이황(경북 안동)의 학문을 추종한 남인(南人)들의 본거지는 오늘날 경북 지역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조선 후기부터 노론에 밀려 일부 시기를 빼고 늘 만년 야당이었지만 영남 남인들은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며 때를 기다리게 된다. 기호 남인들은 정조 때 정권에 참여했지만 영남 남인들은 주로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이후에야 비로소 중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의 후예가 위정척사파가 되고 항일 독립운동가가 된 것도 비주류였던 영남 남인들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후천개벽을 꿈꾼 동학이 만들어진 곳도 경북(경주)이었는데 최제우의 부친(최옥)이 퇴계 이황 학파의 정통 계승자였다는 점에서 영남 남인들이 경북 지역에 미친 영향은 상당히 컸던 것 같다. 어쩌면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시인 조지훈이 ‘지조론’이라는 글을 쓴 것도 우연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포스코야경
대한민국 산업화의 출발이 된 포항제철은 박태준의 우양우 정신과 그 당시 국민들의 부강한 나라를 꿈꾸고자 한 염원이 담겨져 있다. 무에서 유를 만든 포항제철의 신화야 말로 웅도 경북의 정신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북은 산업화의 기수였다. 우리나라 최대 중화학공업지대인 남동임해공업지역은 포항에서 시작된다. 박태준의 ‘우양우’ 정신이 스며든 포항제철 신화는 지금까지도 경북의 자랑이며 포항은 현재 이차전지산업을 주도하고 환태평양의 중심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대한민국 전자·반도체 산업의 번영기를 이끈 구미도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을 통해 미래산업도시로의 번영을 꿈꾸고 있다. 이처럼 포항과 구미는 대한민국의 엔진이었고 웅도 경북을 날게 한 ‘양 날개’였다.

이렇듯 경북의 역사는 위대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통성의 모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위대함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럽고 불투명한 앞날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등불이 되기도 한다. 과거의 발자취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갈 우리에게 정체성 확립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중요한 메시지를 알려준다고 했던가! 역사의 교훈을 통해 배우고, 현실의 모순을 냉정하게 인식하여 미래의 변수를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이 경북이 저출산과 고령화를 이겨내고 지역소멸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미래 산업의 중심 지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자 ‘브와그완’은 이런 말을 남겼다. “여행은 그대에게 세 가지 유익함을 준다. 첫째는 타향에 대한 지식, 둘째는 고향에 대한 애착, 셋째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한국 속의 한국’이라고 불리는 경북을 여행하는 것이야말로 ‘브와그완’이 남긴 여행의 정의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들 말한다. 여행을 통해 ‘웅도(雄道) 경북’의 멋을 느껴 보시라. 당신의 정체성을 발견할지 모르니 말이다.
 

 
칼럼니스트 이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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