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예단하지 말자. 너무 빠른 판단으로 인해 미처 꽃 피워보지도 못하고 아궁이 속으로 던져진 어린나무가 많다. 기다려주고, 믿어 줘야 한다.
어떤 일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미리 판단하는 것을 예단(豫斷)이라 한다. 예단이 위험한 이유는 몇 가지 단서만으로 미리 앞질러 뒤에 일어날 일을 단정 짓기 때문이다. 경찰이 범인을 잡을 때, 경찰의 촉만으로 단번에 범인을 단정할 수도 있고, 또 범인을 특정 지어,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는 효과도 있긴 하다.하지만 그건 정말 예외고, 예단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법원에서도 3심제를 두는 이유도 속단하지 말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자는 뜻에서다. 대법원까지 판결이 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면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렇게 긴 시간을 긴 시간 동안 재판을 하며 최종 판단을 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만에 하나라도 죄 없는 사람이 벌을 받는 그런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판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기반하여 재판을 하는 것이다.
얼마 전 강의가 없는 날, 가깝게 지내는 지인의 요청으로 샤인머스캣 포도밭에 일을 도와주러 갔었다.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 포도가 잘 자라고 있었다. 캠벨이라 불리는 흑 포도나, 머루 포도는 봉지를 씌우지 않고 키우는데 샤인머스캣은 모두 봉지를 씌워서 키운다. 한참 일을 하다가 보니 거의 모든 포도가 봉지에 씌워져 있었는데 간혹, 봉지가 씌워져 있지 않은 포도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알도 굵고, 잘 익어서 보기에도 좋은 아주 큼지막한 포도송이였다. 같은 포도인데 왜 저기 몇 송이는 봉지를 씌우지 않았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밭주인에게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그거요. 봉지를 씌울 당시 알이 작고, 또한 이게 좋은 상품이 되지 않겠다 싶은 것은 처음부터 아예 봉지를 씌우지 않았습니다. 볼품없고 형편없는 포도송이라서 그건 그냥 포기한다, 버린다 생각하고 봉지를 씌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그 포도들이 저렇게 알이 굵어지고 저렇게 잘 자랐네요. 허허”.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봉지를 안 씌운 포도송이가, 마치 어른들에게 버림받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 같았다. 한참 성장하고, 더 자랄 기회가 많은 우리 청소년들에 대해서 너무 빨리 판단해서, 안 될 것이다고 미리 마음먹고 대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며 갓 자란 떡잎 몇 장으로 나무 전체를 앞질러 평가 내린 적도 있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어떤 사람의 행동 하나 만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실수도 했었고, 열심히 달려가던 길을 포기하고, 되돌아 나온 경우도 있었다.
너무 빠른 판단, 섣부른 예단은 좋지 않다, 그래서 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도 사회복지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판단 유보의 법칙’이다. 지금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판단을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뤄보는 것이다, 영화 중에서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영화는 끝나기 전까지는 누가 범인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 볼 때는 저 사람이 범인이구나 하고 보고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 주인공을 돕는 사람이었고, 반대로 처음에는 주인공을 돕는 것 같았던 사람이 마지막에 범인인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모두 예단하지 말고, 섣부른 판단 하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계도 그런 것 같다. 저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될지라도, 너무 많은 비밀을 그들에게 공유해서는 안 된다. 만에 하나 나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고 나의 문을 너무 활짝 열어두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또 반대로 너무나 괜찮은 사람인데 너무 일찍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경우도 있다. 알고 보면 참으로 좋은 사람인데 ‘알고 볼 시간’을 주지 않으니 안타깝다. 모두 예단하기 때문이다.
기다려주는 연습을 해보자. 좋은 사람 같았는데 아닌 사람도 있지만, 별로인 것 같았는데 정말 괜찮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사람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지 않던가.
어떤 일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미리 판단하는 것을 예단(豫斷)이라 한다. 예단이 위험한 이유는 몇 가지 단서만으로 미리 앞질러 뒤에 일어날 일을 단정 짓기 때문이다. 경찰이 범인을 잡을 때, 경찰의 촉만으로 단번에 범인을 단정할 수도 있고, 또 범인을 특정 지어,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는 효과도 있긴 하다.하지만 그건 정말 예외고, 예단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법원에서도 3심제를 두는 이유도 속단하지 말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자는 뜻에서다. 대법원까지 판결이 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면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렇게 긴 시간을 긴 시간 동안 재판을 하며 최종 판단을 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만에 하나라도 죄 없는 사람이 벌을 받는 그런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판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기반하여 재판을 하는 것이다.
얼마 전 강의가 없는 날, 가깝게 지내는 지인의 요청으로 샤인머스캣 포도밭에 일을 도와주러 갔었다.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 포도가 잘 자라고 있었다. 캠벨이라 불리는 흑 포도나, 머루 포도는 봉지를 씌우지 않고 키우는데 샤인머스캣은 모두 봉지를 씌워서 키운다. 한참 일을 하다가 보니 거의 모든 포도가 봉지에 씌워져 있었는데 간혹, 봉지가 씌워져 있지 않은 포도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알도 굵고, 잘 익어서 보기에도 좋은 아주 큼지막한 포도송이였다. 같은 포도인데 왜 저기 몇 송이는 봉지를 씌우지 않았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밭주인에게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그거요. 봉지를 씌울 당시 알이 작고, 또한 이게 좋은 상품이 되지 않겠다 싶은 것은 처음부터 아예 봉지를 씌우지 않았습니다. 볼품없고 형편없는 포도송이라서 그건 그냥 포기한다, 버린다 생각하고 봉지를 씌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그 포도들이 저렇게 알이 굵어지고 저렇게 잘 자랐네요. 허허”.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봉지를 안 씌운 포도송이가, 마치 어른들에게 버림받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 같았다. 한참 성장하고, 더 자랄 기회가 많은 우리 청소년들에 대해서 너무 빨리 판단해서, 안 될 것이다고 미리 마음먹고 대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며 갓 자란 떡잎 몇 장으로 나무 전체를 앞질러 평가 내린 적도 있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어떤 사람의 행동 하나 만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실수도 했었고, 열심히 달려가던 길을 포기하고, 되돌아 나온 경우도 있었다.
너무 빠른 판단, 섣부른 예단은 좋지 않다, 그래서 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도 사회복지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판단 유보의 법칙’이다. 지금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판단을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뤄보는 것이다, 영화 중에서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영화는 끝나기 전까지는 누가 범인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 볼 때는 저 사람이 범인이구나 하고 보고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 주인공을 돕는 사람이었고, 반대로 처음에는 주인공을 돕는 것 같았던 사람이 마지막에 범인인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모두 예단하지 말고, 섣부른 판단 하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계도 그런 것 같다. 저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될지라도, 너무 많은 비밀을 그들에게 공유해서는 안 된다. 만에 하나 나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고 나의 문을 너무 활짝 열어두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또 반대로 너무나 괜찮은 사람인데 너무 일찍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경우도 있다. 알고 보면 참으로 좋은 사람인데 ‘알고 볼 시간’을 주지 않으니 안타깝다. 모두 예단하기 때문이다.
기다려주는 연습을 해보자. 좋은 사람 같았는데 아닌 사람도 있지만, 별로인 것 같았는데 정말 괜찮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사람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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