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960년대 안에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게 쉽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1962년 9월,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한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 일부다. 1950년 대 말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고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만들어냈다. 확실히 미국은 우주에서 소련에 한 발 뒤처졌지만,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는 달에 착륙한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아폴로의 달 착륙과 관련한 음모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가장 유명한 건 미국 정부가 달 착륙을 속였다는 것이고, 따라 붙는 이야기는 할리우드 특수효과 팀이 착륙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심지어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출한 스탠리 큐브릭이 이 촬영을 맡았다는 그럴싸한 주장까지 등장했다.
1960년대 말 우주전쟁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미국정부의 안간힘을 음모론과 엮어 풀어가는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달 착륙 음모론을 정면으로 수용하는 듯 비틀어버리는 흥미로운 로맨틱 코미디다. 영화는 아폴로 개발팀의 노력을 씨줄로 하고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기 위한(실패를 대비한) 국가기관의 대국민 사기극에 가담한 천부적 마케터 니콜의 이야기를 날줄로 진행된다.
감독은 영리하게도 세트를 짓고 달 착륙 장면을 연출하고 촬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변수를 등장시켜 세간의 음모론을 단박에 박살낸다. 그러니까 60년대의 컴퓨터 기술로 달 착륙이 가능하겠냐는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역으로 받아치면서, 그 시대 기술로는 온 국민을 속일 실시간 영상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심지어 세트를 짓고 촬영을 지휘하는 감독 역시 스탠리 큐브릭의 대타로 설정함으로써 음모론을 쥐락펴락한다. 복잡한 과거와 수많은 이름을 가진 생계형 마케터 니콜은 새 삶을 얻고, 수석개발자 콜은 달 착륙을 성공시키며, 영화는 음모론을 보란 듯이 비웃으며 세 마리 토끼를 모두 포획한다.
내가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말자하면 음모론의 실체와 배후를 뒤집는 서사나 장엄한 달 착륙 영상이 아니라, 오직 할리우드에서만 제작 가능한, 즉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달 착륙에 성공한, 우주 도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만들 수 있는 영화라는 점 때문이다. 영화 시작부터 실패의 도전사를 거듭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일 터. 달을 향한 염원은 그렇게 현실이 되고 있었다. 인류의 소망과 니콜의 사적 열망이(과거를 지우고 새 삶을 살고 싶은) 결합되는 순간, 꿈은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은 정당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그 시절 달에 가겠다는 꿈을 가진 미국 국민은 얼마나 설렜을까. 아폴로 11호 발사를 지켜보던 1억 명의 사람들과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보면서 웅장해진 그들의 가슴을 생각한다. 케네디의 연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케네디 선언으로부터 두 세대가 흐른 올해 2월, 민간탐사선 오디세우스 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60년 전 케네디는 미국인에게 인류가 달에 갈 것이라는 꿈을 심어주었다. 이런 낭만 하나 쯤 가진 세상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이 나라 지도자는 무슨 꿈을 꾸고 어떤 소망을 국민 가슴에 심어주고 있는지, 그들에게 꿈이 있기나 한지, 우리가 물을 차례다.
백정우·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