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신경림 시인이 남긴 자리
[대구논단] 신경림 시인이 남긴 자리
  • 승인 2024.05.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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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대기자·전북대 초빙교수
며칠 전 세상을 하직한 신경림시인에 대한 신문보도는 마치 대통령 사망기사라도 되는 양 대부분 톱기사다. 어느 신문 할 것 없이 모두 비슷하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그에 대한 추모의 정이 철철 넘쳐난다. 어느 평론가가 했다는 말처럼 ‘옛날에는 김소월이요 지금은 신경림’이라더니 그에 대한 평가는 모두 똑 같았다. 그와 나는 젊어서부터 알고 지냈다. 주로 이호철 소설가나 고은 시인과 함께 만날 때가 많았지만 시인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닌 내가 그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 해마다 설날이 되면 불광동에 있는 이호철의 집에서 만나는 일이 잦았다. 이호철은 문단의 어른이었지만 스스럼없이 후배들을 거두며 함께 어울리는 등 참으로 친하게 지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광주5·18국립묘지에 계시지만 조용하게 웃는 모습이 언제나 정겹다. 고은과는 故 최동전이 경영하는 동광출판사 출판관계로 만나기도 했지만 김지하 석방을 위한 원주성당 지학순주교의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밤새 마신 술로 만취한 상태로 이튿날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가 일행 10명이 모두 ‘박정희야 물러가라’는 노래를 부른 죄로 원주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엄혹한 긴급조치 시절이어서 10명 모두 유치명령을 받았으나 나는 끝내 부인 일관하여 무죄로 석방되었다. 고은, 이부영 등은 부인했지만 유치 29일을 받았고 정연주는 재판장을 향하여 “한마디로 X 같습니다”라는 막말을 썼다가 “그런 말을 하면 법정모독죄로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를 받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같은 조사실에서 형사들의 집중적인 피의자 조서를 받던 고은이가 나를 보면서 “내 본명은 고은태여”라고 알려줘서 본명을 알게 된 일도 있다. 당대의 문인들과 어울려 지냈지만 문인이 아닌 나는 그들의 문학토론이나 고담준론에는 끼지 못했다. 이런 관계로 신경림과도 만나면 반갑고 차나 술도 한 잔씩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신군부 쿠데타가 강행되었을 때 나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1980년 7월에 서울구치소에 입감되었다.

비상계엄령 중이어서 구치소 교도관은 헌병들로 대치되어 있었다. 서울구치소 9사는 긴급조치 때에도 구속되어 1년을 살았었는데 변소도 없는 가장 열악한 시설이었다. 2층 독방에 갇혀있는데 바로 앞방에 신입이 들어왔다. 헌병이 멀리 간 다음 누가 왔는지 궁금하여 신입생을 가만히 불렀다. 그런데 그가 바로 신경림이었다. 큰 소리로 말하기도 어렵지만 눈짓 발짓 섞어가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그는 내가 감방 안에서 혼자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다. 그가 교도소 경험은 처음인 듯했다. 교도소 용어로 촛자들은 어리벙벙할 때다. 그의 죄상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별것이 아닌 것이 분명해 곧 나가게 될 것이라고 위로 겸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런데 2주쯤 지났을 때 조사를 받는다고 나갔던 신경림은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석방된 것이 분명해 은근히 부럽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도 자유의 몸이 되어 사회에 복귀한 뒤 신경림과 연락이 되어 차도 마시고 식사도 같이했다. 그 뒤 김영삼이 3당 야합했을 때 이를 거부한 이기택, 박찬종 등이 민주당을 만들었다. 때마침 충청도 음성·진천에 보궐선거가 실시되었는데 후보자로 ‘허탁’을 내보냈다.

나는 선거기간 내내 음성에서 허탁을 당선시키는 운동에 전념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경림이 찾아왔다. 자기가 허탁과 충주사범 동창이라고 했다. 허탁후보도 반가워했다. 그들의 우정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그리고 허탁은 별 셋을 달았던 여당후보를 물리치고 당당히 당선했다. 당시 민주당은 앞자리에 ‘꼬마’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경주와 강원도 보궐선거에서 모두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신경림을 회상하다가 엉뚱한 얘기로 흘렀다. 조용히 눈을 감은 신경림선생! 편히 쉬십시오.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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