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박정희] (2) 세계 한류 씨앗 뿌린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 제창
[2024 박정희] (2) 세계 한류 씨앗 뿌린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 제창
  • 윤덕우
  • 승인 2024.07.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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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 모범 부락 방문 후 1970년 ‘새마을운동’ 제창
題字: 석경 이원동
題字: 석경 이원동

 

1970년 4월 22일 한해대책 지방장관 회의에서 새마을운동 제창했다.

 

50여 년 전, 조부모와 부모님 세대 모두는 잘 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 왔다. 이 헌신을 통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상위 10대 경제 강국 중 하나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정신문화가 있지만, 이러한 성장의 초석이 된 것은 단연코 새마을운동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해 전개되고 있는 새마을운동은 국제사회에서 세계 빈곤퇴치의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2007년, 서울경제신문-한국리서치 여론조사기관이 ‘정부수립 이후 국가발전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건’ 주제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사건 1위로 새마을운동이 꼽힘)

새마을운동에 대한 정의는 논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다른 모든 기획적 사회변동계획과 마찬가지로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변화과정을 거쳤다.

◇보릿고개와 6·25 전쟁으로 가난의 악순환이 된 농촌 실정

코로나19 라는 미지의 전염병으로 인해 전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을 때, 모 TV 방송국의 트로트 노래 경연프로그램은 국민 심신을 안정시키며 달래줬다. 많은 트로트 노래 중 진성 가수의 ‘보릿고개’ 노래 가사 일부를 불러보자.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갯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보릿고개 시절 어렵고 힘들었던 정서가 잘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트로트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듣는 인기곡이 됐다.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장면이다.

보릿고개 시절은 예로부터 가난의 시대였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남한 국토가 더 황폐해졌던 만큼, 그 시절 우리 조부모와 부모세대는 더더욱이나 힘겹게 느껴졌을 것이다. 1953년 휴전 이후 돌아온 해외 동포와 북한에서 유입된 인구증가로 식량 수요가 급증했다. 농업 생산은 여전히 저조했다. 미국의 무상 긴급 식량 원조와 여분의 농산물 도입 등으로 근근이 고비를 넘겼다. 농촌과 농민의 궁핍한 생활상은 극에 달했다. 식량이 떨어진 가난한 농민들은 여유가 있는 농민으로부터 연리 50%가 넘는 장리쌀(장기간 빌려주거나, 꾸는 쌀을 이르던 말)로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굶어 죽는 고비는 넘겼지만, 수확기가 되어도 생산물로 고리(高利)의 빚을 갚고 나면 농민들은 다시 고리채를 빌려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1953년 휴전 후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는 전후 복구에 총력을 기울인다. 1953년부터 1960년까지 부흥 기간에 ‘미곡(쌀을 비롯한 갖가지 곡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증산 5개년 계획’, ‘축산 부흥 5개년 계획’, ‘민유림 조성 및 사방사업 10개년’, 4H클럽운동 등을 실시해 6·25 전쟁으로 허물어진 국토와 산업의 부흥을 위해 주력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시장 경제제도 확립을 위한 국가 발전 전략의 기초는 다졌지만, 당장의 가시적 성과는 도래하기 전이었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로 인도 다음으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 2022년에는 3만3천달러 지난 60년간 400배가 증가(1961년 북한은 1인당 국민소득 320달러)했다.
 

다시-1963년9월재건국민운동
1963년 9월 재건국민운동에서 각 시,도,군 직원들을 집견 중인 박정희 대통령(사진 e영상역사관).

재건국민운동 등 초기 정책 큰 성과 없어
농어민 소득증대 사업 성공 농민들 자각
1967년 농공병진 정책 효과에 자신감

◇1960년대 초중반 고리사채 정리와 재건국민운동

1961년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한다”라는 공약을 내세웠다. 혁명 초기 농촌 및 농민대책으로 농어촌 고리사채(비싼 이자를 주고 얻은 빚) 정리를 단행하고, 재건국민운동을 전개했다.

농어촌개발공사도 설립했다. 농업의 기반시설 정비를 위한 투자를 시작하고, 농촌 대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주곡 중심 농업에서 상업 영농으로 전환을 유도했다.

초기 박정희 정부의 농업 경제 정책은 치밀하지 못한 정책과 의욕만 앞세웠기 때문에 큰 성과 없이 끝났다.

