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중심 시대의 현재와 미래] <中> 초개인화 시대 자리 잡은 1천만 펫팸족, 세상에서 날 가장 잘 이해해주는 내가 선택한 나의 가족
[개인중심 시대의 현재와 미래] <中> 초개인화 시대 자리 잡은 1천만 펫팸족, 세상에서 날 가장 잘 이해해주는 내가 선택한 나의 가족
  • 류예지
  • 승인 2024.09.0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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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만 피곤해
대인관계 피로도 높은 현대사회
동물과 감정적 유대로 안정 찾아
전문가 “일종의 회피경향” 지적
유모차 뛰어넘은 ‘개모차’
펫코노미, 신성장 산업 부각
유아용품 시장 매출 넘어서
명품업계도 강아지 용품 출시
달서반려견순찰대2
대구성서경찰서 ‘달서반려견순찰대’ 소속 커플인 ‘하루(왼쪽)’ 대원과 ‘크림’ 대원. 왼쪽부터 보호자 금영희(58)씨와 최은경(43)씨.

현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한국의 뿌리 정신인 ‘공동체 의식’은 희미해지고 ‘개인주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결혼과 출산 시기는 점차 뒤로 미뤄지고 아예 포기하고 ‘혼자 사는 삶’을 택하는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가치관과 정서와 함께 변한 생활 방식과 가족 구도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탄생시키고 있다. 같은 언어를 쓰지도, 같은 음식을 먹지도, 같은 성장 주기를 걷지도 않지만 누구보다도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내가 선택한 나의 가족 ‘반려동물’이다.

디지털 문화의 성장과 사람 간 교류의 감소로 경직된 현대사회가 오히려 인간과 동물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변화상을 불러왔다. 개인주의를 넘어선 ‘초개인주의’가 도래한 후 반려동물의 울음소리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넘어서고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펫팸족’(Pet+Family)도 1천만 가구를 넘으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기반도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외롭지만 피곤해”…출산율 줄고 반려가구 늘었다

급속한 현대화와 개인주의가 확산하면서 한국의 ‘인구 절벽’ 위기는 눈앞으로 다가왔다. 수도권 쏠림 현상, 고물가, 극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뒤로 미루기 시작했다. 개인의 성취가 더 큰 과제로 부상하면서 ‘비혼’, ‘딩크’(무자녀 맞벌이 가정) 등 독립적인 생활을 선택하는 빈도도 늘고 있다.

통계청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 6월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1만8천242명으로 역대 6월 통계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1명으로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가구 수는 1천만을 넘어섰다. KB경영연구소의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말 기준 한국 반려가구는 약 552만 가구로 2020년에 비해 2.8% 증가했으며 전체 가구 중 25.7%를 차지했다. 일반적인 개와 고양이뿐 아니라 금붕어, 거북이 등 모든 반려동물을 포함한 수치다.

여기에 평균 가구원 수 2.2를 곱해 계산해 보면 반려인 수는 1천262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 4명 중 1명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셈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 조사에서는 지난해까지 누적 등록된 반려견과 반려묘는 전년도인 2022년보다 7.6% 늘어난 328만6천마리로 집계됐다. 지난해 신규로 등록한 개체 수는 27만1천마리로 아직 등록되지 않은 개체를 고려하면 실제 개체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는 출산율 저하와 반려가구의 증가를 두고 대인 관계의 높은 피로도에 의한 회피 현상의 일종이라고 분석했다.

이정연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려동물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감정적 유대와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은 일반적인 욕구다. 핵심은 ‘왜 유대감과 심리적 안정을 사람이 아닌 동식물로부터 얻는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며 “현대사회가 외로운 시대라면 사람을 찾거나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는 등 사람과의 네트워크를 발달시켜야 하지만 사람과의 유대에는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 현대인들은 그런 관계에 대한 피로도가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렇다 보니 연애와 결혼, 출산을 미루고 피로도가 낮고 편한 반려동물을 택한다. 일종의 사람과의 유대에 대한 회피 경향으로도 볼 수 있다”며 “각자가 외로움을 느끼지만 사람으로 풀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구 정책들도 ‘어떻게 만나느냐’가 아닌 ‘왜 만나지 않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뭉치 생일파티
강아지 ‘뭉치’의 생일파티.

◇유모차 뛰어넘은 ‘개모차’…커가는 ‘펫코노미’ 시장

반려가구의 증가는 관련 시장 규모의 거대화를 불러왔다. 사료, 진료, 장묘, 용품, 보험 등 반려동물 양육과 관련된 생산·소비 활동이 늘어나며 이를 일컫는 ‘펫코노미’(Pet+Economy) 시장은 그야말로 활황이다.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대한다는 ‘펫휴머니제이션’(Pet+Humanization),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고급화한 ‘펫셔리’(Pet+Luxury)라는 신조어도 등장하며 펫코노미 시장이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발표한 반려동물 연관산업 육성대책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펫코노미 시장 규모는 8조원에 달한다. 펫서비스 3조5천억원, 펫헬스케어 2조6천억원, 펫푸드 1조8천억원, 펫테크 1천억원 순이다.

