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꼴찌 교수의 긍정혁명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치유의 인문학] 꼴찌 교수의 긍정혁명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 승인 2024.05.1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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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이 글은 빽도, 돈도, 인맥도 없는 34년 전 필자 같은 근자감만 있는 청춘들에게 바치는 글이다.

동양화라는 미술전공이라 국가안전기획부 시험에서 면접기회도 얻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카드는 삼풍백화점.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안기부에 전력하느라 면접날이 다음날 인줄도 몰랐다. 아침 일찍 중대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휴가를 얻어 서울로 향했다. 면접 양복도 준비하지 못한 채 하계장교군복을 입고 삼풍백화점으로 향했다. 어스름 저녁 무렵 백화점에 도착해 삼풍백화점을 둘러보았다.

당시 매출액 기준 대한민국 백화점 업계 1위의 초호화백화점. 그곳이 삼풍백화점이었다. 89년 12월 1일 개장을 시작했고 신규채용도 공격적이었다. 업계 최고를 만들기 위한 인재채용도 전투적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쪽 모집부문은 미술·디자인이었고 인원은 1명. 전공일치도가 100%인 디자인전공이 아니라 약간 걸리긴 했지만 좌고우면 할 상황이 아니었다.

다음날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은 오전 10시. 나의 면접순서는 3번째. 5명씩 들어가는 집단면접이었다. 면접 전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양복을 입고 왔다. 나만 장교군복을 입었다. 예의와 준비성이 없어 보일까봐 2번째 면접을 보고 나온 모르는 동기에게 넉살좋게 웃으며 말했다.

"어이 동기야~, 전방에서 급히 오느라 양복을 준비 못했다. 미안하지만 양복과 와이셔츠, 그리고 넥타이 좀 빌려주라"

어렵게 동기의 옷을 빌렸다. 면접 전 대기실 좌우측에 앉아 있는 동기들에게 물었다.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친구들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친구야~, 혹시 출신학교와 전공은 뭐니?"

왼쪽 한명은 S대 출신의 디자인 전공자였고 오른쪽 한명은 K대 출신의 디자인 전공자였다. 4명 모두 서울권 디자인 전공자였고 나만 지방대학 동양화 전공자였다. 비전공자는 나뿐이었다. 떨어질 확률 200%! 게다가 내 옆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학부 S대가 아닌가? 이래저래 최악의 면접 대진표였다.

더구나 옛날에는 지금처럼 블라인드 면접도 아니다. 면접관은 내 신상의 모든 것을 꽤 뚫고 있다. 면접서류에는 내 빈손의 모든 것이 올라가 있었다. 돈 줄의 부모도 없고, 든든한 인맥도 없고, 게다가 전공도 안 맞는다.

이런 젠장!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위치, 최고의 매출, 최고로 호화스러운 백화점에 합격할 이유를 대는 것보다 떨어질 사유를 찾는 것이 훨씬 더 빠를 것 같았다.

면접관은 총 5명. 많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분의 질문에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 면접위원장 정도로 추정되었다. 질문이 날카롭다. 질문이 송곳 같아 보이긴 처음이었다. 흔히 말하는 압박면접의 달인이다. 왼쪽에서 오른쪽 순으로 질문을 했고 특별히 S대 친구에게는 이것저것 많이도 물었다. 느낌이 세하다.

"김성삼씨, 전공이 동양화던데 여기에 왜 지원했지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다. 질문 끝에 칼날이 실렸다. 칼날은 내 심장의 한 조각을 예리하게 베었다. 순간 복잡해진 머리. 입술이 마르고 식은땀이 귓전을 타고 흘렀다.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고 피할 곳도 없다. 나는 위원장의 예리한 질문의 칼날을 그대로 받기로 했다.

"네, 맞습니다. 저는 디자인 전공이 아니라 동양화 전공자입니다. 하지만 동양화 전공의 강점은 점 하나, 선 하나를 찍고 그리기 위해 수많은 상상과 발상의 전환을 수십, 수백 번 연습하는 전공입니다. 제게 2달만 시간을 주신다면 제게 요구하는 모든 디자인적인 실무는 완벽히 숙지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게 100%를 요구하신다면 200%로 돌려드리고 200%를 요구하신다면 400%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작두위에 올라탄 무당처럼 나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도전이 아니었다. 그 순간은 분명 도발이었다. 왜 그랬을까?

'어차피 떨어질 거' 

그 순간 내가 걸 수 있는 건 나의 미래가치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아니? 바로 배수진을 친 사람이다. 배수진을 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배수진을 친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배수진 덕분에 난 삼풍백화점에 합격했다. 그리고 지금 면접관이 된 나는 34년 전 나 같은 두려움 없고 당당한 청춘들을 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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