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사도세자의 천기와 인생궤적
[류동학의 세상읽기] 사도세자의 천기와 인생궤적
  • 승인 2024.05.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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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경상북도 예천군 명봉사(鳴鳳寺) 뒤편에 마련된 장조의 태실을 그린 보물로 지정된 '장조 태봉도'는 정조 9년(1785)에 사도세자의 태실과 주변 풍경을 그린 것이다. 사도세자(=추존 장조, 1735~1762)는 부친과 오랜 갈등 끝에 27세의 젊은 나이로 7월의 한여름 땡볕 삼복더위에 쌀을 담는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아사한 인물로 유명하다. 영조는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인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가 지나쳐서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질책과 정신적 학대를 가했다. 그 결과 사도세자는 정신질환을 얻어 많은 인물들을 죽이는 비행을 저지르다 결국 부친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사도세자의 천기를 보면 인월은 음 12월의 축토(丑土, 소달)에 얽매여 있는 상태를 끌어당겨 만물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처음으로 생겨난다는 뜻으로 인(寅)은 당긴다, 생물을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인목(寅木, 범)이 교육, 학교, 양육, 유아교육, 중풍, 머리질환을 상징한다. 사도세자는 사주원국에 ②임수(壬水) 일간으로 태어나고 지지가 모두 인묘진(寅卯辰)의 동방 목국의 ⑤을목(乙木)상관이 투출하여 생명력을 나타내는 봄의 기상인 목기운인 식신과 상관이 너무 강하다. 그러므로 뇌질환이나 간이나 피로감이 강하고 너무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임을 알 수 있다.

사도세자는 1735년(영조 11년) 음1월 21일,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영조는 장남 효장세자를 7년 전에 잃고 42세의 고령에 사도세자를 낳았으며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도 당시 40세였다. 손자를 볼 나이에 아들을 둔 것이다. 그래서 영조 12년(1736)에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원자를 왕세자로 정식 책봉했다.

사도세자는 5살 때는 삭사 중에 영조가 말을 걸자 입에 있는 밥을 전부 뱉고 답한 적도 있다고 한다. 왜 음식을 뱉었는지 영조가 묻자 어린 세자는 "소학(小學)에서 '부모가 부르실 때는 입에 있는 걸 뱉고 말하는 게 효(孝)'라고 배웠습니다"라고 답했다. 말하자면 매월당 김시습 수준의 천재였다.
그는 지혜의 상징이자 사고방식이 개방적인 역마의 기운이 강한 ②임수(壬水) 일간으로 태어났다. 임수는 법이나 도덕규범을 무시하고 개방적이며, 색정과 바람둥이 기질도 많다. 이 사주는 격국(格局)이 수목상관(傷官)과다격이다. 이렇게 목기운의 상관이 강하면 목기를 조절하는 헌신적인 어머니와 스승의 도움을 상징하는 ⑦경금(庚金) 편인(偏印)이 이 사주를 조절하는 용신(用神)이 된다.

즉 이 사주는 매우 에너지가 약한 신약한 사주로 오행상 임수의 근원인 금과 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도세자가 죽은 임오년(壬午年)은 인생의 환경적인 행로인 대운(大運)이 을해(乙亥)대운으로 목기가 강한 흉운이었다. 또한 임오년의 오(午,말)가 사주의 ①인목(寅木)과 ⑧술토(戌土)와 결합하여 인오술(寅午戌,범말개)의 화국(火局)이 되어 사주 천지를 모두 목화(木火)기가 강한 운으로 인하여 신약한 인공연못인 임수(壬水)가 증발하고 수의 원천이자 용신인 경금(庚金)이 녹을 지경이다.

사도세자와 같이 일주가 미약한 상태에 무토와 진술토(辰戌土)의 편관이 태왕(太旺)하여 일간을 크게 구속하면 편관은 질병, 부상, 관재, 송사 등의 일이 발생하여 온갖 재앙의 근원지가 된다. 일간이 편관을 감당할 수 없으면 온갖 재앙의 근원지가 되어 일간을 괴롭히는데 이것을 칠살이라 부른다.
 

상관은 총명하지만 너무 예민하고 저항의식과 자존심과 승부욕이 대단하여 남의 비방이나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계모인 노론 벽파의 정순왕후와 그 부친인 김한구, 계모 숙의 문씨와 그 오빠 문성국, 동복 여동생 화완옹주(무오년 을묘월 임신일 신축시생), 처삼촌인 홍인한, 영의정 김상로, 홍계희 등이 사도세자와 영조의 부자간을 이간질하고 결정적으로 나경언의 고변이 더욱 화를 키웠다. 또한 상관은 개성이 강하고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한 기질의 사도세자는 엄격하고 강압적이고 편집증의 부친인 영조의 천기(갑술 갑술 무인 갑인시)와의 매우 달랐다.

영조의 일간은 임수를 막는 무토(戊土) 편관에 사도세자에게 필요한 금과 수가 영조에게는 전혀 없다. 부자간의 궁합이 최악이라 볼 수 있다. 사도세자의 사주는 매우 신약하여 반드시 헌신적인 어머니와 보살핌이 필요한 사주로 경금의 편인을 살려야 한다. 임경(壬庚)구조는 수기원천(水氣源泉)으로 경금 편인이 천군만마와 같다.

이 경금 편인의 역할을 정성왕후가 했으나 아쉽게도 1757년에 왕후가 죽음으로써 사도세자의 의지처가 사라지고 말았다. 사도세자의 부드럽고 유약한 성격을 이해해 주지 않고 무조건 자기 방식에만 맞추라고 강요하는 영조의 아들로 태어난 죄로 개고생을 해야 했다. 자식에 맞는 교육이 필요한데 부모가 원하는 교육방식이 문제였다. 사도세자의 비극은 비정한 정치의 세계를 보여주는 흑역사였다. 그의 대운도 30대 이후부터 신유술(申酉戌)로 경금(庚金)이 왕해지는 지지로 가서 매우 좋은데 이 고비를 넘기고 못하고 굶어 죽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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