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부터 미래까지 중첩된 시간 표현
다채로운 저조도 색·깊이감 확보 ‘키’
3차원의 몸을 가진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4차원인 ‘시간’의 개념을 인지하고, 측정하고, 효율적인 삶의 도구로까지 활용해왔다. 그러나 그 어떤 인간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볼 수도, 넘나들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인식과 경험 너머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상상을 포기하지 않았고, 시공간을 초월한 4차원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았다.
갤러리 동원(앞산)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김창태 작가의 예술적 질문은 시공간의 구현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4차원의 시공간을 묘사하는 것이 3차원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비었지만 시간과 공기로 찬 공간을 시각화하는 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가 가져야 할 책무라고 여겼다. 3차원을 살아가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3차원 세계에 대한 탐구였다. 3차원의 현실에서 4차원 구현의 단초를 찾았다.
시공간의 실체를 시각화하기 위한 매개로 그가 선택한 대상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풍경들은 자연일수도 있고, 인간이나 사물일 수도 있다. 빅뱅이나 우주 등의 보다 높은 차원으로 시공간을 고찰했을 법 한데, 그의 시선은 현상계를 향했다. 시공간 속의 실체를 포착하기 위한 그의 방법론은 색의 중첩이다. 보통 10회 이상의 중첩이 진행된다.
“색은 보이지 않는 공간 속 실체와 시간의 실체를 표현하는 물성으로 활용됩니다. 대개 시공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까지 아우르고 있고, 그 중첩되는 시간성을 물감의 중첩으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색은 주로 단색을 선호한다. 시공간을 표현하는데 흑과 백의 대미만큼 효율적인 조합도 드물지만, 최근에는 조심스럽게 다채로운 색들도 적극 끌어들인다. 대신 최대한 조도를 낮춘다. “평면에 4차원의 시공간을 표현하려면 초현실적인 색감을 구사하고, 깊이감을 확보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모노톤과 중첩이었습니다.” 주로 선택되는 풍경들은 일출이나 일몰 직전이나 직후, 안개가 끼었거나 눈이 내릴 때다. 태양이 쨍할 때보다 어둠이나 안개가 내려앉았을 때가 중첩된 시간성이라는 개념과 맞아떨어졌다.
작업 초기에는 기억을 기반으로 했다. 기억 속 풍경을 그린 것. 시공간이나 기억은 4차원 추상인데, 그의 풍경들은 구상의 형식을 취했다. “시공간이나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난해할 수 있습니다. 감상자들과 소통력을 높여야 하는데, 그 해결점은 풍경을 구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의 본질’이라는 형이상학을 다루지만 현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동시에 견지했다. ‘기억의 오류’에 대한 이야기다. 삶의 여정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경험하고, 그 경험들은 기억으로 저장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은 지속적으로 수정·갱신하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들이 발생한다. 그는 그 왜곡된 기억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인간의 세태를 직시한다. “누구나 기억의 의존해서 판단을 하기 마련인데, 그 기억에는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기억의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인간이라면, 인간의 실체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가 눈을 돌린 것은 인간의 바깥에 있는 사물이다. 그는 인간이 입고 있는 옷이나 인간이 바라보는 시선 등에서 오히려 순수성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인간 바깥의 사물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넥타이를 맨 남자를 그린 그림이 대표적이다. 얼굴과 하체를 과감하게 배재하고 넥타이에 초점을 둔 상체를 표현했는데, 무한경쟁에서 생존경쟁을 펼치는 현대인의 초상처럼 다가왔다.
“인간 바깥의 사물들이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깝게 보였습니다. 기억의 오류를 걷어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죠. 바깥의 사물들에는 저의 해석보다 사물의 진실에 더 다가가려는 태도를 담겼습니다.” 전시는 11일까지.
황인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