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지옥은 공간이 아니고 상황이다
[달구벌아침] 지옥은 공간이 아니고 상황이다
  • 승인 2024.05.1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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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지옥(地獄)은 공간이 아니라 상황이다.
살아서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죄를 많이 지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한다. 반대로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복을 많이 쌓으면 천국에 간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는 천국과 지옥을 공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지옥과 천국은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상황적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국과 지옥, 저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항상 함께 하는 '상황' 속에 존재하고 있다.

남편을 사별하고 딸과 둘이 사는 여성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사고로 잃고 어린 딸을 키우며 많은 고생을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남들에게 '아빠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정말로 정성을 다하여 교육했다. 딸이 원하는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혼자서 딸을 키우면서 형편이 좋지는 않았지만, 학원비, 과외비 등을 아끼지 않고 교육에 정성을 들였다. 그 결과 딸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이제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런 딸이 그녀에게는 전부였다.

평온하던 그녀의 삶에 이상한 문자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메시지의 내용은 딸을 납치해서 데리고 있으니 자신들에게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피식하고 웃었다. 말로만 듣던 신종사기, 스미싱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 문자가 신경 쓰였다. 분명 신종사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찜찜한 마음에 자꾸 문자를 열어보게 되었다. 딸은 휴일이라 친구를 만나러 나갔고, 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올 건데, 괜한 걱정을 한다고 마음을 진정시켜 보았지만 한번 머릿속에 들어온 불안한 생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딸에게 한번 확인은 해 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 전화를 해보았다. 그런데 딸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니겠지' '설마' 하던 것이 '진짜?'라는 생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받지 않는 딸의 전화번호를 누르기를 수십 번을 했다. 그래도 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녀의 머릿속에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장면이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지옥 한가운데 던져졌다. 메시지 하나 때문에 평온하던 그녀의 삶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지옥문을 활짝 열어 버린 것이었다. 울고 불며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끝내는 메시지를 보내온 곳으로 전화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사기범이 쳐놓은 덫에 걸리고야 말았다. 사기범들은 불안한 그녀의 마음을 이용하여 더 강하게 협박을 했고, 어떤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말고 자신들의 이야기만 들으라고 강요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딸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에 이미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사기범들의 말 잘 듣는 노예가 되어 가고 있었다. 딸을 볼 수 있다면 돈 따위는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딸이 시집갈 때 주려고 모아둔 적금통장을 해지하여 찾은 현금을 가방에 넣고 그들이 말하는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 그녀의 마음은 지옥과 같았다. 딸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아무런 바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녀에게는 돈도 필요 없고,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딸만 돌아오면 천국이 따로 없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울면서 신께 기도했다. 그렇게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그들이 말하는 대로 사물함에 돈이 든 가방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딸에게서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돈만 전달되면 딸을 무사히 돌려보내 준다는 사기범의 말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연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고서 딸의 전화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정말 기적처럼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순간 기다렸던 천국 문이 열렸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면서 딸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딸과의 통화 후 다시 그녀는 지옥의 한가운데 내 던져졌다. 그 이유는 딸이 전화를 받지 못했던 이유가 친구와 영화를 보면서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두었기 때문이었고, 이미 사기꾼에게 딸의 결혼자금을 모두 전달한 후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같은 장소, 같은 공간에서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넘나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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