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 속 햇살 같은 순간들…영화 '퍼펙트 데이즈'
반복되는 일상 속 햇살 같은 순간들…영화 '퍼펙트 데이즈'
  • 김민주
  • 승인 2024.07.0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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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부야 청소부 히라야마
극적인 사건 없는 조용한 일상
아기 인사·나뭇가지 그림자…
사소한 변주들 섬세하게 포착
올드팝 덕에 도시 풍경 돋보여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새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푸르스름한 새벽녘이 밝아온다.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부지런한 옆집 할머니가 집 앞을 청소하는 빗자루 소리에 잠에서 깬다. 이부자리를 정리한 뒤 가꾸는 식물에 정성스레 물을 준 후, 가볍게 단장하고는 외출 준비를 마친다.

현관 앞 작은 서랍장 위에 놓인 차 키, 오래된 검정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 동전을 차례대로 챙긴 뒤 철문을 열고 나온다. 챙겨 나온 동전으로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시며 하늘을 잠깐 보더니 금새 작은 파란색 봉고차에 올라탄다. 라디오나 mp3 대신 차 안에 잔뜩 쌓아둔 카세트테이프 중 하나를 골라 재생한다. 그가 청년 시절 즐겨 들었을 팝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는 창밖 풍경을 응시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음악을 들으며 출근한다. 어느새 일터에 도착했다. 그는 차 안에서 손수 만든 화장실 청소 장비를 들고 근무지로 향한다.

점심시간에는 번잡한 신도시에서 살짝 벗어나 조용한 공원 산책로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다. 고개를 들어 울창한 나무를 보던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품에서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꺼내어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반짝이는 햇빛을 한 컷 찍고는 식사를 이어간다.

퇴근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을 가고, 단골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한 잔 마시고, 밤에는 책을 읽다 잠든다. 내일도 모레도 그의 하루는 쳇바퀴를 도는 듯 일정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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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3일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 구(區)의 17개 공중 화장실을 진정한 공공을 위한 시설물로 실현하고자 기획된 ‘더 도쿄 토일렛’(THE TOKYO TOILET)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영화이다. 안도 다다오, 반 시게루 등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화장실을 개조한 것을 기념하고자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의 감독 빔 벤더스에게 단편 영화 제작을 의뢰했다.

하지만 감독은 지금의 도쿄를 찍고 싶다는 마음으로 장편 극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역 제안하며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탄생했다. 3주 동안의 시나리오 작업, 17일간의 촬영이라는 짧은 기간 내 완성했지만 영화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빛나는 도쿄의 풍경을 담아냈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영화 내내 잔잔하게 깔리는 올드팝들이다.

전작에서 탁월한 영화음악 선곡으로 화제가 됐던 감독은 이번에도 고전 명곡이 된 팝 음악을 영화 곳곳에 배치했다.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Perfect Day)’, 니나 시몬의 ‘필링 굿(Feeling Good)’,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 밴 모리슨의 ‘브라운 아이드 걸(Brown Eyed Girl)’ 등이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음악이 도쿄를 더욱 빛내준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매일 성실히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며 하루를 보낸다. 주변에는 그의 일상을 변화시킬 인물도 딱히 없다.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대응한다. 어쩌면 영화를 보는 사람에 따라 그의 하루에 다소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그 순간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실 그는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다른 행복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에노 공원 화장실에서 방문객이 숨겨둔 미로 찾기 종이를 함께 풀어가는 시간, 화장실에 갇힌 아이를 구해주고 받은 고사리 손 인사,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나뭇가지 그림자의 모양을 발견하는 찰나의 순간에 히라야마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이란 우연히 마주하는 순간들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주는 다정한 위로는 작지만 힘들었던 마음을 따뜻하게 치유해준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원테이크로 촬영한 4분여간의 엔딩 장면은 이 영화의 완벽한 완성을 보여준다. 여느 날처럼 아라카와 강을 따라 작은 승합차를 운전하며 일터로 향하는 히라야마가 니나 시몬의 ‘필링 굿’을 들으며 웃는 듯 우는 듯하는 미묘한 표정 변화에서 관객들의 마음은 감동으로 뒤덮힌다. 오로지 그의 표정으로만 만들어낸 엔딩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어 관객들이 절로 눈물이 터지게 된다.

‘일본의 안성기’로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 야쿠쇼 코지는 '퍼펙트 데이즈'로 지난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야기라 유야 이후 19년만에 두 번째로 일본 배우가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한 영화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추락의 해부’, ‘존 오브 인터레스트’, ‘괴물’ 등 쟁쟁한 작품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황금종려상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며 훌륭한 영상미를 인정받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영화의 말미에 일본어 ‘코모레비(木漏れ日)’라는 단어의 뜻을 알려준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말인데 코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치는 한순간, 한순간이 유일하고 소중하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삶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놓치지 말라는 감독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는 순간이다.

사실 히라야마가 점심시간마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매일의 다름을 담아낸 사진 한 컷 또한 그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코모레비'인 것이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 어떤 처지에 있든,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에 감사하고, 건강한 지금에 감사하며, 나날들을 성실하고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그 나날들이 퍼펙트 데이즈일 것이다. 다음은 다음이고, 오늘은 오늘이다. 완벽한 날들(prefect days)은 바로 오늘!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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