농식품부는 증가하는 반려동물 양육으로 관련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펫코노미가 신성장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내다봤다. 또 동물의 지위가 높아지고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오는 2032년이 되면 국내 시장이 20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펫코노미 시장은 다양한 수요에 발맞춰 여러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펫휴머니제이션의 영향으로 반려동물을 위한 의류, 영양제, 유치원, 호텔, 비행기, 보험 등에 반려인들의 손길이 가고 있다.

펫코노미의 가파른 성장세는 급기야 유아용품 시장의 매출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온라인 오픈마켓 G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유모차와 ‘개모차(반려동물용 유모차)’의 합계 판매량을 100으로 봤을 때 개모차 비율이 57%로 유모차 비율 43%보다 14%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올해 들어 5월까지 반려견 사료 판매량도 69%로 아기 분유와 이유식 판매량 31%의 두배를 뛰어넘었다.

일부에서는 유치원을 ‘개치원’으로 바꾸기도 한다. 반려동물의 ‘웰다잉’(well-dying)을 위한 장묘업체도 전년보다 6곳이 늘어 전국 각지에 74곳이 자리잡았다.

명품업계도 너 나 할 것 없이 펫코노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강아지들을 위한 리드줄, 의류, 펫 침대, 펫 코트, 펫 캐리어, 펫 밥그릇 등 수십만원대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강아지 용품이 출시되고 있다. 한 브랜드에서는 1병당 15만원 상당의 강아지용 향수를 내놓으면서 갑론을박이 일기도 했다.

반려인들은 넓어진 펫코노미 시장을 반기고 있다. 반려견 뭉치를 5년째 키우는 자영업자 30대 정모 씨는 “지난해 친구들과 뭉치 생일파티를 해줬는데 강아지용 케이크, 와인 등으로 파티를 꾸미고 선물을 사는 데 50만원이나 들었다”며 “어디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인데 여행 상품이나 산책 용품, 차량 용품이 다양해져서 너무 좋다. 무엇보다도 뭉치가 행복해 하니까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키웠다는 임모(28)씨는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좋아지니까 아이들이 더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사료와 간식도 기호에 맞게 줄 수 있어 좋다”면서 “친구네 강아지와 산책을 가면 우리 강아지 옷은 그대로인데 친구 강아지 옷은 매번 바껴 미안하기도 했다. 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옷을 갖춰 입히는지 알겠다”며 웃음지었다.

◇정부·지자체 뒷받침 준비도 ‘착착’

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가 되면서 정부에서도 반려인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겪는 애로사항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반려인들의 가장 큰 부담인 의료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농식품부는 지난해 1월부터 동물병원의 진료비 게시와 예상 진료비 사전 구두 고지를 의무화했다. 반려인들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 동물병원 진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동물병원은 진찰이나 상담, 입원, 백신 접종, 검사 등 11개 항목의 진료비를 내부 창구나 진료실, 홈페이지에 게시해야 하고 전신마취를 동반하는 뼈·관절 수술이나 수혈 등 중대한 진료는 예상 진료비를 사전에 구두로 고지해야 한다.

지난해 10월부터는 부가세 면제 항목도 대폭 늘렸다. 당초 질병 예방 항목에 대해서만 면제했으나 치료 목적의 다빈도 진료항목 100여개까지 범위를 넓혀 최대 9.1%의 진료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했다. 면제 항목에는 진찰·투약·검사부터 구토·설사, 아토피성 피부염, 무릎뼈 탈구 수술, 스케일링 등이 포함됐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차상위 계층이나 중증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위해 반려동물 의료비도 지원하고 있다. 대구 중구도 대구시수의사회, 동물병원과 협약을 맺고 진료비를 30% 이내 할인하는 의료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정부는 2014년부터 동물등록제를 의무 시행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유실을 방지하고 보호 복지 수준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주택 등에서 기르거나 그 외의 장소에서 반려의 목적으로 기르는 월령 2개월 이상의 개는 관할 지자체에 동물을 등록하고 내·외장형 식별장치를 장착해야 한다. 고양이는 등록 의무가 아닌 자율 선택에 따른 등록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기준 4만1천여마리가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 의무를 위반하면 100만원 이하, 변경 신고 의무를 위반하면 5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자진신고 기간 내에는 부과되지 않는다.

류예지기자 ry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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