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대륙 신화·설화 공통점 연결
기록된 역사 진실성에 의문 가져
설화를 역사 진실 찾기 지렛대로
타민족 역사·문화 탐구에 적극적
이집트 출신의 작가 와엘 샤키(Wael Shawky)가 지켜본 현대 이집트인이 고대 파라오의 보물을 발굴하는 현장은 흥미로움 자체였다. 물질만능의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그들이 도굴을 하기 직전 “성공적인 유물 발견을 해달라”며 신께 기도하는 샤머니즘적인 행위가 물질과 영혼의 결합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도굴현장에 오버랩된 현실과 초현실의 교차는 그가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가 됐고, 작업에도 연동됐다. 그는 “과거의 역사나 문화가 현재의 삶과 관계를 맺는다”는 물질계과 비물질계, 현실과 초현실이 공존에 대한 이야기를 미술적인 서사로 풀어갔다. 이는 곧 “감각하고 경험하는 물질의 세계와 초월적인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라는 질문으로 함축됐다.
와엘 샤키 개인전이 대구미술관 1전시실에서 대구미술관 기획인 ‘2024 해외교류’전으로 열리고 있다. 이집트 출신인 와엘 샤키는 역사와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적인 작품으로 현대미술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특히 역사 해석에서 아랍과 중동의 역사와 문화적 서사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유럽 중심주의적인 역사 시각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국공립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인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에는 아시아의 한국, 중동의 이집트, 유럽의 이탈리아 등 3개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영상과 설치 등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들 작품들에는 모두 신화 또는 설화가 공통분모로 관통하고 있다. 각 대륙의 각기 다른 신화와 설화는 그에 의해 하나의 정서로 연결된다. 그것이 곧 ‘사랑’이다.
먼저 신작 ‘러브 스토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누에 공주’, ‘금도끼, 은도끼’, ‘토끼의 재판’ 등 한국의 구전설화와 전래동화를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은유하며, 판소리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됐다. 작품에는 한국의 풍경과 전통 탈춤, 판소리꾼 등이 판소리와 함께 상호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설화나 동화 자체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을 축출하진 않았다. 그는 주제에 대한 은유적인 장치로 ‘사랑’을 바라봤다.
또 다른 전시작인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I’는 상이집트(Upper Egypt)에 위치한 마을 이름을 따왔다. 2000년대에 상이집트를 방문하고 3부작으로 제작했다. 이번 전시엔 2012년 제작한 첫 번째 편을 선보인다. 나일강 풍경으로 시작하는 약 20분 길이의 흑백 영상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문학적 요소를 결합돼 있다. 고대 이집트 신화와 현대 이집트 사회가 독창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작품에선 물질적 구원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형이상학적 체계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유머와 풍자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신전의 찬가’라는 작품에선 고대 이탈리아 도시 폼페이를 배경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고대 이집트 종교 간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제우스로부터 사랑을 받아 헤라의 질투를 피해 소로 변신한 여사제 이오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 다양한 문화가 얽히고 필연적으로 연결된 폼페이를 상상의 공간, 가능성이 열린 공간으로 펼쳐진다.
그의 작업들은 모두 “기록된 역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일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역사를 작업의 출발로 삼은 것은 그의 성장배경과 무관치 않다. 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유목민 사회에서 근대화된 사회로의 전환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초현실적이고 영적이며 비물질적인 과거의 역사가 현생 인류와 연결되는 과정을 지켜봤고, 그런 인식 과정 속에서 “현대 인류가 가져야 하는 역사 인식에 대한 시각”을 정립했다. 그것이 “기록된 역사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에는 “역사가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신화나 역사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창조물이고, 그런 의미에서 해석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와엘 샤키가 고대의 신화나 설화들에 주목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허물기에 있다. 그는 경계 허물기의 단초를 신화나 설화에서 찾았다. “신화나 설화들에는 기록된 역사 이면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고 확신했다. 이에 따라 그는 설화나 신화들을 역사의 진실 찾기의 지렛대로 활용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허구와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제시해왔다. “저는 역사에서 공부한 것과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들을 혼합하며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의 역사 재정립은 영혼과 육신의 결합으로 구현된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에서 이 이질적인 두 세계가 공존함을 인식한 결과다. 그에게 영혼은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비물질의 세계의 상징이고, 육신은 물질 세계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물질계와 비물질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그의 노력은 다층적인 서사 구조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문화라는 것이 다양한 문화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성장했다는 문화의 속성을 다층적인 서사로 표현한다. 이런 믿음으로 그는 다양한 국가나 민족의 역사나 문화를 탐구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고대 이집트 종교의 흔적을 발견하고, 한국과 고대 이집트의 설화에 배어있는 공통점을 찾으며 문화간 상호작용하는 속성을 드러냈다.
“한국의 많은 전래동화 구설 동화가 한국 고유의 것인 것도 분명히 있겠지만 다른 지역의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는 모습들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고대 한국이나 이집트와 현대 한국과의 연결성을 찾는다. 역사나 종교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현대적 관점을 독창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과거의 신화와 역사에 현대성을 중첩한다. 한국이나 이집트의 전래동화에서 도덕적인 요소를 발견한 이번 전시작들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중첩하는 그의 태도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태도 이면에는 고착화된 역사에 해석의 여지를 넓히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있다. “고대의 전래 동화에서 도덕적인 요소들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더 발전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요구되는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상이나 설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구현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얼굴을 반전시키거나 탈을 씌우거나 연기가 능숙하지 않은 어린아이를 등장시킨다. 이는 모두 작품 속 풍경이나 서사 자체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들이다. 그는 스스로를 ‘해석가’라고 했다. 자신의 해석한 역사에 대한 허구와 진실은 그의 관심사 밖이다. “저는 역사의 옳고 그름보다 역사를 재해석하며 저의 창의성을 확장하는데 논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타국가나 타민족의 역사와 문화 탐구에도 적극성을 띠는데, 이런 태도에도 창의성 극대화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 자신이 통제 할 수 없는 대상을 소재로 할 때 창의성이 극대화된다는 발견은 중첩된 경험으로 가능했다.
“예술가가 자신이 편집권을 충분히 갖고 있는 문화나 언어만 탐구하는 것보다 편집권 밖의 세계를 탐구할 때 해석가로서의 창의성이 최대치로 발휘됐어요.”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 대구미술관 1층 1전시실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