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문화·역사 응집된 곳
블랙홀처럼 사람 빨아들여
전세계 메가시티 30곳 넘어
누가 인류의 최고 발명품은 ‘도시’라고 말했던가!
‘문명의 이기’들이 즐비하고 편의성을 제공하는 각종 인프라를 갖춘 도시들은 정주민의 자부심이 되고 매력적인 랜드마크들은 도시의 상징이나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또,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야경은 어떠한가? 핫플레이스들은 한 밤중에도 불야성을 이루고, 화려한 네온사인과 대로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들은 도시 자체를 하나의 야화(夜花 : 밤의 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처럼 도시는 인류의 기술과 발전, 문화와 역사가 함축되고 응집된 곳이기에 동경과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도시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역사적으로 도시에 몰려든 인구들은 성장의 동력이 되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국가 발전을 견인하였는데 약 50년전 만 해도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도시는 뉴욕, 도쿄, 멕시코시티 3곳에 불과했지만 2024년 현재 메가시티는 전 세계적으로 3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의 성장은 도시의 고질적인 문제를 동반했다. 인구집중은 주택난·교통난을 낳았고, 빈곤·전염·질병은 생활환경을 악화시켰다. 또, 공공시설의 부족은 구조적 불균형을 초래하여 ‘슬럼화’의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인구 증가로 인한 도시 확대는 불가피했다. 주거지역의 과밀화로 인해 시가지가 도시 교외지역으로 분산·확장됨에 따라 베드타운 건설은 불가피했고 위성도시들이 생겨남에 따라 통근 거리는 연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외곽순환도로, 고속철도, 도시철도, 순환버스노선, 자동차전용도로 등이 확충됨에 따라 도시의 행정구역은 광역화되었다. 하지만 고도성장기에는 인구 증가를 전망하고 장밋빛 도시계획들이 남발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의 원인이 된 측면도 있다.
한국 인구 절반 이상 수도권 거주
지방은 인구급감·소멸 위기 직면
중앙과 지방의 상하 관계 아닌
국가-자치도시 수평적 관계 필요
최근 200년 동안 전례 없는 급속한 도시화는 세계 인구의 절반을 도시에 살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70년대부터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살게 되었고, 현재는 총 인구의 약 90%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는 도시화의 종착 단계에 들어와 있다. 국토 면적의 약 12%에 불과하지만 총인구의 50% 이상이 거주하는 수도권은 거대한 교통망으로 연결된 동일 생활권이 되었고, 산업화 시대에 권역별 산업 배치를 통해 지방 거점도시가 된 지역들은 광역시가 되거나 지방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이런 많은 변화가 있음에도 조선 태종 때 확정된 8도와 고종 때 개편된 13도제에 근간한 우리나라 광역 행정구역은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많다. 또, 수도권과 지방으로 양극화된 도시환경은 도시 행정의 지향점을 달리 보게 만들었다. 수도권 주민들은 늘어나는 인구와 부족한 인프라로 인해 생활·주거 환경 개선 및 집값 안정을 위한 아파트 등 주택 공급 확충을 선호하고 이에 반해 지방 도시들은 저출산·고령화, 청년인구 유출 등 인구급감과 지방소멸의 두려움 속에서 대기업이나 신산업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행정구역을 어떻게 개편하는 것이 효율적이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기득권 유지을 위한 행정구역개편 등의 행정통합은 ‘만능키’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제는 실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도농분리형 지방정부구조를 1990년대 중반 도농통합형 지방정부구조로 일부 개편한 바 있다. 이제는 도시 간 연담화를 기반으로 한 동일 생활권·유사문화권을 가진 지역들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또, 산업 간 연계를 통한 가치사슬(value chain) 구축이 가능하고, 행정구역 간 조정을 통해 ‘직주락’(일하고·먹고·녹고)의 기능적 혼합공간 조성이 가능하고 통근·쇼핑·관광 등 체류에 근거한 ‘생활인구 기반 정책’들을 공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지역들을 하나로 묶을 필요가 있다. 또한,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지방소멸에 집착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지역 간, 도시 간 연계를 통해 행정구역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문제점 중 늘 언급되는 것이 지방의 중앙예속화다. 