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등산에 사는 쪼그만 건축가이자 나무 의사예요
나는 체구는 작아도 나무를 쪼아 해로운 벌레를 잡아요
'통통통' 나무를 망치질해 구멍을 뚫고 집을 지어요
떨어진 나뭇조각은 흙의 양분이 되고 숲을 우거지게 해요
아시죠, 그러면 광합성량이 늘고 온실가스가 줄어들어요
내 집이 있는 나무는 태풍이 오면 쉽게 쓰러져요
그렇게 자연스레 숲의 순환을 도와요, 사람만이 아니에요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바람, 비, 눈과 더불어 숲을 가꿔요
내 집은 돈 한 푼 받지 않고 다른 동물들에게도 대여해 줘요
하늘다람쥐, 소쩍새, 솔부엉이, 호반새가 차례로 깃들어요
난개발로 숲에서 힘들게 사는 생명들의 삶에 힘을 북돋아요
나는 건축가이자 나무 의사 숲의 사회복지사라고 불려요
무등산에 오시거든 가만히 눈 감고 숲의 소리에 귀 기울여봐요
'통통통' 어디선가 나무를 망치질하는 내 소리가 들릴 거예요
모자의 깃털 장식*에 나와 내 친구들을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수억 마리의 새가 살해됐다. 유럽과 미국 사교계에서 중산층까지 번진 '깃털 열풍'이 새들의 멸종을 초래했다.
◇김완=200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시집『지상의 말들』,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 『너덜겅 편지』 등이 있다. 2018년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 시인상 수상.
<해설>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인 시인이 <나무 의사>를 시로 쓴다는 게 놀랍다. 시 속의 의사인 새는 딱따구리라는 구체적인 새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나무를 해롭게 하지 않는, 나무와 공생하면서 숲에 보탬이 되는, 먹이활동 건축활동 등 숲의 순환에 일조하는, 그런 새 즉 그는 의사며, 건축가이자, 나무복지사인 셈이다. 그의 거처는 무등산이다. 물 흐르듯이 문장을 끌고 가면서 숲의 여러 지식을 머리에 쏙쏙 심어주는 친절함은 시인이 말투에 있어, 자세를 낮춤 즉 ”요“가 주는 마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순간 그 새 의사가 자신과 일치되면서 이 시는 그 진정성을 더 획득하게 된다. 기어이 ”모자의 깃털 장식*에 나와 내 친구들을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라는 참고 미루어 두었던 이 한 문장이, 거부감없이 친숙한 벗 혹은 연인의 말로 심중에 각인되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