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참 길었다. 지난봄에는 가장 찬란한 시간이 계속 되는 것만 같았는데 긴 여름을 겪으면서 그 에너지에 새삼 기운이 딸리는 느낌이 있다. 해가 지면서 까지 붉은 구름을 몰고 오는 여름 위세는 참 대단 했다.
여름의 저녁노을이 이렇게 뜨겁고 아름다운 줄 미처 모른 채 더위 피하느라 그저 허둥대기만 했나 보다. 그러나 이제 더위도 힘이 빠지고 있다. 새벽이면 창 앞에 바람이 불어와 오히려 나를 살피고 들여다 본다. 내가 그럴 줄 알고 있었지만 찬바람에 괜히 또 한번 놀랬다.
여름 내내 아이스커피 마시며 낙서 같은 스케치 몇 장, 그리고 서울 인사동에서 단체 전시회 2-3 번 하고 지내는 동안 화분에서 텃밭으로 옮겨 심어 놓았던 하얀 호박은 넝쿨을 뻗으며 저 혼자 숨어서 다 자랐다, 여름은 모든 것을 익어가게 하니 누군가 ‘여름은 위대하다’고 했나 보다.
이제 여름이 가면 다음 것이 온다. 바람과 구름이 태풍이 되어 몰려와 다시 놀라게 할 차례가 되고 뜨겁고 붉었던 여름 저녁노을의 그 아름다웠던 기억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손으로 눈을 가리면 잠시 세상이 닫히지만 그래도 하늘은 보인다. 내가 믿고 사는 세상은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 있다. 꽃도 있고 바람도 있고 그 속에 나도 살고 있다.
오십년이 넘는 세월의 시간을 화가로 살면서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그런 향기가 열리며 꽃이 피고 있고, 바람에 풀잎과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도 보인다. 그림 속에 한 송이 꽃피어 있는 풍경은 내가 펼쳐 놓은 나의 시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성실한 마음이 변하지 않을 때 생기는 에너지가 있으니 내가 바라보는 데로 꽃이 피고 꽃이 진다는 것도 이제 알게 되었다.
계절이 바뀌고 구름의 모양이 변하듯 꽃의 시간도 흘러간다. 더운 여름을 살아내고 나서 어느 순간 붉게 물든 저녁노을 풍경을 만나면 정말 좋다.
이제 호박 하나 따서 호박전 해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그저 그림도 그리며 나의 시간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신문광 작가는 계명대 미술대학 및 교육대학원 졸업했다. 개인전14회와 대구미술대전초대작가, 정수미술대전초대작가다. (사)구상전회원 고문, 대한민국미술대전서양화분과심사위원, 대미술대전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