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때론 진하게 때론 은은하게…작약꽃의 ‘붉은 유혹’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때론 진하게 때론 은은하게…작약꽃의 ‘붉은 유혹’
  • 채영택
  • 승인 2024.05.3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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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꽃 화상(花相) 작약(芍藥)
영천 작약꽃밭에 가다
축제 앞두고 활짝 핀 작약꽃
청명한 햇살 받아 붉게 물들어
분홍·흰작약 섞여 장관 이뤄
작약축제 차별화 필요
전국에 수많은 축제와 비슷
영천만의 브랜딩 만들어야
마을 특징 살린 스토리 필요
사진2
다채로운 색깔의 작약꽃이 피어있는 축제현장에서 북춤 김영석 선생과 놀이마당 강기숙 원장이 작약과 영천을 홍보하고 있다.

붉은 작약 꽃밭으로 가는 길에 하늘은 빛나고 있었다. 붉은 작약은 정원에서는 가끔 볼 수 있지만 오월의 맑고 청명한 햇살을 받고 심장의 붉은 피로 물들이는 축제의 꽃밭을 보면 가슴은 또 얼마나 뛰고 황홀할 것인가.

영천의 홍보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시는 두 분과 함께 차를 타고 영천 화남 화북 방면으로 작약 축제가 열리는 굽이진 국도로 가는 길 내내 개울 옆 버드나무와 아까시나무 숲은 온 몸을 뒤틀면서 바람맞이를 하고 있다. 잎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흔드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노라면 역시 춘풍(春風)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생명을 키우며 춤추게 하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국도 옆으로는 겨우내 속살이 드러나 보이는 작은 산이었지만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산은 갑자기 키가 커져 있다. 바람과 햇빛과 비와 구름의 모자이크가 만들어 내는 무지개빛 풍경에 잠시 도취하고나니 어느새 붉은 작약 꽃밭이 저 멀리 보인다. 쿵쿵거리는 심장을 안고 드디어 꽃밭에 도착했다. 눈이 깜박거리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시야가 열린다. 붉은 작약 사이로 가끔씩 보이는 분홍과 흰작약이 섞여 드넓은 장관을 이룬다.

작약꽃은 함박꽃으로도 불리는데 예로부터 꽃의 재상이라고 했다. 작약과 비슷한 모란도 있다. 목단으로 불리는 모란은 작약과 달리 관목으로, 초화류로 분류되는 작약과는 다르다. 하지만 꽃의 모양은 비슷해서 잘 구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모란은 신라 진평왕때 당나라로부터 전해졌다. 부귀 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은 화왕(花王)이라고 하여 꽃 중의 왕이라는 뜻이다. 그에 비해 작약은 꽃의 재상으로 화상(花相)이라고 부른다.

이날의 작약 꽃밭은 꽃말이 의미하는 수줍음을 뒤로하고 자신의 치부를 온전히 드러내어 온갖 곤충을 유혹하고 있었다. 강렬한 향기는 아니지만 코를 가까이 하면 약간은 진하고 때로는 은은한 향기가 오히려 사람들을 더 유혹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적자색의 홑꽃이 대부분이다. 사이사이에 겹꽃도 보인다. 홑꽃과는 달리 겹꽃은 비밀스럽고 은밀한 곳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그 중에서 분홍색 작약의 비밀을 알기 위해 몽우리진 겹꽃 몇 송이를 얻어 꽃병에 꽂아 놓기로 했다. 붉은 작약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얼마 지나지 않아 활짝 피어났다. 하지만 분홍 작약은 겹겹이 쌓여 있는 꽃잎을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하나 둘 여는데도 암술과 수술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밤에는 꽃잎을 약간 오므리고 낮에는 활짝 열어 자신의 유전자에 새겨진 강렬한 본능에 살다 갈 운명이라 그런지 하나 둘 열리는 꽃잎에 왠지 모르게 진한 슬픔이 배어있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꽃을 보면 웃음을 짓는다. 작약의 붉은 꽃밭에는 꽃잎보다 진한 사람들의 웃음꽃이 더 만발하는데 그래서 화상보다는 화왕이 화왕보다는 소화(笑花-웃음꽃-필자번역)가 제일이 아닐까 싶다.

