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잘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헤르만 헤세의 조언
[화요칼럼] ‘잘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헤르만 헤세의 조언
  • 승인 2024.07.2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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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인생은 왕복차표를 발행하지 않는다

일단,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 R. 롤랑



에피쿠로스가 ‘노년은 인생의 절정일 수 있다’ 하였듯, 100세 철학자 김형석은 “살아보니 60~90세가 열매 맺는 가장 소중”한 때라고 말한다. 즉, 젊어서부터 노년을 준비하고 지속적 성장의 삶을 도모하며 인생을 경영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젊은이보다 더 지혜롭고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고로 아름다운 시절을 노년에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규정한 노년의 시작은 65세이다. 그 나이를 넘어선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난 아직 늙지 않았어’라며 세월을 부정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아직 젊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찾고, 새로운 사업을 도모하고, 새로운 문화 배우기에 도전장을 내고, 두려움 없이 새롭게 시작하기도 한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박사도 105세인 올해의 꿈이 시집 한 권을 엮어낸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사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삶의 열정과 관심, 호기심,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 현대인에게는 ‘현대의학’이라는 조력자가 있다. 인간의 생명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하고, 죽음을 뒤로 미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발전해 나갈 것을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는 평균 수명을 염두에 둔다면, 그 기나긴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를 고뇌하게 된다. 도대체 잘 늙어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고인이 된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에게서 조언을 구한다. 이 현명한 노시인이 전하고 싶은 노년에 대한 생각은 참으로 느긋하다. 노년은 노년만의 그 나름의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으니 노년을 노년답게 체험하라고 충고한다.

헤세는 노년기의 충만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진정으로 만족스럽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노년의 과제를 이해하고, 노년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노년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먼저 ‘내가 노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의 직시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건넨다.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

‘노인이 젊어 보이려고만 하면 노년은 한낱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는 대목이 오래 마음을 붙잡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짧은 산책길 정도로 느껴졌던 것이 멀고 힘겨운 길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아예 길을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동안 그렇게 좋아했던 음식들도 포기해야만 한다.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쾌락은 더욱 드물게 나타나고, 그런 것들을 위해 이제는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질병과 결함, 흐릿해지는 사고력, 굳어가는 육신, 많은 고통, 더구나 그런 모든 것들을 길고, 지루한 밤에 겪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숨길 수 없는 씁쓸한 현실이다.’

헤세의 조언처럼 청년기와 노년기의 과제가 판이하게 다르거나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소박하고 느린 삶, 인내심과 포용력 있는 삶, 삶과 죽음을 사색하는 삶, 행동과 관조가 있는 삶, 지기들과 시간을 나누고 예술을 즐기는 이런 삶은 젊은 시절에도 추구할 수 있고, 노년에도 추구하고 그러해야할 과제이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노년이 인생의 절정일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한’ 삶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관조하고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대체로 청춘들은 욕망에 더욱 흔들리고, 관조보다는 행동에 더 무게를 싣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행동과 삶이 나이가 든 노년에까지 이어진다면, 과도한 욕망에 이끌려 노년기의 관조와 의미를 잃어버리거나 좌초하게 될 것이다.

‘노년은 인생의 절정일 수는 있다’ ‘살아오면서 열매 맺는 가장 소중한 때일 수도 있다’는 표의에만 매몰되지는 말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추락하는 노년에 대한 경계의 조언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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