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칼럼] 간첩법 개정 시급하다
[윤덕우 칼럼] 간첩법 개정 시급하다
  • 승인 2024.08.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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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우 주필 겸 편집국장
간첩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주요 범죄로, 역사적으로도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다. 현대의 복잡한 국제 정세와 첨단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간첩 행위는 더욱 은밀하고 다양해졌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행 간첩 관련법(형법 98조·군형법 13조·국가보안법 4조)은 이런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기밀 유출 사건은 국가안보의 심각한 위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정보사 요원들의 신상 정보가 북한에 유출되면서 우리 군의 대북 첩보 능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지만 관련법 미비로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이는 현행 간첩법의 한계와 개정의 필요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현재 대한민국의 간첩법은 1950~1960년대 냉전 시기에 제정된 것으로, 적국(북한)과 연계된 경우에만 간첩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냉전 시대의 이념적 대립과 군사적 긴장 상황을 반영한 법이지만, 현대의 다변화된 국제 관계와 정보전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북한 이외의 국가나 단체와 연계된 간첩 행위는 간첩죄로 처벌되지 않으며,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2018년 발생한 정보사 공작팀장의 군사 기밀 유출 사건도 군형법상 간첩 혐의를 적용할 수 없어 징역 4년이라는 가벼운 처벌에 그쳤다.

최근의 정보사 기밀 유출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정보사 군무원 A씨는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블랙 요원들의 신상 정보를 유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간첩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는 A씨가 기밀을 넘긴 대상이 중국 국적의 조선족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군형법상 간첩죄는 북한과의 연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다른 국가와 연계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닌, 체계적인 간첩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다. 군무원 A씨가 상당 기간 관련 정보를 수집해온 정황이 있으며, 이는 단순한 해킹 사고가 아니라 간첩 행위로 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이를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어, 형량이 낮은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기소된 상황이다. 이는 간첩 행위의 억제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이미 간첩 행위에 대한 법적 범위를 확대하여, 국가 기밀 유출을 보다 엄격히 처벌하고 있다. 영국은 2023년에 국가안보법을 제정하여 ‘적국’ 개념을 없애고, 모든 외국에 대한 기밀 유출을 처벌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미국 역시 간첩법(Espionage Act)을 통해 국가 기밀 유출 행위를 광범위하게 처벌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등 우방국에 대한 기밀 유출도 엄격히 다루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사례는 한국이 간첩법을 개정할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또 다른 문제는 정보사 내부 보안 관리의 부실이다. 정보사 요원들의 신상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것은 내부 보안 프로토콜의 허점이 원인이다. 정보사 내부망에서만 접근 가능한 정보가 A씨의 개인 노트북에 저장된 것 자체가 규정 위반이며, 이는 내부 보안 관리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정보사 내부의 조력자 존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정보사 요원들의 신원이 노출되면 이들의 재파견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며, 이는 정보망 손실로 이어진다. 정보사 요원들이 재파견이 불가능해지면, 수년간 공들여 만든 정보망이 와해될 위험이 있다.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타격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보사 내부 보안 프로토콜을 강화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내부 조력자 존재 여부를 밝혀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를 지키고, 첩보 활동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현실적인 위협 요소를 반영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간첩죄의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고,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협하는 모든 행위’로 규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법적 대응력을 강화할 수 있다. 특히, 현행법의 사문화된 조항을 수정하여 간첩 행위의 범위를 넓히고, 기밀 유출의 형량을 높이는 등 현대 상황에 맞게 법을 고쳐야 한다. 문재인 정부때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마저 박탈했다. 최근 여야는 21대 국회 때 간첩 관련 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한 것을 놓고 상대방을 탓하고 있다. 지난 제21대 국회에서만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처리되지 못했다. 간첩행위 처벌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적극적인 간첩법 개정 의지를 보여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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