이날은 특히 영천을 알리는 두 분이 동행했다. 아래 위 하얀 모시 적삼의 북춤 김영석 선생, 그리고 붉은 저고리의 놀이마당 강기숙 원장이 고운 한복을 입고 작약처럼 환한 웃음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꽃밭 한 가운데로 저 멀리 종달새 한 마리가 하늘로 솟구친다. 북춤 김영석 선생과 놀이마당 강기숙 원장은 우리의 전통놀이 문화를 통해 지역을 알리고 자원봉사를 하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이 두 분은 특별히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지역의 랜드마크인 작약 축제가 온 세상에 알려져 이 곳이 작약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장소가 되도록 음악과 춤을 선사하는 묘음보살이 아닐까.

작약꽃을 보다보면 우리의 고뇌가 일시에 사라짐을 느낀다. 꽃은 이렇게 인간의 마음을 일변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작약을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농산물이 아니라 임산물로 분류한다. 뿌리가 약초와 더불어 본래 한약의 재료로 쓰이는 이유 때문이다. 필자가 갔던 축제의 현장은 한국임업진흥원 산림일자리발전소가 지정한 경영체로 산림자원인 작약뿌리와 전초를 활용한 다양한 가공과 판매로 임가 수익을 창출하는 경영체다. 축제는 그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번 두 경영체 대표를 통해 바라보았을 때 지역이 나아가야할 미래를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두 경영체는 전통적 방법으로 작약의 뿌리를 수확하여 건조시킨 것을 시장에 공급하는 형태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매년 열리는 작약 축제는 수익을 위해서라기보다 홍보에 초점을 맞춰 농업기술센터가 주관이 되어 벌이는 행사로 뿌리를 제외한 작약꽃 판매를 통해 지역 홍보도 겸하고 있었다. 특정 농산물이 방문자에게 경관을 제공해 주고 보상을 받는 농촌경관보존직불제라는 것이 있지만 작약꽃을 재배하여 경관을 제공한 댓가로는 홍보에 들어간 비용을 보조금 형태로 받기는 하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금액은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홍보 부스를 운영하는 경영체가 또 다른 농산물(마늘)을 대규모로 재배하고 있어 축제 기간이 마늘 수확철과 중복되어 매년 농가가 축제를 직접 운영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작약 축제는 지역을 알리는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홍보 수단이다. 또한 작약이라는 산림자원에 지역 문화산업으로 연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인이 방문해서 경관 제공 서비스에 대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때 성공한 축제로 기억되고 관계 인구도 늘어나는 법이다. 식품으로 허가난 뿌리를 제외하면 지상부의 줄기와 잎 그리고 꽃은 식용으로는 아직 사용을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 버리는 지상부의 조직을 활용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이번 작약 축제의 홍보 내용을 마을별로 작약꽃의 특징적인 부분을 부각하되 예를 들면 붉은 작약과 분홍과 흰 작약이 주류를 이루는 재배 장소에 대한 설명을 각각 구체적으로 명기를 한다면 방문객들은 기호에 맞게 좀 더 계획적이고 알찬 관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또 꽃을 색깔별로 디자인하여 식재를 해보는 것도 방문객들에게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방법일 수 있다.

전국에는 작약을 가지고 축제를 벌이는 지역이 많다. 무엇보다 차별화가 필요하다. 일본 지역관광추진조직(DMO)의 선구자 야나기하라히데야는 자신의 저서 ‘돈 버는 로컬’에서 차별화는 고급화가 아니라 나만의 브랜딩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축제는 농업기술센터가 주관이 되지만 마을의 관광자원에 대한 풍부한 지식, 경치와 문화재, 그리고 체험 등을 정리하여 마을만의 특징과 관점을 담은 고유의 스토리를 만들고 영상으로 시각화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마을이 변해야 지역도 변한다. 두 젊은 마을 인재를 통해 농촌관광의 밝은 미래가 보는 듯하다.
 

 

임종택<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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