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정지의 힘
[의료칼럼] 정지의 힘
  • 승인 2024.08.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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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실습·수련 열심히 안해도
얻을 수 있게 된 의사 타이틀
‘필수의료=자살골’ 인식 심어
시설·교수 부족한데 증원까지
정부는 지금 ‘멈추는 힘’ 필요
임연수 대구시의사회 정보통신이사, 임연수소아청소년과 원장
임연수 대구시의사회 정보통신이사, 임연수소아청소년과 원장
앞으로 아프지 않기로 했다. 아니, 아프면 안된다. 전공의들은 수련을 제대로 안 받아도 전문의를 딸 수 있게 해주고, 의과대학생은 제대로 수업을 받지 않아도 졸업을 할 수 있고 실습도 그냥 스윽 보기만 하면 다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그냥 의대만 들어가면 의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런 의사에게 아픈 내 몸을 맡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아프지 않고 살기로 하였다.

6개월 전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의대 증원 2,000명 발표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우려를 넘어 공포감으로 바뀌었다. 전문가의 시선이 아니라 일반인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작금의 보건복지부와 정부의 태도는 그것이 옳든 그르든 우격다짐을 해서라도 발표를 했으니 따르라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필수 의료를 살리고 응급실 뺑뺑이를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겠다지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 특히 필수 의료분야 전공의들은 아예 이번 기회에 자기 과를 버리고 인기과로 전향해버리겠다 하고 예전의 애정이나 열정은 잃어버렸다. 필수 의료를 택하는 건 자살골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 주었다. 특히 흉부외과 전공의 숫자가 2024년 2월, 107명이었지만 현재 남은 전공의는 12명, 그중 절반은 졸업 년 차라서 2025년 전공의는 6명이 남게 된다. 그나마 긍지를 가지고 남이 싫다 해도 남아서 해보겠다던 자존심을 뭉게고, 협박과 회유만 일삼는데 누가 그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몇 날 밤을 새워도 내가 살린 미숙아가 건강하게 퇴원할 때의 그 뿌듯함, 아기들이 울고불고 악을 쓰고 침을 뱉어도 회복되고 나서 방실거릴 때의 그 기쁨과 긍지 자존감으로 버텨온 이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구겨진 자존감과 개 끌려가듯 하는 일에 능률도 무엇도 없을 것은 자명하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증원된 신입생 2,000명에 더해 올해 유급한 학생들까지 그 많은 학생들을 가르칠 시설도 교수도 없는데 무조건 된다고 우기는 정부. 신생아 수가 자꾸 주니까 젊은이들을 강제로 결혼시켜 집도 교육비도 없으면 그때 가서 지원해주겠다면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없다. 사회적 제반 상황을 개선하고 당장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야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지 않겠는가. 말로만 괜찮다는 얘기를 들을까?

전공의 근무시간을 줄여 줄 것이니 돌아오라는 데 이건 더 말이 안된다. 근무시간을 늘려서라도 제대로 배울 건 배우고 익힐 건 익혀야 한 사람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다. 사탕발림만 한다고 될 일은 없다. 특히나 독이 든 사탕이라면. 의사만 만들어내고 전문의 숫자만 늘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좋은 정책도 있고 결과적으로 나쁜 정책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돌아보고 생각해보아야 하고 그 정책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저항이 심하면 다시 가다듬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돌아보고 멈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나 처음에는 잘못을 할 수 있다. 멈추는 힘이 필요한 때이다. 이쯤에 생각나는 시가 하나 있다.

백무산 시인의 “정지의 힘”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일,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생략)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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