1967년부터 박정희 정부는 농공병진(농업진흥과 공업화를 동시에 진행)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앞서가는 농어민의 열성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를 농민이 자각하기 시작했다.

우리 농촌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사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부 또한 자신감을 느끼게 되는 계기를 맞는다.

다시-청도군신도1리
1970년 9월 대통령 비서실에서 발행한 국토보존에 수록된 청도 신도1리 마을 모습.

부산행 열차서 지붕 말끔한 마을 발견
마을길·제방 단장한 청도 주민에 감동
주민 자발적 협동 ‘살기 좋은 마을’ 조성

◇잠자는 농촌에서 새마을운동 태동

정부의 이러한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생긴다.

1969년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경남 수해 지역을 직접 둘러보기 위해 전용 열차를 타고 부산방면으로 가면서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1리 마을주민들이 마을 안길과 제방을 복구하는 모습을 차창 너머로 보고 전용 열차를 신거역에 정차시키고, 신도1리 마을을 방문한 것이다. 마을을 둘러본 박정희 대통령은 마을 뒷산에는 산림이 우거지고, 집들은 지붕과 담장이 말끔하게 잘 단장돼있는 경위를 마을주민에게 물었다.

마을주민들은 “기왕 마을을 복구할 바에야 좀 더 잘 가꾸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보자고 마을 총회에서 결의해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해 공사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박정희 대통령은 크게 감동했다. 자발적이고 부지런하며 협동심이 강한 신도1리 마을주민들을 모범 삼아 농민들에게 근면, 자조, 협동 정신을 일깨우면 잘 살 수 있는 농촌으로 개발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 제창 이전에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중앙행정기관 김보현 체신부장관(이후 농림부 장관 역임), 박숙현 국회의원 등 일행이 청도읍 신도1리 마을에 방문해 마을을 둘러 본 후, 신도1리 마을에 금일봉과 공동전화 1대를 기증했고, 마을주민이 공동으로 길러 소득증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양(羊)을 전달했다.

1971년 2월 5일 경향신문에서 보도한 신문 기사 내용 따르면 “1971년 2월 4일 광주 지방 관서 순시를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경북 청도역 남쪽 신도(新道) 새마을 모범 부락을 지날 때 열차를 서행시키라고 지시하며, “이 마을이 잘살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김보현 농림장관(재임 기간: 1970년 12월 21일~1973년 8월 7일)에게 물었다. 김 장관은 “밤과 감 단지를 만들어 생산된 감을 팔아 이익금을 금고로 해 부촌이 되게 했다”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청도읍 신도1리의 울창한 산림과 개량된 슬레이트 지붕, 잘 쌓인 둑방을 보면서 ‘저것이 새마을 가꾸기의 본보기’라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라는 일화가 있다.

새마을운동은 지역사회 주민의 자발적이며 자조적인 협동 노력에 의해 주민들 스스로가 생활태도와 정신자세를 혁신하고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환경을 개발·발전·개선해나가는 지역사회개발운동이자 사회혁신운동이다.

근면·자조·협동 통해 잘 사는 농촌으로
농촌개혁 운동 ‘새마을운동’ 전국 확산   
세계문화유산기록 세계 도처 ‘진행형’

박정희대통령연설문집-새마을운동
1978년 대통령비서실에서 발행한 박정희 대통령 연설문집.

 

◇새마을운동 제창

박정희 대통령은 청도군 청도읍 신도1리를 방문한 이후 농촌과 관련된 정부기관 및 연구소, 전문가에게 우리 정부 정책 방향과 외국의 농촌개혁 성공사례를 철저하게 연구하게 했다. 검증을 바탕으로 1970년 4월 22일 한해대책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농촌개혁 운동을 제창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근면, 자조, 협동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새마을운동’을 소개한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마을은 우리 손으로 가꾸어 나간다는 자조·자립정신을 불러일으켜 땀 흘려 일한다면 모든 마을이 멀지 않아 잘 살고 아담한 마을로 그 모습이 바꾸어 지리라고 확신한다.

... 운동을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고 해도 좋고 알뜰한 마을 만들기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 모범적인 부락도 여러 군데 있는데 특히, 경산, 청도 같은 데를 한번 보십시오.

같은 농촌인데 왜 이렇게 달라지겠습니까?

이때부터 대한민국 근대화의 초석이 된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새마을 운동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기록이다. 아직도 세계 도처에서 새마을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글=박정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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