특히 정당공천을 매개로 국회의원·광역 및 기초단체장·지방의원들 간 구축된 수직적 형태의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는 지방자치가 성장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견고한 지방 카르텔’이라는 의견도 있다. 같은 고향에, 같은 학교 출신에, 같은 정당 소속으로, 형님, 동생 하면서 생겨난 ‘공생적 카르텔’이 지방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 정치권이 근본적인 성장동력의 발굴 없이 민원해결식 처방이나 토건에 치우친 도시개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상향식 정책 수요 발굴은 등한시하고 지역의 일명 ‘얼굴마담’들을 활용한 ‘공론화’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이 사실상 ‘밀실정치’ 형태로 이뤄진다는 의심을 받는 경우가 있는 등 주민 참여가 중심이 되는 지방정치환경 조성에 소홀했다는 여론도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일명 ‘인구리스크’와 기술의 고도화, 광역교통망 확충, IT인프라의 보편화는 기존의 행정구역을 ‘다운사이징’에 기반한 기능 연계형 행정구역으로 변화시킬 동인(動因)이 되고 있다. 따라서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를 기존의 ‘집중’과 ‘분산’이라는 프레임에서 ‘협력’과 ‘자율’이라는 프레임으로 바꿔야 하며 동일 생활·유사문화 여부, 산업 간 연계 여부, 인프라 공유 여부를 통해 인근 도시들 간 도시통합 및 연합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기존 특례법들을 개정하여 도시통합을 통해 인구 50만 이상이 되는 지역에는 ‘세종특별자치시’에 준하는 권한을 주어 ‘자치특례도시’를 확대하고, 통합을 통해 인구가 100만이상이 되는 도시는 특·광역시에 준하는 지위를 주는 동시에 과감한 권한 이양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도시형 자치도시’가 탄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행정비용 측면을 고려한 도시 간 행정통합이 되어야 한다. 지역마다 중복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이나 행정기구, 공적 인프라 등을 통폐합하여 이를 지역 내 균형발전을 위한 재배치의 도구로 활용하여 도시통합이 재정적 효율성에 기반 되도록 입법적·행정적 제도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심각한 인구소멸지역에는 총리 직할 ‘국토균형발전부’ 창설을 통해 해당 자치단체를 중앙정부에서 직접 지원·관리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도 있다. 어쩌면 행정기구표나 조직도를 보는 ‘마인드’에서 벗어나야만 국토균형발전의 동력이 되는 행정구역 개편의 해법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외에도 지방자치의 핵심인 주민자치 강화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져야만 주민자치의 역량이 지방자치의 강화로 이어지고 지방자치의 경쟁력이 중앙정부의 기능적 효율성 강화로 선순환되는 행정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앙과 지방’이라는 상하 관계가 아닌 ‘국가와 자치도시들 간’의 수평적 네트워크 관계 설정이 오늘날 필요한 행정시스템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실현되려면 지리적 영역의 공유, 사회적 상호작용, 상호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한 지역사회들의 주체가 행정통합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역의 긍정적 정체성 지키되
개방적 도시문화 조성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자치도시 건설
세계 속에서 경쟁력 가질 수 있어
우리는 역사를 통해 사람과 돈, 물자가 모여야만 도시의 성장할 수 있음을 배웠다. 지역의 긍정적인 정체성은 반드시 지키되, ‘끼리끼리 문화’를 없애고 개방적 도시문화가 조성되어야 ‘고인물 카르텔’이 없어지고 외부에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져 사람들이 모여드는 진정한 의미의 자치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도시의 경쟁력은 카르텔이 존재하지 않는 ‘자치’(自治)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일은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 지역의 미래를 우리가 함께 그리는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다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구 소멸의 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자치도시의 ‘멋’을 가진 도시가 주민의 지지와 사랑으로 미래의 승자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속에서 경쟁력을 가진 자치도시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기원한다.
칼럼니스트 이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