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 아웃] 히라야마의 롱테이크와 180도 규칙 위반
[백정우의 줌인 아웃] 히라야마의 롱테이크와 180도 규칙 위반
  • 백정우
  • 승인 2024.07.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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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데이즈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엔딩. 카메라는 히라야마를 정면으로 포착한다. 다양한 감정을 얼굴로 표현하는 야쿠쇼 코지의 일인극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카메라는 고정이다. 롱테이크이다.

롱테이크란 쇼트를 나누지 않는 것이다. 쇼트를 분절하면 심리적 시간의 지속이 무너진다. 시간의 지속이 필연적일 때 이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즉 롱테이크 자체가 아니라 롱테이크로 찍을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있다. 그러므로 질문은 빔 벤더스는 마지막 신을 왜 정면에서 찍었을까. 혹은 왜 롱테이크로 찍었을까, 로 시작해야 한다.

히라야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차를 타고 동트는 도쿄 시내를 달린다. 그는 차 안에서 운전 중이다.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버튼을 누른다. 그의 일상이 그래왔다. 카메라가 히라야마의 정면을 비춘다.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어디에서 쇼트를 나눌 수 있을까? 만약 쇼트가 몇 개로 나눠졌다고 해도 히라야마의 표정연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관객이 영화 속 인물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는 180도 규칙을 위반한 정면 쇼트라는 게 문제였을 뿐.

영화는 수없이 안 되는 것들의 규칙들이 넘쳐나는 부조리한 세계이다. 180도 상상선을 위반하여 정면으로 관객을 바라보면 아무리 예쁘고 잘생긴 배우라도 관객은 낯설고 불편하다. 이때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묻지 말기로 하자. 180도 규칙이 위반되는 순간 관객은 주체와 객체를 오간다. 객체였던 히라야마는 주체가 되어 관객을 응시한다. 그러니까 엔딩의 정면 쇼트는 한 인간의 희로애락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듯하지만, 실은 아니 어쩌면 당신을 바라보면서 그 확고한 루틴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루틴에서 도망치려 발버둥치거나, 루틴에 눌려 허우적댈 당신의 오늘을 안타까워하는 표정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응시는 그런 것이다. 봉합을 무력화시키고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경계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만약 히라야마의 정면 쇼트에 기분이 묘했다면 180도 규칙이 무너진 자리에, 히라야마의 좌석에 내가 앉았어도 무방하다고 여긴 탓일 터다. 심지어 롱테이크였다. 그래서 빔 벤더스가 하고 싶었던 말. 어쩌면 어제와 같은 오늘보다 더 완벽한 날은 없다는 그 사소함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오래전에 시효를 다한 180도 규칙 위반을 꺼내들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이런 180도 상상선을 위반하는 쇼트는 영화에서 종종 쓰는 기법이지만 여전히 기피하는(화자를 인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촬영방식이다. 설사 사용해도 잠깐이다. 그런데 ‘퍼펙트 데이즈’에서 야쿠쇼 코지는 관객을 오랫동안 응시한다.

빔 벤더스는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파리, 텍사스’의 오프닝에서 초췌하고 퀭한 남자를 멀리서부터 롱테이크로 잡아당겨 스크린 앞으로 데려다놓은 전력이 있다.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을 롱테이크로 찍은 것은 히라야마의 삶에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복적 일상의 누적. 사건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굳이 분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히라야마는 이 세상과 유리된 사람처럼 홀로 독자적 시간을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영화에서 일본사회는 스크린 밖에 있다. 그렇다고 해도 세상사는 흘러가고 일상은 되풀이 된다. 새벽을 여는 소리처럼, 한낮의 일렁이는 햇살처럼, 꿈속의 그림자처럼.

백정우·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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